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조식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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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남명조식의 생애

2. 남명조식의 사상

본문내용

다음과 같이 새겼다. “안으로 밝게 닦는 것이 경이고, 밖으로 결단하는 것은 의다” 송 대 성리학자 중에서도 성성자를 차고 다닌 사람은 있었으나 검을 차고 거기에 ‘경의’의 뜻이 들어 있는 명을 새겼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만큼 조식의 〈검명〉은 조식 특유의 표현이요, 거기에 담긴 ‘경의’는 송 대 학자들이 논의 했던 것 이상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종교적인 것이었다.
조식은 송 대 성리학, 아니 전체 유학과 교리와 종지를 ‘경의’두 글자로 집약하고 그것을 지상의 지표로 내건 뒤 “한 숨이라도 항상 존재하여 아무리 작은 나태함도 허용하지 않는” 정신으로 전력투구해 갔던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성숙과 정신적 고양은 그가 60세 때 지리산 아래의 덕산 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본격적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부터 나타났다.
남명학의 요체를 ‘경의’로 보는 것은 후학들이 선생의 학문을 논평해서 나온 말이 아니다. 조식 스스로가 60세 이후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고 일생 동안 닦아서 얻은 것을 집약한 것이며, 이는 제자들을 통해서 후세에 길이 전해져서 사람들이 믿고 실행해야 한다고 믿은 자기 나름의 교리였다고 보인다. 남명학의 요체인 ‘경의’는 송대 성리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거의 완벽해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성학의 요체로 표출하고 유학자의 공부 지표를 여기에 걸게 한 이는 조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만일 남명학의 도통을 논한다면 그는 주나라 초기에서 조선조 중엽까지 내려오는 유가의 도학 정신을 한 몸에 승당하여 찬란한 빛으로 승화시켜 보여 준 정맥중의 한 준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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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6.12
  • 저작시기2009.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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