고려시대의 대 여진 및 대 거란 대외관계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고려시대의 대 여진 및 대 거란 대외관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머리말

II.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와 고려의 對 중국 정책
1.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
2. 고려의 對 중국 정책

III. 고려의 對 거란 정책
1. 고려의 북진정책과 대 거란 정책
2. 고려-거란 제 1차 전쟁
3. 고려-거란 제 2차 전쟁
4. 고려-거란 제 3차 전쟁
5. 고려-거란 전쟁의 의의와 영향
6. 고려-거란 전쟁과 대외무역

IV. 고려의 對 여진 정책
1. 12세기 여진의 등장과 고려의 대응
2.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3. 고려의 對 金 정책

V. 10~12세기 대외관계의 전개와 고려사회

VI. 고려시대의 대외무역

VII. 맺음말

본문내용

하여 30여 년간의 전쟁이 종료된 현종대에 대부분 확립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려사회의 역사발전과정이 국제질서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러한 사실은 고려국가가 대외관계의 변동에 의해 일방적타율적으로 이끌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려는 그러한 국제질서의 파동을 자체 내의 역사발전의 계기로 삼아 그러한 파동을 적극적으로 수립하여 나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VI. 고려시대의 대외무역
11세기 2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질서는 12세기 초 금이 등장할 때(1125)까지 약 1세기간 비교적 안정되고 균형된 질서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국면의 전개에 따라 동아시아 각국간에 활발한 대외무역이 전개되었다. 그러한 동아시아 각국간 활발한 대외무역이 전개되었다. 그러한 동아시아 세계의 변모는 고려의 경우에도 국내상업과 유통경제 발달에 일정한 경향을 미쳤다.
고려시대 대외무역 확대는 거란과의 전쟁이 마무리된 현종대(1010~31) 이후부터였다. 이 무렵 고려는 대식국일본거란여진 등과도 활발한 교역을 하였다. 대외관계의 전개가 대외교역의 확대를 수반하면 국내 사업과 유통경제의 활성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고려의 교역품을 검토해 보면, 수입품의 경우 주로 송의 귀금속류고급직물향료장식품 등 사치품과 일본과 여진의 도검(刀劍)궁전(弓箭)철갑(鐵甲) 등 무구류(武具類)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대외무역이 지배계층의 경제적인 이익을 보자장하거나 그들의 사치적인 수요를 충당하는 선에서 이루어졌음을 강하게 시사하여 주고 있다. 수출품은 대부분 세포(細布)초피(貂皮)위석(葦席)송자(松子)인삼(人蔘) 등이었다. 그것은 당시 지배층이 피지배층에 대하여 강제적으로 교역한 품목으로서 대외무역이 대체로 지배층의 사치적군사적 목적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무렵 국내사업 및 유통경제의 발달을 전적으로 귀족지배층의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정도의 제한적 성격의 것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12세기를 전후하여 수리시설의 발달과 저습지 개발, 신종자의 보급 등 국내 농업생산력의 발달 위은숙, 「12세기 농업기술의 발전」, 『부대사학』12, 부산대 사학회, 1988.
이 상업과 유통경제의 발달을 촉진시켰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숙종의 화폐유통책은 대외무역의 확대와도 관련이 국내 농업생산력 발달에 조응한 측면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출품의 대부분이 농업경제적인 기반에서 생산된 품목이었던 걸로 보아 귀족층이 이들 품목을 기초로 하여 활발한 대외무역을 전개하였던 것은 농민들에 대한 약탈적인 방식에 의존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잉여생산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대외무역의 확대는 일차적으로 농업생산력의 발달에 부응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순리라고 생각된다.
VII. 맺음말
북방민족과의 외교관계도 한족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조공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이는 정치적 신속(臣屬)을 전제로 하여 연호(年號)나 역법(曆法)의 채용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마 종속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고려는 자체 내의 정변이나 비정상적인 왕위계승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그들로부터 약간의 간섭을 받기도 했고, 종속국으로서 종주국에 대해 방물(方物)을 바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북방민족들은 고려에 대해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가질 수 없었기에, 실질적인 외교에 있어서는 쌍무적인 대응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불간섭주의 내지 유화정책을 구사하여 양국관계의 원만한 유지에 노력하였다.
이러한 북방민족과의 정치외교적인 교류에 수반하여 경제적문화적 교류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곧 이 시기에는 조공(朝貢)이라는 공적인 사행(使行)무역을 위시하여 국경지대에서 와시장(瓦市場)인 각장(場)의 개설을 통해 양국 상인들 간에 교역이 일정하게 이루어졌다. 금은공예품식량포목철제농기구문방구 등의 물품이 북방으로 수출되었고, 단사(丹絲)양(羊)모피말무기 등의 각종 물품 등이 고려에 수입되었다. 또 그들 사신단의 왕래에 수반하여 서로 간에 문물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5백년 고려사》, 박종기 저, 푸른역사, 2002.
《한국사 6》, 강만길 외 11, 한길사, 1995.
《한국사 15》,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1995.
《고려시대사 강의》, 한국중세사학회 편, 늘함께, 1997.
《한국사 통론》, 변태섭 저, 삼영사, 2003.
《고려 거란 전쟁》, 안주섭 저, 경인문화사, 2003.
《한국역사입문 2》, 한국역사연구회, 풀빛, 1995.
  • 가격1,9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07.23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352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