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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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룬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형상”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는 밀납(wax) 위에 남겨진 도장이나 반지 인장 자국을 나타낸다. 이 도장 자국은 그 인친자의 임재를 나타내는 권위적이면서도 결정적인 표시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자이지만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죄의 핵심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나머지 피조물들이 인간 아래 의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의도이다.
창세기 1:27에서 우리는 “창조하다”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되는 것을 본다. 1절에서는 전체 창조 과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며 동시에 성(性)으로 인한 영광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그 권위를 행사하며 살아갈 때 축복과 능력을 얻는다.
창세기 2장에 나와 있는 인간 이해보다 더 뛰어난 통찰력은 아마 없을 것이다. 1장 끝 부분 에서 그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드러내 보이며 성별과 피조물들에 대한 권위 행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는 인간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은 창세기 2장 4b-24절에 확대되어 나타난다. 인간에서부터 시작하여 만물의 질서가 언급된다. 인간(아담)은 창조주 하나님이 원하시는 크기와 모양대로 흙(아다마)으로 빚어지고 만들어진다. 1장에도 동일한 지배 개념이 나타나 있다. 인간은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구약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과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상대편에 대한 권위와 능력을 암시한다. 여기서 인간은 이름을 선택하는, 즉 동물들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권세를 받는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결혼 및 가족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책임과 권위를 지닌 피조물이요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피조물들 안에서 즐거이 일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여인을 선물로 주는 것은 창세기 2장의 절정이다. 여기서 남자(이쉬)는 여자(잇샤)를 보고 열광적으로 기뻐한다.
창세기 2장에는 우리를 군소리 못하게 만드는 짤막한 말씀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란 영원히 게으름을 피우며 감각적 쾌락만을 누리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에게 즐거이 순종하며 사는 삶이다.
♣ 죄
창세기 1장과 2장에 묘사되어 있는 완전한 모습이 우리에게 피조물들의 연합과 조화를 바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 준다면, 오늘날 인간들의 형편은 3장에서 뱀이 여자에게 말하는 거짓말 안에서 그 열쇠를 찾아볼 수 있다.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인간의 헛된 망상으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인간은 매일 지상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류의 비극은 그들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다”는 속된 믿음 안에서 놀라운 하나님과의 연합을 버린다는데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기 운명의 주관자라고 여기며,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고 피조물들을 자기들 편이에 따라 개발하여 스스로의 탐심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여기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의 언급은 단호하다. “너희는 스스로 ‘죽지 않으리라’고 여기지만, 너희에게 그 결과들이 임할 것이며, 그 결과들은 너희가 피할 것으로 믿고 잇는 살아있는 죽음의 상태로 너희를 이끌어 가리라.”
창세기 처음 두 장에는 “죄가 무엇인가?” 죄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고 단호하게 알 수 있다. 죄는 조그만 찰과상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주고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을 왜곡시키는 치명적인 큰 상처이다. 창세기 3장과 4장1-16절은 하나님에 대한 배척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소위 살아있는 죽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아주 간단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죄는 인간의 거역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인간은 거역을 하고 싶어하며, 다만 죄를 지을 핑계만을 찾고 있을 뿐이다.
거역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죄는 매우 매혹적인 것으로서, 가장 그럴듯한 이유들을 통해 힘과 독립성을 제공해 준다. 본질적으로 그 핑계들은 매우 영리하며 효과적이다. 그들은 음식 먹을 필요성을 갖고 있으며, 아름다워지고 지혜로와 질 필요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올바로 이루어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죄의 종말은 기대했던 대로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다.
여자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남자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이 때에 천둥 번개나 지진, 하늘의 음성이나 바람 같은 것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갑자기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게 된 것뿐이다. 부끄러움 때문에 그들은 몸을 가리울 필요성을 느꼈다. 벌거벗은 부끄러움에 빠져 있던 그들은 하나님과 대면을 하며, 거기서 그들은 죄의 다음 단계인 책임 전가를 행한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는 다시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인과 아벨은 죄를 고조시키는데, 이들을 통해 질투와 살인이 역사 속에 들어온다. 살인은 죄를 은폐하려는 좀 더 교묘한 시도를 낳으며, 무시무시한 무관심의 진술을 낳는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더욱 불행한 일은 이제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된 가인이 사람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우리는 벗어버려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즐거이 순종하도록 창조된 인간은 부끄러움과 두려움, 분노, 무관심과 신뢰의 결여 등으로 파괴되고 있다.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체험하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주셨다. 따라서 이제 상담자인 우리가 먼저 우리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임재를 깨달아 다른 사람들을 두려움과 부끄러움에서 끌어내어 예수께 순종하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34페이지
  • 등록일2009.10.14
  • 저작시기2002.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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