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00년 이상 장수기업 29사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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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100년 이상 장수기업 29사의 생존전략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秀和(슈와)가 이세탄 주식을 매점하여 이를 해결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고 이 와중에 업적 부진도 한 몫 하여 결국 경영책임을 지고 쿠니야스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세탄은 타 백화점보다 앞서 틴 에이져 숍, 남성 신관 등 새로운 장르를 발표해 왔다. 가족경영에서 벗어나 소위 샐러리 맨 사장이 경영을 한 결과, 남성용 의류를 포함한 패션 이세탄으로서 2003년도 업계 톱의 매출을 올렸다.
Ⅴ탁월한 1인 리더십 型
1. 電通(덴츠우, 1901년 창업)
광고 대리점인 電通의 4대 사장 요시다 히데오(吉田秀雄)는 강렬한 개성으로 업계를 리드하였다. 50년 6월 민간방송법이 시행되자 요시다는 광고의 새로운 미래는 민간방송 속에 있다라는 확신 아래 각지에 민방 라디오국 개설을 지원한다.
면허 신청에서 프로그램 편성, CM 만드는 법, 영업 노우하우 까지 철저하게 지원하였다. 광고 매체를 만드는 일에 직접 리더십을 발휘하여 電通를 부동의 지위에 앉힌 공로자이다.
광고의 귀재 요시다를 말할 때 그가 직접 클라이언트에게 쓴 편지에 적힌 “鬼 十則”을 빼 놓을 수 없다.
일부를 소개하면 “한번 잡으면 놓지 마라, 죽어도 놓지 마라, 목적 달성 까지…, 주위를 잡아 끌어라. 끄는 것과 끌려 다니는 것은 천지차이다” 확실히 맞는 말이나, 이러한 직절적인 표현에 압도당하고 만다. 가령 설명회에서 지더라도 뒤집어라라는 회사 분위기가 생긴 것은 이 때문이다.
2. NEC(1899년 창업)
전기 메이커 NEC의 중흥의 선조인 고바야시 코우지(小林宏治)는 1960년대 중반에 사장에 취임했다. 그의 뛰어난 점은 현재의 인터넷 사회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컴퓨터 기술의 융합을 1977년 당시에 제창한 것이다.
통신기술과 컴퓨터 기술의 융합으로 정보 통신 산업에 발전할 것을 예측한 것으로 훗날의 [C(computer)&C(communication)]라는 NEC의 슬로건이 되었다.
3. 花王(카오우, 1887년 창업)
1981년부터 23기 연속으로 경영이익을 낸 花王의 막강함은 1971년부터 19년간 사장을 지낸 마루타 요시로(丸田芳)의 역할이 크다. 그의 최대 공적은 철저한 고객중시의 자세를 사내에 심어 놓은 점이다.
먼저 판사제도(販社制度). 가전이나 자동차처럼 메이커와 소매상 사이에 도매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매회사를 세워 고객정보를 직접 흡수하였다. 소비자 상담을 24시간 접수하는 창구를 설치한 것도 마루타다.
상품에 대한 불만 전화로 업무가 마비된다는 사내의 목소리를 메이커에서 물건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불만은 보물상자다라고 일축했다. 현재 花王를 지탱하는 마케팅이나 연구개발에는 항상 소비자로부터 태어난다는 마루타의 이념이 계승되고 있다.
4. 帝國호텔(1890년 창업)
호텔업계에서는 帝國호텔의 이누마루 테츠조(犬丸徹三)를 들 수 있다. 그는 1928년부터 총지배인을 지내면서 예식장과 피로연을 한 셋트로 묶은 호텔 결혼식이나 바이킹 스타일의 레스토랑 등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해서 발표했다.
5. 資生堂(시세이도우, 1872 창업)
화장품업계의 톱 회사인 資生堂는 볼룬터리 체인 제도라고 불리는 특약점과의 거래로 定價 유지를 성공시킨 마츠모토 노보루 (松本昇)의 공적이 크다.
ⅥM & A 型
1. 王子製紙 (오우지제지, 1873 창업)
제지업계의 최대 회사인 王子製紙의 역사는 합병의 연속이었다. 그 중 가장 큰 합병은 1933년 캐나다 등 해외 수입품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富士製紙, 樺太工業(카라후토)과 합병한 것이다. 이들과의 합병 결과 국내 쉐어 60%를 넘는 거대 제지기업이 되었다.
전후 과도 경제력 집중 배제법에 의해 일단 3사가 분할되었으나 1970년 이후 실로 5회에 걸쳐 합병이 이루어졌다. 중국 진출 시 2,200억엔이라는 한 회사 단독 해외 투자로서는 아마도 과거 최대(오우지제지)의 거액을 투자할 정도이다.
오우지에게 있어 M&A는 리스트라가 주 목적이 아니라 장치산업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2. 태평양 시멘트(1881년 창업)
시멘트 업계 최대 회사인 태평양 시멘트도 小野田(오노다), 秩父치치부),日本(니혼) 3사가 순차합병 하여 98년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당사는 공공사업의 억제로 따른 수요감소와 과당경쟁 등의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M&A이다. 현재 해외에서 공장 조업을 하면서 중국 등 중요 시장에 공세를 펼치고 있다.
태평양 시멘트의 사장인 사메지마 아키오鮫島章雄)합병이 없었다면 3사 모두 도산했겠죠고 단언하며 기업도 사회적 생물이니까 지구환경의 격변에 의해 공룡이 절멸했듯이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망해 갑니다라고 당연한 듯이 말한다.
3. イオン(이온, 1758년 창업)
합병에 의해 새로운 업태와 시장을 창출해 온 이온은 현재 일본의 종합 슈퍼마켓의 톱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이온은 창업자 오카다 소우자에몽(岡田左衛門)이 川家重(도쿠가와이에시게)쇼군시대에 미에켄(三重)욧카이치(四日市)에서 옷감, 방물상을 시작으로 250년 된 기업이다.
1926년 6대째 때 포목전 오카다야(岡田屋)로 발전했다. 쟈스코 (ジャスコ)에서 이온그룹에 이르기 까지 오카다야가 전국의 소매업과 합병을 계속하는 중에 이루어졌다. 합병은 카츠야의 부친 타쿠야(卓也 현 명예회장)의 미국 시찰이 계기가 되었다.
59년에 도미한 타쿠야는 미국 대형 수퍼의 번영에 큰 충격을 받는다. 미국 수퍼의 대량 매입이나 셀프서비스 방식에 따른 가격인하를 꾀한 마케팅에 큰 매력을 느꼈다.
동일한 방법을 일본에 도입하려면 소매업의 결집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타쿠야는 1968년 최초의 합병을 위한 제휴를 발표하고 오늘 이후 새롭게 참가하는 동지를 평등하게 맞이한다. 참가 각사는 장래 합병한다고 동업자를 모았다.
다음 해 제휴 기업의 공동 매입 기구로서 탄생한 쟈스코는 그 후에도 합병을 거듭하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 쇼핑 센타를 각지에 건설하여 지금은 매출 3조엔, 이익 1300억엔을 넘는 당당한 업계 톱 기업이다.
오카다 집안의 가훈은 대들보에 바퀴를 달아라다. 집안의 중심을 시대 흐름에 맞춰서 계속 움직여라는 가훈이 이온의 M&A속에 살아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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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05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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