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영화의 간략한 내용
Ⅲ. 영화의 배경적 역사
Ⅳ. 중세의 대립들
1. 토미즘 VS 주지주의
2. 청빈과 청부
Ⅴ. 중세의 사건들
1. 종교 재판
2. 마녀사냥
#1 동성애
#2 농민 반란
Ⅵ. 나가는 글
Ⅱ. 영화의 간략한 내용
Ⅲ. 영화의 배경적 역사
Ⅳ. 중세의 대립들
1. 토미즘 VS 주지주의
2. 청빈과 청부
Ⅴ. 중세의 사건들
1. 종교 재판
2. 마녀사냥
#1 동성애
#2 농민 반란
Ⅵ. 나가는 글
본문내용
역사를 찾아보니, 자크리의 반란이라는 것이 있었다.
극심한 빈곤이 계기가 되어 촉발된 대규모의 지방 봉기는 1358년 북부 프랑스에서 발생한 “자크리”라는 농민 반란이었다. 프랑스 농민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1348년과 1349년의 흑사병은 엄청난 위력으로 경제와 인민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간에 전쟁이 벌어져 지방민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중세말의 전쟁들이 늘 그러했듯이 탐욕스런 병사들이 자행한 약탈과 방화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농민이었다.
1358년에 이르러 그들은 여태까지 짊어온 부담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격렬하게 봉기했다. 이렇다 할 분명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로 그들은 성을 불태우고, 영주들을 살해했으며, 영주의 부인들을 강간했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심각한 경제적 불만이 봉기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1358년에 북프랑스의 정치 정세가 대단히 불안했으며, 이것이 농민 봉기를 가능케 해 주었다는 점 또한 언급해야만 할 것이다. 국왕이 영국에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도시민 단체들은 군주의 권력을 제한시킴으로써 정부 제도를 개혁하고자 했고, 일부 귀족들은 권력 장악을 기도하고 있었다. 한편 장의 아들인 샤를은 거액에 달하는 부친의 몸값을 걷는 일과 국왕의 적대 세력 진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었다.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기회를 포착하지 않았더라면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 기회란 농민들의 생각처럼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기득권층은 전열을 가다듬어 반란자들을 학살했고 신속히 질서를 회복했다.
Ⅵ. 나가는 글
이 영화를 보면서 중세 시대의 사건들이 지금 시대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중세의 교회는 사람들의 신앙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다. 갖은 자들은 자신의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그 욕심은 거짓된 죄악을 남기게 되고, 그 죄악들은 자신들의 존재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그래서 중세의 교회는 은폐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의 호르헤 마저 희극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만 결국 자신마저 그 책을 먹고 죽게 되어 버린다.
지금 현재의 교회들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들의 교회를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은 헌금을 챙기기 위해서 ‘전도’활동을 벌리지만 성도들 앞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명목 아래 모든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그 당시의 교황은 ‘신의 대리자’였다.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을 받았고 교황을 거스르는 자는 파면당하며, 하나님에게도 버림 받아버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작년 팔을 수술하게 되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마침 병원에 내에서 수요 예배가 있어 그 곳에 참서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설교하는 전도사는 성경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자꾸 자기가 ‘하나님의 종’임을 강조하며 자기를 존대하기를 강조했다. 인간은 다같이 똑같은 인간일 뿐이지 신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람들의 대접에 혹해서 자신의 처지를 잊게 된다면 오히려 자신이 높아지기는 커녕 자신의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중심이 되었던 중세 시대에는 오히려 황제와 교황과의 싸움 그리고 동성애와 정치적 목적인 십자군 운동 등 자신들의 이익을 찾길 바랬던 행동들이 더 많이 나타났고, 그 어느 때보다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로 보여진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고자 싶은 바는 하나님이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믿던 믿지 않던 그것은 개인의 생각에 따라 결정하는 자유이겠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참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대하고 나에게 있어 가장 무섭고 존귀한 분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참고서적
강유원, 2004, “장미의 이름 읽기”, 도서출판 미토.
