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원시사회
- 조몬문화시대
- 야요이시대
- 야마타이코쿠
- 고훈시대
- 아스카시대
- 나라시대
- 헤이안시대
- 카미쿠라 막부의 성립
- 무로마찌시대
-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 에도시대 전기
- 에도시대 중기
- 에도시대 말기
메이지 유신과 근대 개혁정책
- 조몬문화시대
- 야요이시대
- 야마타이코쿠
- 고훈시대
- 아스카시대
- 나라시대
- 헤이안시대
- 카미쿠라 막부의 성립
- 무로마찌시대
-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 에도시대 전기
- 에도시대 중기
- 에도시대 말기
메이지 유신과 근대 개혁정책
본문내용
뒤이어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에 의한 간세이[寬政]의 개혁은 농촌부흥책, 무사계급의 검약령(儉約令) 등을 내세워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막부 지배와 사회안정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한편, 이 무렵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서유럽 각국의 통상요구도 적극화하였다.
에도시대 말기
에도시대 말기인 1830년대에 일어난 덴포의 기근은, 37년 마침내 오시오 헤이하치로[大鹽平八郞]의 반란과 농민봉기를 격발시켜 막부의 지배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미즈노 다다쿠니[水野忠邦]에 의한 덴포의 개혁은 단기간에 많은 시책을 실행에 옮겼으나, 에도와 오사카(大阪) 주변으로 막부 영토를 집중시켜 권력의 부흥을 꾀하려는 아게치법령[上知法令]이 광범한 반발을 일으켜, 오히려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또 농촌에 널리 발전한 상품 생산, 지방도시에 일어난 견직물 ·면직물 ·양조업 등의 제조업, 상품경제의 전면적 침투 등 시대적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 등 서남지방의 큰 번(藩)에선 이 무렵부터 번의 채무정리 ·식산흥업(殖産興業) ·양식군비(洋式軍備)에 의한 군제개혁 등을 성공시켰다. 한편 막부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 러시아의 푸탸틴 제독 등의 내항 이후, 구미 제국의 강경한 압력에 못이겨 마침내 20년간의 쇄국을 깨고 개국, 무역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국내는 더욱 분열, 혼미해졌다. 사쓰마 ·조슈한이 막부 반대의 자세를 굳힌 가운데, 백성의 봉기 ·폭동이 계속되고 하급무사를 중심으로 정권을 천황에게 돌리라는 손노조이[尊王攘夷]와 도막(倒幕)운동이 격화하여, 막부는 쓰러지고 천황이 정치표면에 등장하는 메이지[明治]정부가 성립되었다.
에도시대 전통 화로와 거주공간
일본 에도시대 항구
에도시대 마쓰모토 성
메이지 유신과 근대 개혁 정책
1853년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페리가 군함 이끌고 에도 만에 등장해서 압력을 넣음→ 미일화친조약(가나가와조약)을 맺음→ 서구열강의 문 열림
1858년 일본과 서구 5개국 간에 통상조약 체결→ 생사와 차대량수출→ 국내 물가 급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반바쿠후 세력등장
반바쿠후 세력이 천황 승인 없이 외국과 조약 체결한 것 꼬투리잡음→ 천황숭배 열기 고조(천황의 정치참여)→ 존왕양이 주장→ 1867년 반바쿠후세력의 교토 쿠데타→ 궁궐호위, 왕정복고 단행→ 사무라이 집권시대가 막을 내림
메이지유신 정부 : 서양오랑캐를 쫓아내자는 주장으로 집권→ 집권 뒤 강력한 서양화정책 추진→ 1871년 '한'을 없애고 '현'을 설치(중앙정부 직할,폐번치현)→ 정치적 통일 → 사무라이 특권 박탈→ 1873년 징병제 실시→ 사무라이와 농민들의 저항 → 1877년 징병군대의 서남전쟁 진압.이것으로 실력을 인정받음→ 1872년 국민군학교령 반포로 4년 의무교육 시행
의회개설과 정당출범
1881년 자유민권운동 세력이 헌법제정과 의회개설 강력히주장함→ 천황의 이름으로 10년 후 헌법제정을 약속함
이토 히로부미가 헌법초안을 작성하기 시작 → 1885년 내각제도 만들어 근대적 정부 수립 →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헌법) 공포→ 천황으로 주권자 규정, 신성성 인정→ 군부를 천황에 직속, 선전포고 강화, 조약제결 등 주요 권한 천황에게 부여
