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채 정면 5칸 측면 1칸, 사당 3칸
분 류 : 고가
1979년 1월 23일 중요민속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다. 월성 양동마을(중요민속자료 189)에 있다. 양동마을 중앙 산등성이의 중간지점 동쪽 언덕받이에 있다. 1620년(광해군 12)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4대손 이의잠(李宜潛)이 건립하였고, 그 후 6대손 이정계가 증축하였다. 수졸당이라는 당호(堂號)는 이의잠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대문채·아래채가 근접하여 일곽을 이룬 튼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향좌단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을 두고, 옆에 정면 2칸, 측면 1.5칸의 방을 둔 후 앞에 반 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방 우측에 바로 2칸의 대문간이 있다.
안채는 서측 꺾임부에 부엌을 두고 동측으로 안방 2칸, 대청 2칸, 건넌방 1칸을 차례로 배열하여 정면 6칸이 되었다. 부엌 북측 아래쪽으로는 방, 찬광, 광이 각 1칸씩이고 반칸의 안변소가 연이어 있다. 아래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데 어칸이 안대문이고, 북쪽 2칸은 광이고 남쪽 2칸은 외양간과 방앗간이다. 안채 뒷쪽 서남측 동산에는 사당 3칸이 있다.
사랑채는 나지막한 막돌흩은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전면에는 4개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도리는 납도리이고 가구(架構)는 5량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가적지붕 형식의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얹었다.
6. 양동마을을 다녀와서
양동마을은 이번 발표를 위해서 방문한 것을 포함해서 총 4번을 다녀왔다. 처음 방문했을때는 2006년이었는데,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너무 산만한 마을처럼 보였다. 무엇인지 정돈되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 3월에 갔을 때와 4월말에 갔을때는 확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마을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교회의 십자가가 마을 입구의 초등학교 옆으로 이전했다는 것이다. 양동마을의 모습과는 동 떨어진 교회가 처음 봤을때는 정말 아이러니하고, 부조화스러워 보였는데 이번에 방문했을때는 이전을 하여 정말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마을의 큰길 옆으로 배수로를 크게 낸 것, 전신주를 지하로 묻은 것 등은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양동마을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마을을 변화하고 수리하고 있어서 다음에 가면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을의 어디에도 휴식공간이나 식사를 할 곳이 없는 것이 아쉽다. 식당을 만드는 것이 마을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면 마을 입구에라도 휴식공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런 것이 개선 된다면 좀더 관람하기 좋은 양동마을이 될 것 같다.
※ 참고문헌
경주 양동마을 안내책자, 경주시 문화관광과, 製作年 未詳.
김봉렬, 韓國의 建築, 공간사, 1994.
문원공회재선생숭찬사업회 편집, 玉山書院과 良洞마을, 우리출판사, 1987.
장주근, 맹인재, 良洞마을, 문화재관리국, 1973.
경상북도, 良洞마을 調査報告書, 경상북도, 1979.
분 류 : 고가
1979년 1월 23일 중요민속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다. 월성 양동마을(중요민속자료 189)에 있다. 양동마을 중앙 산등성이의 중간지점 동쪽 언덕받이에 있다. 1620년(광해군 12)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4대손 이의잠(李宜潛)이 건립하였고, 그 후 6대손 이정계가 증축하였다. 수졸당이라는 당호(堂號)는 이의잠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대문채·아래채가 근접하여 일곽을 이룬 튼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향좌단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을 두고, 옆에 정면 2칸, 측면 1.5칸의 방을 둔 후 앞에 반 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방 우측에 바로 2칸의 대문간이 있다.
안채는 서측 꺾임부에 부엌을 두고 동측으로 안방 2칸, 대청 2칸, 건넌방 1칸을 차례로 배열하여 정면 6칸이 되었다. 부엌 북측 아래쪽으로는 방, 찬광, 광이 각 1칸씩이고 반칸의 안변소가 연이어 있다. 아래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데 어칸이 안대문이고, 북쪽 2칸은 광이고 남쪽 2칸은 외양간과 방앗간이다. 안채 뒷쪽 서남측 동산에는 사당 3칸이 있다.
사랑채는 나지막한 막돌흩은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전면에는 4개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도리는 납도리이고 가구(架構)는 5량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가적지붕 형식의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얹었다.
6. 양동마을을 다녀와서
양동마을은 이번 발표를 위해서 방문한 것을 포함해서 총 4번을 다녀왔다. 처음 방문했을때는 2006년이었는데,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너무 산만한 마을처럼 보였다. 무엇인지 정돈되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 3월에 갔을 때와 4월말에 갔을때는 확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마을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교회의 십자가가 마을 입구의 초등학교 옆으로 이전했다는 것이다. 양동마을의 모습과는 동 떨어진 교회가 처음 봤을때는 정말 아이러니하고, 부조화스러워 보였는데 이번에 방문했을때는 이전을 하여 정말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마을의 큰길 옆으로 배수로를 크게 낸 것, 전신주를 지하로 묻은 것 등은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양동마을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마을을 변화하고 수리하고 있어서 다음에 가면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을의 어디에도 휴식공간이나 식사를 할 곳이 없는 것이 아쉽다. 식당을 만드는 것이 마을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면 마을 입구에라도 휴식공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런 것이 개선 된다면 좀더 관람하기 좋은 양동마을이 될 것 같다.
※ 참고문헌
경주 양동마을 안내책자, 경주시 문화관광과, 製作年 未詳.
김봉렬, 韓國의 建築, 공간사, 1994.
문원공회재선생숭찬사업회 편집, 玉山書院과 良洞마을, 우리출판사, 1987.
장주근, 맹인재, 良洞마을, 문화재관리국, 1973.
경상북도, 良洞마을 調査報告書, 경상북도,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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