모리시마 쓰네오, 1997, “마녀사냥”, 현민시스템.
스털링 P. 램프레히트, 1963, “서양 철학사”, 을유 문화사.
움베르트 에코, 1992,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열린책들.
장 베르동, ?, “중세는 살아있다”, 도서출판 길.
E.M. 번즈, R. 러너, S. 미첨, 1984, “서양 문명의 역사”, 소나무 출판사.
인터넷 위키백과 사전.
극심한 빈곤이 계기가 되어 촉발된 대규모의 지방 봉기는 1358년 북부 프랑스에서 발생한 “자크리”라는 농민 반란이었다. 프랑스 농민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1348년과 1349년의 흑사병은 엄청난 위력으로 경제와 인민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간에 전쟁이 벌어져 지방민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중세말의 전쟁들이 늘 그러했듯이 탐욕스런 병사들이 자행한 약탈과 방화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농민이었다.
1358년에 이르러 그들은 여태까지 짊어온 부담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격렬하게 봉기했다. 이렇다 할 분명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로 그들은 성을 불태우고, 영주들을 살해했으며, 영주의 부인들을 강간했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심각한 경제적 불만이 봉기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1358년에 북프랑스의 정치 정세가 대단히 불안했으며, 이것이 농민 봉기를 가능케 해 주었다는 점 또한 언급해야만 할 것이다. 국왕이 영국에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도시민 단체들은 군주의 권력을 제한시킴으로써 정부 제도를 개혁하고자 했고, 일부 귀족들은 권력 장악을 기도하고 있었다. 한편 장의 아들인 샤를은 거액에 달하는 부친의 몸값을 걷는 일과 국왕의 적대 세력 진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었다.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기회를 포착하지 않았더라면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 기회란 농민들의 생각처럼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기득권층은 전열을 가다듬어 반란자들을 학살했고 신속히 질서를 회복했다.
Ⅵ. 나가는 글
이 영화를 보면서 중세 시대의 사건들이 지금 시대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중세의 교회는 사람들의 신앙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다. 갖은 자들은 자신의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그 욕심은 거짓된 죄악을 남기게 되고, 그 죄악들은 자신들의 존재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그래서 중세의 교회는 은폐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의 호르헤 마저 희극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만 결국 자신마저 그 책을 먹고 죽게 되어 버린다.
지금 현재의 교회들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들의 교회를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은 헌금을 챙기기 위해서 ‘전도’활동을 벌리지만 성도들 앞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명목 아래 모든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그 당시의 교황은 ‘신의 대리자’였다.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을 받았고 교황을 거스르는 자는 파면당하며, 하나님에게도 버림 받아버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작년 팔을 수술하게 되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마침 병원에 내에서 수요 예배가 있어 그 곳에 참서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설교하는 전도사는 성경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자꾸 자기가 ‘하나님의 종’임을 강조하며 자기를 존대하기를 강조했다. 인간은 다같이 똑같은 인간일 뿐이지 신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람들의 대접에 혹해서 자신의 처지를 잊게 된다면 오히려 자신이 높아지기는 커녕 자신의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중심이 되었던 중세 시대에는 오히려 황제와 교황과의 싸움 그리고 동성애와 정치적 목적인 십자군 운동 등 자신들의 이익을 찾길 바랬던 행동들이 더 많이 나타났고, 그 어느 때보다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로 보여진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고자 싶은 바는 하나님이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믿던 믿지 않던 그것은 개인의 생각에 따라 결정하는 자유이겠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참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대하고 나에게 있어 가장 무섭고 존귀한 분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참고서적
강유원, 2004, “장미의 이름 읽기”, 도서출판 미토.
모리시마 쓰네오, 1997, “마녀사냥”, 현민시스템.
스털링 P. 램프레히트, 1963, “서양 철학사”, 을유 문화사.
움베르트 에코, 1992,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열린책들.
장 베르동, ?, “중세는 살아있다”, 도서출판 길.
E.M. 번즈, R. 러너, S. 미첨, 1984, “서양 문명의 역사”, 소나무 출판사.
인터넷 위키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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