1890년 중의원선거 실시 → 1898년 이토 히로부미가 오쿠마 시게노부,이타카기 다이스케이 정당들에게 정권 내주어 정당정치를 시험해 봄→ 1900년 이토 히로부미가 총재인 정당'정우회'등장
1918년 전국적 파급의 쌀소동→ 하라 다카시(정우회 총재)에게 조각 맡김→ 1919년 하라내각 탄생- 평민재상이라 불림→ 하라의 암살로 정당내각 주춤→ 1925년 제 2차 호헌 운동 발발→ 가토 타카아키 내각탄생 → 약 7년동안 정당내각제 실현→ 군부의 청년장교와 민간 우익의 테러와 쿠데타가 발생 → 1930년대 정당내각이 붕괴됨→ 중신그룹 중심의 내각구성 (군부와 천황 측근)
일본제국의 동아시아 침략과 패망
조선에 대한 영향력 강화→ 1876년 강화도조약, 1882년 임오군란 등으로 조선 진출 노력→ 1884년 갑신정변 패함→ 청에 대한 강경론 → 제국주의적 대외정책 지지(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
1894년 조선정국 혼미→ 갑오농민전쟁이일어남→ 청일 양국의 군대 조선 유입→ 일본군의 청군 기습으로 청일전쟁 발발 → 1894년 일본승리→ 1895년 1월, 청의 휴전교섭 요청→ 3월 시모노세키조약 맺음→ 일본-타이완할양(첫 식민지 획득)
러시아 등장→ 일본이 랴오둥 반도 차지(시모노세키조약)한 것을 삼국간섭 주도하여 철회→ 만주지역에 영향력 확대- 조선의 친러 움직임→ 아관파천으로 일본이 영향력 약화→ 러시아와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협상 결렬→ 영국(러시아 견제)이 일본과 동맹→ 러시아함대 급습 전쟁 개시함으로 1904년 러일전쟁 시작→ 1905년 일본의 승리로 끝나며 혁명과 발틱 함대가 궤멸됨→ 러·일간 포츠머스조약 체결→ 랴오둥 반도, 남사할린 차지, 한국에 대한 지배 인정(일본) → 한국과 을사보호조약- 외교권박탈,1910년 병합⇒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 타이완, 사할린 까지 일본의 영향력
제1차 세계대전(1914) : 일본의 운송·선박업 활기, 유럽자본철수한 중국시장에 일본제품 대거 유입, 승전국으로서 중국 산둥 반도와 남양 군도까지 진출
중국의 내셔널리즘으로 난관 봉착- 1919년 5월 4일 5.4운동, 국민당공산당 탄생(1920) → 1928년 장제스의 난징에 국민정부→ 일본의 적대정책→ 1931년 철도폭파사건꾸며 만주국 세움→ 국제연맹의 일본군 철수 요구→ 일본은 거부하고 국제연맹도 탈퇴→ 영미협조노선 깨짐- 무모한 외교노됨(중국과 서양열강에 적대화)
1937년 7월 중국군과의 충돌로 중일전쟁이 시작됨→ 난징대학살→ 미국의 장제스 국민정부 지원, 일본에 석유수출 금지로 경제제재 강화함→ 일본군 하와이의 미국 해군함대 기습공격→ 인도차이나 반도상륙해서 영국과 프랑스 세력 몰아냄→ 사이판함락, 미국공군기의 폭격세례(일본 본토)→ 연합국의 포츠담선언 발표에서 일본의 무조건항복 권고했으나 일본은 불응→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결정
에도시대 말기
에도시대 말기인 1830년대에 일어난 덴포의 기근은, 37년 마침내 오시오 헤이하치로[大鹽平八郞]의 반란과 농민봉기를 격발시켜 막부의 지배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미즈노 다다쿠니[水野忠邦]에 의한 덴포의 개혁은 단기간에 많은 시책을 실행에 옮겼으나, 에도와 오사카(大阪) 주변으로 막부 영토를 집중시켜 권력의 부흥을 꾀하려는 아게치법령[上知法令]이 광범한 반발을 일으켜, 오히려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또 농촌에 널리 발전한 상품 생산, 지방도시에 일어난 견직물 ·면직물 ·양조업 등의 제조업, 상품경제의 전면적 침투 등 시대적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 등 서남지방의 큰 번(藩)에선 이 무렵부터 번의 채무정리 ·식산흥업(殖産興業) ·양식군비(洋式軍備)에 의한 군제개혁 등을 성공시켰다. 한편 막부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 러시아의 푸탸틴 제독 등의 내항 이후, 구미 제국의 강경한 압력에 못이겨 마침내 20년간의 쇄국을 깨고 개국, 무역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국내는 더욱 분열, 혼미해졌다. 사쓰마 ·조슈한이 막부 반대의 자세를 굳힌 가운데, 백성의 봉기 ·폭동이 계속되고 하급무사를 중심으로 정권을 천황에게 돌리라는 손노조이[尊王攘夷]와 도막(倒幕)운동이 격화하여, 막부는 쓰러지고 천황이 정치표면에 등장하는 메이지[明治]정부가 성립되었다.
