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모택동 : 毛澤東思想
Ⅲ. 등소평 : 中國特色社會主義
Ⅳ. 강택민 : 3個 代表論
Ⅴ. 호금도 : 和諧社會
Ⅵ. 중국 이데올로기의 평가
Ⅶ. 결론
* 참고문헌
Ⅱ. 모택동 : 毛澤東思想
Ⅲ. 등소평 : 中國特色社會主義
Ⅳ. 강택민 : 3個 代表論
Ⅴ. 호금도 : 和諧社會
Ⅵ. 중국 이데올로기의 평가
Ⅶ.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 혁명”이라고 했다. 이희옥, “체제전환과 중국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모색,” 「국제정치논총」, 제45집 1호(2005), p.202.
으로 부를 수 있다면 향후 중국사회주의가 경향적으로 과거의 고전적 사회주의로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이나 대안의 이데올로기도 부재한 상황이다. 오히려 사회주의의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중국형 삼민주의를 도입하거나 중국형 사회민주주의를 실험하는 등 새로운 모색을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의 변화는 중국형 시장경제 모델을 빠르게 학습하고 있는 베트남이나 향후 중국적 개혁개방을 학습하는 것 이외의 뚜렷한 대안이 없는 북한사회주의, 그리고 남아있는 사회주의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중국이 경제와 정치, 이념과 현실의 부조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유형의 사회주의를 연착륙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곧바로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역사의 종언’이 아니었듯이 중국사회주의의 변화는 자본주의와의 이론적 대화를 열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국가의 자기혁신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희옥, 앞의 글, pp.90-93.
Ⅶ. 결론
중국공산당은 1949년 신중국 건립이후 일당독재를 사회주의 실현의 목표 수단으로 실시해왔으며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신 개념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창조하고 또한 정치사회적으로 활용하여 왔다. 신중국 성립이후 현재까지 중국 정치무대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역사적 지도자 시기가 있었다. 매 시대마다 각기 ‘특색을 갖춘’ 이론, 노선, 정책이 있었으며, 모두 중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었다. 그들은 서로 계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다른 정치이데올로기 유형을 형성해왔다. 다시 말해, 중국의 정치이데올로기는 다른 시기에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산주의’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모든 시기의 정치이데올로기를 개괄할 수 없을 것이다.
모택동을 핵심으로 공산당 제1세대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로 삼아 중국공산당의 정치노선과 결합시켜, 신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제도의 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공산당을 건설하였는데 우리는 이를 모택동사상이라 한다. 모택동은 중국내부의 주요한 사회모순을 무산계급과 자산계급간의 모순으로 보고,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서 전국범위의 대중성·사상성·정치성·조직성을 갖춘 중국공산당을 건설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4인방 척결과 문혁의 종결 이후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등소평은 새로운 공산당 건설을 역설하게 된다. 실사구시와 사상해방을 모토로 하여,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바탕으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역설한다. 특히 1992년 등소평은 ‘남순강화’에서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도 있으며,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에도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성격은 정치에서 경제로의 전환이다. 요약하자면, 정치결정론과 의지주의 포기, 경제생산력이 제1성, 정치와 계급투쟁이 제2성이라는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 사회 발전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경제라는 이론.
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2세대가 추진한 개혁개방은 지난25년 간 중국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중국은 개혁개방 직전의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산력발전의 발전과 이에 적합한 상층구조의 구축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등소평의 후계자로 선출된 강택민은 전임자의 중국식 사회주의를 계승하면서, 이러한 환경에 적합한 상층구조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이념을 주창하였는데, 이것이 3개 대표다. 강택민은 “3개 대표는 당건설의 근본이고, 집정의 기초로써, 역량의 원척이다.”라고 주장하면서, 21세기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좌표로 삼을 것을 역설하였다. 이재호, 앞의 글, p.229.
강택민의 3개 대표론에 이어 호금도는 과학발전과과 조화사회론을 내세움으로써 차별적인 발전론인 ‘선부론’을 탈피해, 평등(균형발전)을 강조한 ‘조화사회’를 주창함으로써 중국식 사회주의의 연착륙을 꾀하고 있다.
1949년 신중국 성립이후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이데올로기는 중국 정치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으로써 중국 정치의 근간을 지배해 왔다. 또한 모택동에서 호금도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새로운 정치지도자와 정권 마다 신 개념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생성시켰으며 또한 그것은 정치사회적으로 활용되어 왔었다. 따라서 중국정치 이데올로기 연구는 당대 중국 연구의 주요한 부분으로 중국 정치 발전과 정책변화의 관건이 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중국정치 이데올로기는 정치권력의 운용을 통하여 중국 사회 및 사회단체들을 연결하고 특정적인 정치질서를 발전시키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이희옥. “중국의 이데올로기 : 이념과 현실.” 유세희.「현대중국정치론」서울 : 박영사, 2005.
