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개혁, 루터의 신학사상, 루터] 루터의 종교개혁과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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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터의 종교개혁, 루터의 신학사상, 루터] 루터의 종교개혁과 신학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루터의 신학사상과 생애

2. 루터의 저서

3.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4. 마틴 루터와 바티칸 사이의 신학논쟁들

5. 루터 종교개혁의 영향

6. 대사논쟁

7. 루터의 신학사상과 토마스 뮌쳐의 사상 비교

8. 참고자료

본문내용

억압하는 성직자들과 학자, 집권자들을 향해 궐기하기를 원했고 성직자들의 부패와 죄악성을 견책하고자 했다. 이 글에서 그는 잘못된 성서관으로 성직자들을 공격하고 새로운 교회들의 시작을 선포했으며 선택된 자의 폭력을 용서하는 천년 왕국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프라그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는 알스테드로 가는데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성요한 교회의 목회자로 초빙을 받는다. 그는 그곳에서 참여하는 예배 의식을 개혁하여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게된다. 뮌쳐는 신정정치를 꿈꾸며 선민 동맹을 비밀리에 조직하는데 주구성원은 일반 서민들이었다. 그들은 카톨릭성당을 불사르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뮌쳐는 윌하우젠으로 자리를 옮겨 한번의 실패를 겪으며 도시평민의 지지와 호응속에 본격적인 반란을 계획, 지휘하게된다. 그는 알스테드의 광산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선동하여 수많은 인파가 작센지방으로 모이게 되고 반란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게됐다. 그러나 루터의 개입으로 뮌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된다. 루터는 반란 농민을 제후들의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허락하고 성서로 그 사실을 정당화시켰다. 그로서 제후들은 연합하여 연합군을 결속하고 8000명 가까운 농민을 사살, 뮌쳐를 사형시키므로 농민 전쟁은 일단락 하게 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뮌쳐의 신학사상은 비성서적이고 급진적이며 환상적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뮌쳐의 사상과 마틴의 사상을 비교하며 신론, 성령론, 성서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의 순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의 하나님 이해는 성서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온 백성을 구원 대상으로 보는 만민의 하나님을 주장했다. 반면에 루터는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으며 믿음으로만이 得義를 할 수 있다는 以信得義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뮌쳐의 성령론은 그의 사상에서 핵심이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만나는 성령에 대해 역설했는데 이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받을 수 있다는 성령의 내적 체험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나 루터는 성서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뮌쳐는 그의 성서론에서 마틴의 만인 제사장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성서를 명암대조로 인한여 색은 곧 성서이고 빛은 곧 성령임을 강조했다. 루터는 하나님의 외부적인 역사적인 성서에 의존하는 성령을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뮌쳐의 인간이해는 지혜의 출발로서의 내적혼란과 이 혼란속에 홀연히 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대변된다. 그는 묵상을 통해 죄로부터의 해방은 신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율법에 따라 벌의 자발적 수용에 의해 이루어짐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곧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로서의 인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인간은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인간을 강조했다. 뮌쳐는 구원에 대해 언급하며 인간에 능동적 협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성령과 인간의 본성과의 협동이 구원을 이룬다고 본 것이다. 루터는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구원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은총을 내려받는 구원을 주장한 것이다. 종말론에 있어서 뮌쳐는 다니엘서를 재해석하며 그가 처한 당 시대가 종말의 시대라고 보고 새시대 도래의 준비를 하나님의 법을 보호하는 폭력으로 이끌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뮌쳐의 신정정치와 천년왕국사상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 한다. 성령의 불에 의해 성화되면 선민은 세상을 신의 왕국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며 지상의 신의 왕국 실천으로 선민 동맹을 창설한다. 선민동맹을 통해 불신자인 압제자를 몰아내고 거기에 新 사도교회를 세움으로 지상에 신의 왕국이 세워진다고 뮌쳐는 생각했다. 이러한 선민동맹으로 그는 세계의 기독교화를 꿈꾸었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와 기존 정치체제와는 다른 개혁된 질서를 추구하였다. 교회론에 있어서 루터는 기존 교회의 잘못 믿는 것에 대한 개혁을 말했지만 뮌쳐는 舊 교회의 타파와 새 교회(사도적 교회)의 건립을 주장했다. 곧 개선의 여지가 없는 舊 교회를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라 격파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의 천년왕국 사상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루터는 신학적 우선순위를 성서에 두었고 뮌쳐는 성령에 두었으며 구원과 종말론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뮌쳐의 신학사상은 성서에 두지 않고 계시와 성령의 임재를 강조한 신비적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혁명사상은 높이 살만하다고 본다. 뮌쳐에 대한 신학자들의 평가를 보면 전통적인 방식대로 그를 이단시하는 부류와 종교개혁과 같은 범주에서 좌파 혹은 급진적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이를 종교개혁에 한 분파로 보는 부류, 그리고 사회적인 현상으로 보아 사회개혁운동으로 보는 부류가 있다. 하지만 그를 평가함에 있어서 간과하여서는 안될 점은 과정과 결과를 제외한 그의 동기의 정당성이다. 그의 신학적 배경은 오류가 있었다 해도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기독교의 개혁을 꿈꾸었고 아울러서 사회 경제 전반적인 모순까지도 염두해 둔 진일보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과정에 있어서 인본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구원과 개혁을 우선으로 하는데 비해 뮌쳐가 인간보다는 사회 경제 전반의 개혁이 우선된다고 본 차이로 인해 현시대에 많은 비평을 받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도 일부 교단과 목회자들 사이에는 뮌쳐의 사상을 일부 수용하고 있으며 실천에 옮기려 하는 조류가 있다. 아울러 그의 연구와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질 것이다.
8. 참고자료
이종대. “루터신학의 근본 명제와 미친 영향들” (1991. 고신대원 석사학위 논문).
김성수. “토마스 뮌쳐의 종교개혁” (1994.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
이용락. “종교개혁사에 나타난 독일 농민전쟁과 토마스 뮌쳐와의 관계연구” (1991. 총신대원 석사학위 논문)
김광태.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사상 형성 배경에 관한 연구” (1990. 서울신대원 석사학위 논문).
박양식. “토마스 뮌쳐의 천년왕국 주의 연구” (1992. 서울신대원 석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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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8.13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9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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