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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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도불교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석가모니의 삶과 사상

2. 불교사상의 기원

3. 불교사상의 전개

4. 인도의 원시불교

5. 부파불교의 시대

6. 주변 각 지역으로 전파되는 불교

7. 대승불교의 형성과 발전 및 사상

8. 인도불교의 밀교화와 힌두이즘

9. 이슬람교의 침입과 불교의 쇠퇴

10. 불교부흥 운동과 오늘날의 인도불교

11. 참고자료

본문내용

게 되며, 악법(惡法)을 막고 선법(善法)을 갖게 된다고 함.
를 설하고 있다. 밀교는 진언승(眞言乘,Manttrayana)인 순수밀교와 금강승(金剛乘, Vajrayana), 시륜승(時輪乘, Kalacakrayana)이라 불리는 탄트라 밀교로 나눌 수 있다. 진언승에서는 지혜와 방편이 중심 교리로 경전에는 대일경(大日經,Mahavairocana-sutra),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있다. 금강승에서는 지혜는 정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여성으로, 방편은 동적인 남성에 비유되어 남녀의 교합을 요가로서 나타내었다.문헌으로는문수사리근본의궤경(文殊師利根本儀軌經,Manjusrimulakalpa), 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一切如來金剛三業最上秘密大敎王經,Guhyasamajatantra), 비밀집회(秘密集會,Tathagataguhyaka)탄트라가 있다.
점차로 불교의 본질인 열반이 힌두교의 탄트리즘의 그것과 거의 등질의 것이 됨으로 불교는 불교로서의 존재 이유를 잃고 힌두세계로 흡수 될 수밖에 없는 한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금강승의 일개 분파인 시륜승은 10세기 무렵부터 성행하여 인도밀교의 최후가 된다. 11세기초 활약한 탄트라 밀교 논사로는 후에 티베트에 들어가 티베트 불교를 부흥시키는 아티샤(Atisa Dipapamkara Srijnana, 980-1052)가 있다. 대부분 티베트어로 되어 있는 밀교, 탄트라 문헌은 그 연대가 거의 알려 지지 않고 있으며 내용도 아직 밝혀지지 않아 연구 될 과제이다.
9. 이슬람교의 침입과 불교의 쇠퇴
아프카니스탄의 투르크계 가즈니(Ghazni) 왕조는 이슬람교도로 986년부터 인도정복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북인도 원정에서 이민족의 이슬람교의 개종, 노예와 물자의 약탈이 주된 목적이였으므로 점령지를 오랫동안 지배하지 않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보물을 약탈했으며 승려를 살해하는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참극을 자행했다. 구르(Ghur) 왕조에 이르러 비크라마시라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 본토로부터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한 원인을 고찰 해보자. 밀교의 불교 의례는 카스트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개방되어 일정한 통과의례가 없이 단지 덕을 쌓는 것과 기원 의례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신자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신도들의 결속도 그리 강하지는 못하여 카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힌두세계 내에 토착화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교도의 침입이 북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게 되는 큰 원인이 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가 살해되었으며, 혹은 네팔, 티벳 등지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를 외호하였던 왕가 또는 자산가가 몰락하였던 점도 간과 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슬람교도의 박해에 의해 인도 불교가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미 불교의 본질적인 열반이 힌두교의 그것과 유사하게 됨으로 불교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여 불교가 점차로 힌두세계로 흡수됨으로 그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침입이 북인도 불교의 쇠퇴를 채찍질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이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 불교는 탄트라 밀교 이후 독자성을 상실하였으며 불교도로서의 연대감이나 교단 전체로서의 생활에 대한 강제력이 없어 응집된 집단으로 형성되지 못하여 힌두세계에 정착, 생존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북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 불교는 내적인 이유로 힌두세계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마침내는 힌두세계에 흡수되어 그 모습을 상실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침략을 받지 않은 남인도와 기타 각지의 불교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 힘을 잃고 소멸되어 갔다.
10. 불교부흥 운동과 오늘날의 인도불교
19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인도 문화의 르네상스가 제창되자 스리랑카의 다르마팔라 등에 의한 인도 불교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붓다가야 불탑의 보수와 불교도에 의한 관리가 실현되었다. 이 운동은 ‘대보리회’가 중심이 되었다. 또 한 갈래의 부흥 운동은 불가촉천민으로 천대받던 하층 민중들 사이에 반(反)힌두의 표상으로 사성평등(四姓平等)의 불교를 신앙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부처님 열반 2천 5백 년을 기념하는 붓다자얀티(1956)에 암베드카르를 지도자로 해서 불교에의 집단 개종이 일어났다.(불교 입문) 불교가 12세기 이슬람 침입을 기회로, 이미 쇠퇴, 동화되고 있던 불교는 인도 본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불교도가 오랫동안 쌓아 올렸던 정신적 유산의 대부분은 인도인들에게 전해져 불교라는 이름을 의식하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도 많은 인도인은 불교적인 것이다. 현재 힌두의 신앙 속에는 불교적 사상이나 실천의 영향과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방글라데시와 아샘 그리고 버마의 아라칸 지방에는 현재까지도 밀교 계통의 집단이 존속한다고 한다. 1951년 조사에 의하면 인도 총인구의 0.5%인 약 18만 명이 불교도였다. 그러나 그 뒤 1956년 이래로 B.R. 암베드카 박사의 주도 하에 불가촉천민 계층인 마하르족이 집단개종을 행하여 350만 명의 신불교도(Neo-Buddhist)가 탄생하였다. 개종한 그들은 힌두교의례 대신 불타를 예배하고 불교 의례를 행하고 있다. 인도에 있어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고대 불교는 왕족과 부호 등 사회 특수 계층의 종교였다. 생산계급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천시되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었고, 한편 비생산계급들은 생산계급에 기생하면서 사회적 특권과 물질적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만인평등과 고통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을 외치며 출발했던 불교는 여러 번에 걸쳐 자기 변혁을 시도하지만 끝내 인도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류층의 종교로서 민중의 고통 위에 풍요로운 생활을 엮어왔던 것이다. 인도의 찬란한 불교문화의 그늘에는 수많은 민중들의 고통과 한숨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1. 참고자료
인도불교(문화사적 탐구), 나라야스키. 정호영 옮김, 민족사
불교 그 현대적인 조명, 찰스 프레비쉬 외. 박용길 옮김, 고려원
  • 가격1,5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9.08.11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8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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