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집필 목적 배경 가치 및 특징 삼국사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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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의 집필 목적 배경 가치 및 특징 삼국사기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삼국유사의 내용

2. 저자 일연

3. 삼국유사의 집필 목적 및 배경

4. 삼국유사의 가치 및 특징

5. 삼국유사의 현대적 의의

6.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비교

7. 주관적 감상

8. 역사서술의 본질적 의미 소고

9. 참고자료

본문내용

았다고 한다. 옛날, 철을 지니고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은 그만큼 군사력의 우세를 나타낸다. 내가 아는 한, 북쪽에서부터 철기 문화가 전파했다고 하는데, 중앙집권적인 나라인 부여나 고구려는 군사력 관리( 철의 제련, 사용방법등)를 철저히 했을 것이고, 그에 반해 남쪽에서는 제후국들이 앞다투어 철 기술을 수입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군사력이 비슷해진 가야국들은 통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삼국유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이영희 씨의 노래하는 역사 ( 1994, 조선신문사)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에서 의견의 차이가 난다. 삼국유사를 먼저 살펴보면, 신라 제 8 대 아달라왕( 阿達羅王 ) 4년 정유에, 동해가에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연오랑이 바위( 혹은 물고기 )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으며, 세오녀 역시 일본으로 가서 귀비( 貴妃 )가 되었다는 대목이 나오며, 일본제기( 日本帝紀 )에는 신라 사람이 왕이 된 자가 없으니 이는 변방 고을의 소왕( 小王 )이지 진왕( 眞王 )은 아니라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노래하는 역사에 따르면, 연오랑은 일본의 진왕이며, 바로, 연개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제기에 따라 신라사람이 일본의 왕이 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 사람인 연개소문이 신라에 들려서 일본으로 갔다면 그런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 당시의 각국의 국력을 살펴보았을 때, 그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신라나 일본은 당시 거의 비슷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거나 일본이 더 약했다고 추정된다. 시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신라 사람들이 일본에서 백제계 사람들과 정권 다툼을 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삼국유사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간 뒤,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했는데, 그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일본에 가서 고을의 소왕정도 밖에 안되는건 이상하다.
이번에는 과거의 정치적인 공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신라의 제 29대 태종대왕( 太宗大王 )은 김춘추( 金春秋 )로, 김유신의 막내누이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때, 김유신은 김춘추를 의도적으로 막내누이를 결혼시킨 게 아닌가 한다. 김유신이 춘추공과 함께 정월 오기일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옷끈을 떼고, 집에 데려가 막내 누이와 만나게 했다. 또한 일부러 화형하는 척하여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생 문희( 文姬 )를 결혼시키는 것을 왕명으로 정당화 시켰다. 완벽하게 계획된 결혼이라고 생각되는데 왜 그랬을까. 왜 김유신은 김춘추와 한가족이 되려고 애썼을까. 김유신은 무력( 武力 ) 이간( 伊干 )의 아들인 서현( 舒玄 ) 각간( 角干 )김씨의 아들이고, 김춘추는 각간 추봉 문흥대왕( 文興大王 )을 아버지로 두고 어머니는 진평대왕( 眞平大王 )의 딸인 천명부인 ( 天明夫人 )이었다. 그렇다면 김유신은 정치권의 핵심부에 들어가기 위한 정략 결혼이었다는 건가. 김유신은 무신( 武臣 )집안의 출신이고 김춘추는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것을 예감한 김유신은 미리 한 가족으로 묶었으리라. 특히 김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김유신과 함께 행동하여 대업을 이루었다는 부분에서 왜 하필이면 김유신이냐는 것이 의문이다. 왕과 함께 일을 도모한 만큼이나 정치력이 막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쓴 것이다. 따라서 쓰여있는 사상의 기본 바탕은 불교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삼국유사의 후반부를 보면 승려가 사람들의 병을 신통력으로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대부분 잡신을 부처의 힘으로 없앤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일연이 삼국유사를 썼을 때, 불교 사상에 반대되는 이야기는 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유교적 사관에 비추어 많은 이야기를 왜곡하거나 삭제하였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삼국유사에 적용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부처의 신통력으로 몰아내졌던 잡신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역사서를 읽다보면 이러한 의문이 계속 생긴다. 그래서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앞서 언급한 노래하는 역사를 같이 읽었다. 어느 말이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비교, 대조하면서 읽다보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서는 것 같다. 내 생각이 맞았건 틀렸건 간에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8. 역사서술의 본질적 의미 소고
역사서술은 저자의 다양한 인식체계 아래 서술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명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한 사건은 색다르게 비춰진다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인식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현재까지 사학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양 사서의 서술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저술 당시의 사회상황과 저자개인의 경험을 통해 획득된 눈을 통해 서술의 위치는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사건을 저자의 역량에 따라 보충 또는 삭제를 통해 전말을 제시함으로써 역사는 빛을 발할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동시대에 저술되었음에도 당시의 시대배경과 저술목적, 그리고 저자의 생애 및 서술상의 방법차이에 의해 전형적인 관찬과 사찬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후세에 있어서의 전대 사학자와 사서에 대한 인식도 후세 사학의 인지를 통해 재조명될 수 있음을 전술을 통해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가 수레바퀴와 같이 돌고 도는 재반복의 진행과정이라 한다면 진정한 역사서술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것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진실을 볼 수 있고 역사가 재반복의 과정을 통해서도 앞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 논하는 바이다. 이러한 점에서 삼국유사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정신을 알려줌으로써 민족의 진일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을 제시한 역사적 사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 참고자료
일연,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이재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충남대학
정무룡, 삼국유사의 문화적 탐색, 신지서원
김창길, 해설 삼국유사, 임마누엘
이기백,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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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8.29
  • 저작시기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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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50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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