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도입부
Ⅱ.본론
1.우리말은 어디로 가는 거지?
가. 제자리를 지키기 힘든 우리말
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우리말
다. 사라져가는 ‘우리말’ 바로 알기
2.왜 우리말이 떠나가는 걸까?
가. 세계화의 탈을 쓴 문화의 변화
나. 언어의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다. 우리말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태도
3.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가. 다른 문화를 통해 배워야 할 점
1)일본
2)영어
나. 우리의 노력
1)한글의 주체적 사용의 실례
2)국가의 국어 정의
3)바른 국어교육
4)국어생활 규범을 위한 제도마련
5)말 바로쓰기
6)표준화
7)인식의 전환
Ⅲ. 맺음말
1.저자에 대해서
2.결론
Ⅱ.본론
1.우리말은 어디로 가는 거지?
가. 제자리를 지키기 힘든 우리말
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우리말
다. 사라져가는 ‘우리말’ 바로 알기
2.왜 우리말이 떠나가는 걸까?
가. 세계화의 탈을 쓴 문화의 변화
나. 언어의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다. 우리말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태도
3.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가. 다른 문화를 통해 배워야 할 점
1)일본
2)영어
나. 우리의 노력
1)한글의 주체적 사용의 실례
2)국가의 국어 정의
3)바른 국어교육
4)국어생활 규범을 위한 제도마련
5)말 바로쓰기
6)표준화
7)인식의 전환
Ⅲ. 맺음말
1.저자에 대해서
2.결론
본문내용
표준화하여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면을 예로 들어보겠다. 안면은 국어사전에 뜻이 네 가지가 나온다. 안쪽 면, 편안히 자는 잠, 늦잠, 얼굴이다. 안면이란 말은 안쪽 면을 뜻하는 말로 쓰고 편안히 자는 잠은 발편잠으로, 늦잠을 뜻하는 안면은 늦잠을 쓰고, 얼굴을 뜻하는 안면도 얼굴로 그대로 쓰는 것이다. 토박이말을 중심으로 표준화를 시킴으로써 동음이의어에 대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의미도 더욱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7)인식의 변환
언어, 국어를 도구적으로만 보는 관점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국어에는 오직 우리 정서만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들이 많다.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우리말로는 표현 가능한 것이다. 쪽빛을 다른 나라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인의 관점에서 우리말이 멋져 보이진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은 우리말, 한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의미 전달에 있어서 가장 효율 적인 언어를 찾는다고 한다면 도구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우리말이 제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Ⅲ. 맺음말
1. 저자에 대해서
저자의 의견을 읽으면서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았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말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식 영어를 직역하여 퍼뜨리거나, 일본식 한자어라도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에도 어감이라는 것이 있다. 딱 그 단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방금 말에도 ‘이미지’라는 외래어를 사용했다. ‘형상’ 이라는 뜻이지만 형상으로 표현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그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말이 있는데도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는 것은 억지 주장일뿐더러 한편으로는 어휘력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동의 할 수 없었던 부분이 또 있다.
유란이 골짜기에 있으니 자연이 듣기 좋다.
백설이 산에 있으니 자연이 보기 좋다.
이 가운데 저 한 미인을 더욱 잊지 못하겠다.
위의 퇴계 이황의 시조를 해석한 해석문이 저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난이 그윽한 골짜기에 있으니 그 향기가 듣기 좋고, 흰 눈이 산을 덮고 있으니 그 모양 보기 좋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크다. 는 해석문에서 ‘향기가 듣기 좋다’는 표현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말에서는 눈과 귀와 코가 하는 일이 확실하게 이름 지어 있다고 말하면서 이 표현 자체가 ‘문향십리(聞香十里)’란 한자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를 짓다보면 꼭 어법에 맞고 문법에 맞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인 표현도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고와서 서러워라’, ‘소리 없는 아우성’ 과 같은 역설적 표현도 모두 잘못된 것이니 시를 모두 고쳐야 할 것이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사빈’ ‘배후’ ‘운반’ ‘퇴적’ ‘해안’ ‘사구’ … 등의 한자어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다. 저자의 말이다.
이런 단어는 구태여 한자를 활용하여 만들 필요가 없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우리말로 단어를 만들어도 전 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을 구태여 한자를 이용해서 만듦으로서 국민들에게 한자를 익혀야하는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지적 놀음은 한자 편집증을 가진 사람들이 일으킨 것으로서 이젠 그만 두어야할 일들이다.
우리사회에 이미 굳게 자리 잡은 한자어들까지 우리말로 고치려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시도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약속된 기호를 바꾼다면 언어생활 상에 혼란을 줄 지 모른다. 바뀐 언어가 제 역할을 다하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도 알 수가 없다. 다른 측면으로도 생각해보자. 한자어로 표현한다고 한자를 익혀야하는 부담감이 있을까? 처음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 ‘기차’, ‘비행기’ 같은 단어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한자를 가르쳤었는지 생각해보자. 그냥 그림을 보여 주며 읽어주면 그것을 따라하고 그렇게 인식하면 단어를 하나 익히는 것이다. 굳이 한자를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어로 표현함으로써 표의문자의 특성을 살려 아주 적은 글자 수로 표현 할 수 있다.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의 경제성을 살릴 수도 있다. 물론 간단한 우리말로 익힌다면 좋겠지만 새로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 ‘비행기’나 ‘기차’같이 굳이 한자를 익히지 않아도 한자어를 배울 수 있다는 측면을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2. 결론
도입부에서도 말했듯이 저자는 단순히 ‘고유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한국어 사용 실태 전체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주체적인 태도를 갖자’는 것 같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발견하고 살려내며, 유입되어 오는 다른 말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라고 있다.