에도시대 전통 화로와 거주공간
일본 에도시대 항구
에도시대 마쓰모토 성
메이지 유신과 근대 개혁 정책
1853년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페리가 군함 이끌고 에도 만에 등장해서 압력을 넣음→ 미일화친조약(가나가와조약)을 맺음→ 서구열강의 문 열림
1858년 일본과 서구 5개국 간에 통상조약 체결→ 생사와 차대량수출→ 국내 물가 급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반바쿠후 세력등장
반바쿠후 세력이 천황 승인 없이 외국과 조약 체결한 것 꼬투리잡음→ 천황숭배 열기 고조(천황의 정치참여)→ 존왕양이 주장→ 1867년 반바쿠후세력의 교토 쿠데타→ 궁궐호위, 왕정복고 단행→ 사무라이 집권시대가 막을 내림
메이지유신 정부 : 서양오랑캐를 쫓아내자는 주장으로 집권→ 집권 뒤 강력한 서양화정책 추진→ 1871년 '한'을 없애고 '현'을 설치(중앙정부 직할,폐번치현)→ 정치적 통일 → 사무라이 특권 박탈→ 1873년 징병제 실시→ 사무라이와 농민들의 저항 → 1877년 징병군대의 서남전쟁 진압.이것으로 실력을 인정받음→ 1872년 국민군학교령 반포로 4년 의무교육 시행
의회개설과 정당출범
1881년 자유민권운동 세력이 헌법제정과 의회개설 강력히주장함→ 천황의 이름으로 10년 후 헌법제정을 약속함
이토 히로부미가 헌법초안을 작성하기 시작 → 1885년 내각제도 만들어 근대적 정부 수립 →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헌법) 공포→ 천황으로 주권자 규정, 신성성 인정→ 군부를 천황에 직속, 선전포고 강화, 조약제결 등 주요 권한 천황에게 부여
1890년 중의원선거 실시 → 1898년 이토 히로부미가 오쿠마 시게노부,이타카기 다이스케이 정당들에게 정권 내주어 정당정치를 시험해 봄→ 1900년 이토 히로부미가 총재인 정당'정우회'등장
1918년 전국적 파급의 쌀소동→ 하라 다카시(정우회 총재)에게 조각 맡김→ 1919년 하라내각 탄생- 평민재상이라 불림→ 하라의 암살로 정당내각 주춤→ 1925년 제 2차 호헌 운동 발발→ 가토 타카아키 내각탄생 → 약 7년동안 정당내각제 실현→ 군부의 청년장교와 민간 우익의 테러와 쿠데타가 발생 → 1930년대 정당내각이 붕괴됨→ 중신그룹 중심의 내각구성 (군부와 천황 측근)
일본제국의 동아시아 침략과 패망
조선에 대한 영향력 강화→ 1876년 강화도조약, 1882년 임오군란 등으로 조선 진출 노력→ 1884년 갑신정변 패함→ 청에 대한 강경론 → 제국주의적 대외정책 지지(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
1894년 조선정국 혼미→ 갑오농민전쟁이일어남→ 청일 양국의 군대 조선 유입→ 일본군의 청군 기습으로 청일전쟁 발발 → 1894년 일본승리→ 1895년 1월, 청의 휴전교섭 요청→ 3월 시모노세키조약 맺음→ 일본-타이완할양(첫 식민지 획득)
러시아 등장→ 일본이 랴오둥 반도 차지(시모노세키조약)한 것을 삼국간섭 주도하여 철회→ 만주지역에 영향력 확대- 조선의 친러 움직임→ 아관파천으로 일본이 영향력 약화→ 러시아와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협상 결렬→ 영국(러시아 견제)이 일본과 동맹→ 러시아함대 급습 전쟁 개시함으로 1904년 러일전쟁 시작→ 1905년 일본의 승리로 끝나며 혁명과 발틱 함대가 궤멸됨→ 러·일간 포츠머스조약 체결→ 랴오둥 반도, 남사할린 차지, 한국에 대한 지배 인정(일본) → 한국과 을사보호조약- 외교권박탈,1910년 병합⇒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 타이완, 사할린 까지 일본의 영향력
제1차 세계대전(1914) : 일본의 운송·선박업 활기, 유럽자본철수한 중국시장에 일본제품 대거 유입, 승전국으로서 중국 산둥 반도와 남양 군도까지 진출
중국의 내셔널리즘으로 난관 봉착- 1919년 5월 4일 5.4운동, 국민당공산당 탄생(1920) → 1928년 장제스의 난징에 국민정부→ 일본의 적대정책→ 1931년 철도폭파사건꾸며 만주국 세움→ 국제연맹의 일본군 철수 요구→ 일본은 거부하고 국제연맹도 탈퇴→ 영미협조노선 깨짐- 무모한 외교노됨(중국과 서양열강에 적대화)
1937년 7월 중국군과의 충돌로 중일전쟁이 시작됨→ 난징대학살→ 미국의 장제스 국민정부 지원, 일본에 석유수출 금지로 경제제재 강화함→ 일본군 하와이의 미국 해군함대 기습공격→ 인도차이나 반도상륙해서 영국과 프랑스 세력 몰아냄→ 사이판함락, 미국공군기의 폭격세례(일본 본토)→ 연합국의 포츠담선언 발표에서 일본의 무조건항복 권고했으나 일본은 불응→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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