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계보학의 역사 번역문 - 미셀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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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니체 계보학의 역사 번역문 - 미셀푸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출현한 특유한 문지방, 즉 형이상학자들이 회귀를 약속한 고향을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가로지르는 모든 불연속들을 눈에 보이게 만들고자 한다.『반시대적 고찰』에 따르면, ‘골동품적 역사학’은 그 반대의 목표를 추구한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가 뿌리박고 있는 토양과 언어와 도시생활의 연속성을 추구한다. 또한 ‘그것은 영구 불멸의 것들을 섬세하게 발굴함으로써 우리가 태어났던 조건들을 후손들에게 남겨주려고 노력한다.’ 니체는 이미『반시대적 고찰』에서 이러한 유형의 역사가 지닌 위험을 경고했는데, 그 이유는 이 역사가 충성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창조성을 속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 이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는 골동품 수집가의 임무에 대해 재고한다. 그러나 이때의 강조점은 매우 달라진다. 만일 계보학이 우리의 고향이라든가 모국어라든가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이는 자아라는 가면을 쓰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형태의 정체성의 형성도 방해하는 이질적인 체계들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역사학의 세 번째 용도는 인식주체의 희생이다. 역사적 의식은 외견상, 아니 오히려 그것이 쓰고 있는 가면 때문에, 중립적이고 열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오로지 진리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스스로를 면밀히 검토해 본다면,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과학적 의식의 다양한 형식들을 그 역사 속에서 캐묻는다면, 그것은 이 모든 형식들과 변형들이 지식에의 의지의 다양한 양상들로서, 본능과 열정과 탐구자의 헌신과 철저한 치밀성과 악의 같은 것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지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의 반대편에, 즉 인류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인 효과적인 착각의 반대편에 위치한, 하나의 폭력적인 입장을 발견한다. 그 입장은 탐구의 위험성을 고무하며 동요를 일으키는 발견들에 즐거워한다. 이러한 원한에 사무친 지식에의 의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모든 지식이란 (인식행위에서조차도 진리에 대한 권리와 진리를 위한 토대가 없다는 점에서) 불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지식에의 본능도 악의적인 것(때로는 인류의 행복에 대립되는 살인적이기까지 한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지식에의 의지는 오늘날 엄청나게 팽창되었지만 결코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성취하지는 못했다. 또한 인간도 자연을 정확하고 평온하게 지배하고 있지는 못하다. 오히려 지식에의 의지는 끊임없이 위험부담을 증가시키고 모든 분야에서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보호막 역할을 하는 환각들을 부수고, 주체의 통일성을 해체시키며, 그 자체를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데 애쓰는 자기 안의 요소들을 풀어놓는다. 지식에의 의지는 자기를 낳게 한 최초의 필요인 경험적 뿌리로부터 천천히 분리되어 이성의 요구에만 복종하는 순수한 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발전은 자유로운 주체가 구성되고 승인되는 것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지식에의 의지는 [주체가] 점차적으로 그것의 본능적인 폭력의 노예가 되도록 한다. 예전에 종교가 신체의 희생을 요구했다면, 지식은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한 실험을, 즉 우리가 인식 주체를 희생시킬 것을 요구한다.
지식에의 욕구는 우리들 사이에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즉 그 자신의 소멸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의 열정으로 변형되었다. 인류는 이러한 지식에의 열정으로 결국에는 사멸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열정이 아니라도 허약함에 의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말할 준비를 해야 한다. 즉 우리는 인류가 불과 빛 속에서 끝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모래 위에서 끝나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이제 피히테와 헤켈로부터 전해온 19세기 철학의 두 가지 큰 문제(진리와 자유라는 상호적 토대와 절대적 지식의 가능성)를 ‘절대적 지식을 통한 사멸이 존재의 기초가 되는 일부를 형성’한다는 주제로 대체해야만 한다. 비판 절차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진리에의 의지가 인식의 고유한 유한성에 의해 제한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에의 의지가 인식주체의 불가피한 희생을 통해 한계에 대한 모든 감각과 진리에 대한 모든 요구를 상실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여타의 열망을 능가하게 될지도 모르는, 말하자면 최고의 승리를 능가할 수도 있는 놀랄만한 이념, 즉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간성이라는 이념은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만일 이 새로운 별자리가 수평선 위에 떠오른다면, 오직 진리에의 욕구만이 거대한 특권을 갖고 그 같은 희생을 지도하고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지식에 있어서는 어떠한 희생도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결코 없었지만 말이다.
『반시대적 고찰』은 역사학의 비판적 용도, 즉 과거에 대한 공정한 취급, 단호한 뿌리의 단절, 전통적 숭배태도에 대한 거부, 인간이 자신을 발견해내고 싶어 하는 곳들과는 다른 기원들을 인간에게 제시함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킨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러나 니체는 비판적 역사학이 우리를 모든 실재적 원천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진리에 대한 배타적인 관심을 위해서 생의 운동 그 자체를 희생시켰다고 비난하였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니체는 얼마 후 그가 처음에는 거부했던 이러한 사유경향을 재고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전혀 다른 목적에로 향하게 한다. 우리가 현재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진리의 이름 아래 과거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에의 의지를 끊임없이 전개하면서 지식을 추구하는 주체를 파괴하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계보학은 니체가 1874년에 파악한 세 가지 역사 양식에로 회귀한다. 그것은 니체가 삶의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힘의 이름 아래에서 제기했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 세 가지 역사의 양식들도 변형된다. 즉 기념물 숭배는 패러디가 되고 고대의 연속성에 대한 존경은 체계적 분해가 되며 현재의 인간이 주장한 진리에 의한 과거의 불의에 대한 비판은 지식에의 의지만이 지니는 불의에 의해 지식을 유지하는 인간에 대한 파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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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9.06.03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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