고성빈. “중국식사회주의이념의 생성과 전개에 대한 고찰.” 「한국과 국제정치」, 33권(2000)
김달중. “중국의 개혁정치와 이데올로기.”「공산권연구논총」, 16권(1992)
김정계. “중국공산당 통치이데올로기의 변용과정 연구.”「동아인문학」, 제14집(2008)
김정계, 하상식. “중국공산체제 지도이데올로기의 이행과정 : 1921~2000.”「지역발전 연구」, 제2권 제3호(2002)
남종호. “중국 정치 이데올로기 변화연구.”「국제지역연구」, 제13권(2009)
박병석. “중국형 이데올로기 수정의 현재적 의미 : 신권위주의논쟁을 중심으로.”「중소연구」, 17권(1993)
정재일. “현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 :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중심으로.”「중국학연구회」, 제13집(1997)
이희옥. “체제전환과 중국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모색.” 「국제정치논총」, 제45집 1호(2005)
이재호. “후진타오시대 중국정부의 정책방향 : 삼개대표중요사상을 중심으로.”「한국행정학보」, 제38권 제2호(2004)
으로 부를 수 있다면 향후 중국사회주의가 경향적으로 과거의 고전적 사회주의로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이나 대안의 이데올로기도 부재한 상황이다. 오히려 사회주의의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중국형 삼민주의를 도입하거나 중국형 사회민주주의를 실험하는 등 새로운 모색을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의 변화는 중국형 시장경제 모델을 빠르게 학습하고 있는 베트남이나 향후 중국적 개혁개방을 학습하는 것 이외의 뚜렷한 대안이 없는 북한사회주의, 그리고 남아있는 사회주의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중국이 경제와 정치, 이념과 현실의 부조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유형의 사회주의를 연착륙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곧바로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역사의 종언’이 아니었듯이 중국사회주의의 변화는 자본주의와의 이론적 대화를 열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국가의 자기혁신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희옥, 앞의 글, pp.90-93.
Ⅶ. 결론
중국공산당은 1949년 신중국 건립이후 일당독재를 사회주의 실현의 목표 수단으로 실시해왔으며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신 개념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창조하고 또한 정치사회적으로 활용하여 왔다. 신중국 성립이후 현재까지 중국 정치무대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역사적 지도자 시기가 있었다. 매 시대마다 각기 ‘특색을 갖춘’ 이론, 노선, 정책이 있었으며, 모두 중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었다. 그들은 서로 계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다른 정치이데올로기 유형을 형성해왔다. 다시 말해, 중국의 정치이데올로기는 다른 시기에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산주의’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모든 시기의 정치이데올로기를 개괄할 수 없을 것이다.
모택동을 핵심으로 공산당 제1세대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로 삼아 중국공산당의 정치노선과 결합시켜, 신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제도의 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공산당을 건설하였는데 우리는 이를 모택동사상이라 한다. 모택동은 중국내부의 주요한 사회모순을 무산계급과 자산계급간의 모순으로 보고,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서 전국범위의 대중성·사상성·정치성·조직성을 갖춘 중국공산당을 건설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4인방 척결과 문혁의 종결 이후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등소평은 새로운 공산당 건설을 역설하게 된다. 실사구시와 사상해방을 모토로 하여,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바탕으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역설한다. 특히 1992년 등소평은 ‘남순강화’에서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도 있으며,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에도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성격은 정치에서 경제로의 전환이다. 요약하자면, 정치결정론과 의지주의 포기, 경제생산력이 제1성, 정치와 계급투쟁이 제2성이라는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 사회 발전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경제라는 이론.
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2세대가 추진한 개혁개방은 지난25년 간 중국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중국은 개혁개방 직전의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산력발전의 발전과 이에 적합한 상층구조의 구축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등소평의 후계자로 선출된 강택민은 전임자의 중국식 사회주의를 계승하면서, 이러한 환경에 적합한 상층구조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이념을 주창하였는데, 이것이 3개 대표다. 강택민은 “3개 대표는 당건설의 근본이고, 집정의 기초로써, 역량의 원척이다.”라고 주장하면서, 21세기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좌표로 삼을 것을 역설하였다. 이재호, 앞의 글, p.229.
강택민의 3개 대표론에 이어 호금도는 과학발전과과 조화사회론을 내세움으로써 차별적인 발전론인 ‘선부론’을 탈피해, 평등(균형발전)을 강조한 ‘조화사회’를 주창함으로써 중국식 사회주의의 연착륙을 꾀하고 있다.
1949년 신중국 성립이후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이데올로기는 중국 정치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으로써 중국 정치의 근간을 지배해 왔다. 또한 모택동에서 호금도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새로운 정치지도자와 정권 마다 신 개념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생성시켰으며 또한 그것은 정치사회적으로 활용되어 왔었다. 따라서 중국정치 이데올로기 연구는 당대 중국 연구의 주요한 부분으로 중국 정치 발전과 정책변화의 관건이 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중국정치 이데올로기는 정치권력의 운용을 통하여 중국 사회 및 사회단체들을 연결하고 특정적인 정치질서를 발전시키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이희옥. “중국의 이데올로기 : 이념과 현실.” 유세희.「현대중국정치론」서울 : 박영사, 2005.
고성빈. “중국식사회주의이념의 생성과 전개에 대한 고찰.” 「한국과 국제정치」, 33권(2000)
김달중. “중국의 개혁정치와 이데올로기.”「공산권연구논총」, 16권(1992)
김정계. “중국공산당 통치이데올로기의 변용과정 연구.”「동아인문학」, 제14집(2008)
김정계, 하상식. “중국공산체제 지도이데올로기의 이행과정 : 1921~2000.”「지역발전 연구」, 제2권 제3호(2002)
남종호. “중국 정치 이데올로기 변화연구.”「국제지역연구」, 제13권(2009)
박병석. “중국형 이데올로기 수정의 현재적 의미 : 신권위주의논쟁을 중심으로.”「중소연구」, 17권(1993)
정재일. “현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 :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중심으로.”「중국학연구회」, 제13집(1997)
이희옥. “체제전환과 중국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모색.” 「국제정치논총」, 제45집 1호(2005)
이재호. “후진타오시대 중국정부의 정책방향 : 삼개대표중요사상을 중심으로.”「한국행정학보」, 제38권 제2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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