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인사상00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공자의 인사상00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인(仁)이란

2. 공자의 인사상과 인간론

3. 인사상(仁思想)의 특성과 내용

4. 인(仁)의 성격 규명

5. 복례로서 인(仁)과 인(仁)의 정치적 기능

본문내용

노예 혹은 농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공자는 어떠한 계급에도 의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도 아닌 순수한 사상가라는 것이다. 그의 계급입장은 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공자 시대에 와서는 군자와 소인 사이에 존속되어 오던 계층 간의 관계가 크게 동요되기 시작했는데, 이 두 계층 간의 갈등ㆍ대립이 공자가 살았던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공자에 의해서 새롭게 정립된 군자는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존재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周의 세습적인 군자의 구별된다.
공자에게 있어서 군자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세습적 군자로서 이것은 위정자 계층을 의미하며, 또 하나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군자이다. 소인은 군자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는 도덕적으로도 성숙할 수 없고, 계급적으로도 하층계급에 속한다. 그러므로 군자와 소인은 도저히 같은 부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군자는 자아의 도덕적 완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구제를 자기의 의무로 삼지만, 소인은 이와 달리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며, 신분적 평등을 도모하고자 항상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군자다운 선비가 될 것이지 소인다운 선비가 되지 말라고 한 것도 이러한데 연유한다. 이렇게 확연히 구분되는 군자와 소인의 관계를 공자는 각 계급에 맞는 본분을 지킴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자기의 적분을 벗어나지 않을 때 사회는 질서를 찾게 되는 것으로 공자는 일종의 계급 간 조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군자계층을 대변하는 지식인 들은 정치적ㆍ사회적 현실 속에서 소인들이 요구하는 평등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요컨대 ‘和’의 세계관에서 소 계층 내부 상하의 질서 즉 군자에 의한 통치와 소인들에 대한 생산 활동이라는 종래의 사회적 분업 또는 신분적 차별에서 오는 대립적 이해관계를 오히려 조화ㆍ화합의 관계로 지양시켜 보려고 하였다.
사회질서 회복의 근간이 되는 예도 그 쓰임이 ‘和’를 귀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이것은 비단 사회질서를 위한 조화만이 아니라 모든 현상에 대한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愛人은 불평등한 애인으로부터 출발하며, 계급관계도 애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서의 忠恕도 계급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고 백성에 대해서도 공자가 말한 인은 단지 일종의 은혜, 은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백성을 기르는 데는 은혜로 한다.”라든가, “은혜로운 즉 남을 부리기에 족할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공자가 말한 인덕은 군자의 도덕이요, 재위에 있는 자나 위정자의 도덕이니 곧 통치계급의 도덕이다.
인의 본질인 애인도 수평적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며, 수직적 애인은 아닌 것이다. 각 계급의 수평적 사랑의 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인의 내용이다.
(3) 인과 통치방법
공자의 정치적 입장은 위정자나 도덕적으로 완성된 군자를 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통치방법에 있어서 그들의 도덕적 완성과 수양을 바탕으로 한 ‘德治’와 ‘禮治’를 표방했다.
‘덕치’란 ‘법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외적ㆍ물리적 힘에 의한 통치가 아닌 위정자 개인의 내적 수양에 따른 덕의 정도에 의존하는 것이다. 위정편에서 공자는 북극성을 예로 들어, 만약 북극성이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그와 함께 우주의 질서는 파괴되고 혼란이 오게 된다고 하여, 위정자가 덕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은 북극성이 궤도를 이탈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위정자의 정치가 백성들을 위하는데서 멀어지면 백성들은 흩어지고 나라는 존속할 수 없게 된다.
“섭공이 정사를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 가까운 이가 기뻐하고 먼데 있는 사람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정자가 덕으로 통치했을 때 만이 가능한 결과이다. 한편 이러한 위정자의 자연스러운 덕과 함께 외형적 규범인 ‘예’에 따라 통치하는 ‘예치’가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능히 예와 사양으로써 하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문제가 있으며, 능히 예와 사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예가 있은들 어찌하리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란 단순히 각 계층의 행동을 제약하는 의미만 중요시 해서는 안된다. 예는 외형적 형식이나 강제성을 띤 규범의 형식보다 내면의 본질적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예는 사치함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이 낫고, 초상은 그 절차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마음이 낫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덕치와 예치는 서로 내외의 관계에 있으며 모두 인에 의해서 매개되고 있다. 덕치가 위정자의 수양을 바탕으로 한 백성의 감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면, 예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서 백성의 외적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라 하겠다.
통치의 목적은 물질적ㆍ정신적으로 백성을 안정시키는데 있다. 그러므로 자공이 정사를 물었을때 공자는 세가지 조건 즉, “경제적 풍요(足食)”, “튼튼한 국방력(足兵)”, “백성의 신뢰(民信之)”를 강조했던 것이다. 이 세가지 조건 중에서도 위정자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백성의 신뢰’를 얻는 정치를 해야 한다. 공자는 말보다 실천을 중요시 했는데, 실천은 곧 상대에게 신뢰를 얻는 방법이 되는 것이며, 위정자가 백성을 잃지 않는 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말잘하고 행동을 좋게 꾸미는 자를 경계했으며, 우직하고 소박하며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인에 가깝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도 인에 의해서 그 근거를 찾는 것이다.
위정자의 도덕적 수양으로 ‘덕치’를 행하고, 이형적 규범인 예로 다스렸을때 백성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정치가 된다. 또한 덕치는 위정자일신의 덕을 문제 삼기 때문에 ‘人治’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人治’는 수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곧 ‘仁’으로 다스리는 ‘仁治’, ‘仁政’이 된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덕치와 예치는 인을 그 근거로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백성에게 신뢰받는 정치가 되는 것이니, 공자의 통치방법은 바로 인을 그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정이 맹자에게 크게 대두되지만 벌써 공자에 의해서 그 기초가 정립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 가격3,0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9.12.14
  • 저작시기2009.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697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