저자의 주장 중에 억지스러운 것도 있었고, 책 전체의 주제와 무관한 외래어 표기나 신문에서 공용어 논쟁을 벌인 것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아 통일성을 깨트렸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았다. 우리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외국어, 특히 영어에 편집증(저자의 표현대로)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쓰자고 말하지는 않는다. ‘바로 쓰자는 것’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들어오는 수많은 다른 말들에 대해서 주체적인 자세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 우리말이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관심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남영신(2008), 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서울, 리수출판사
7)인식의 변환
언어, 국어를 도구적으로만 보는 관점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국어에는 오직 우리 정서만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들이 많다.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우리말로는 표현 가능한 것이다. 쪽빛을 다른 나라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인의 관점에서 우리말이 멋져 보이진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은 우리말, 한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의미 전달에 있어서 가장 효율 적인 언어를 찾는다고 한다면 도구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우리말이 제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Ⅲ. 맺음말
1. 저자에 대해서
저자의 의견을 읽으면서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았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말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식 영어를 직역하여 퍼뜨리거나, 일본식 한자어라도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에도 어감이라는 것이 있다. 딱 그 단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방금 말에도 ‘이미지’라는 외래어를 사용했다. ‘형상’ 이라는 뜻이지만 형상으로 표현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그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말이 있는데도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는 것은 억지 주장일뿐더러 한편으로는 어휘력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동의 할 수 없었던 부분이 또 있다.
유란이 골짜기에 있으니 자연이 듣기 좋다.
백설이 산에 있으니 자연이 보기 좋다.
이 가운데 저 한 미인을 더욱 잊지 못하겠다.
위의 퇴계 이황의 시조를 해석한 해석문이 저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난이 그윽한 골짜기에 있으니 그 향기가 듣기 좋고, 흰 눈이 산을 덮고 있으니 그 모양 보기 좋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크다. 는 해석문에서 ‘향기가 듣기 좋다’는 표현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말에서는 눈과 귀와 코가 하는 일이 확실하게 이름 지어 있다고 말하면서 이 표현 자체가 ‘문향십리(聞香十里)’란 한자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를 짓다보면 꼭 어법에 맞고 문법에 맞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인 표현도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고와서 서러워라’, ‘소리 없는 아우성’ 과 같은 역설적 표현도 모두 잘못된 것이니 시를 모두 고쳐야 할 것이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사빈’ ‘배후’ ‘운반’ ‘퇴적’ ‘해안’ ‘사구’ … 등의 한자어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다. 저자의 말이다.
이런 단어는 구태여 한자를 활용하여 만들 필요가 없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우리말로 단어를 만들어도 전 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을 구태여 한자를 이용해서 만듦으로서 국민들에게 한자를 익혀야하는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지적 놀음은 한자 편집증을 가진 사람들이 일으킨 것으로서 이젠 그만 두어야할 일들이다.
우리사회에 이미 굳게 자리 잡은 한자어들까지 우리말로 고치려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시도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약속된 기호를 바꾼다면 언어생활 상에 혼란을 줄 지 모른다. 바뀐 언어가 제 역할을 다하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도 알 수가 없다. 다른 측면으로도 생각해보자. 한자어로 표현한다고 한자를 익혀야하는 부담감이 있을까? 처음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 ‘기차’, ‘비행기’ 같은 단어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한자를 가르쳤었는지 생각해보자. 그냥 그림을 보여 주며 읽어주면 그것을 따라하고 그렇게 인식하면 단어를 하나 익히는 것이다. 굳이 한자를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어로 표현함으로써 표의문자의 특성을 살려 아주 적은 글자 수로 표현 할 수 있다.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의 경제성을 살릴 수도 있다. 물론 간단한 우리말로 익힌다면 좋겠지만 새로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 ‘비행기’나 ‘기차’같이 굳이 한자를 익히지 않아도 한자어를 배울 수 있다는 측면을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2. 결론
도입부에서도 말했듯이 저자는 단순히 ‘고유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한국어 사용 실태 전체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주체적인 태도를 갖자’는 것 같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발견하고 살려내며, 유입되어 오는 다른 말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라고 있다.
저자의 주장 중에 억지스러운 것도 있었고, 책 전체의 주제와 무관한 외래어 표기나 신문에서 공용어 논쟁을 벌인 것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아 통일성을 깨트렸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았다. 우리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외국어, 특히 영어에 편집증(저자의 표현대로)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쓰자고 말하지는 않는다. ‘바로 쓰자는 것’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들어오는 수많은 다른 말들에 대해서 주체적인 자세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 우리말이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관심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남영신(2008), 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서울, 리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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