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따라서 메리와 스탠리를 부부 사이로 오해한다), 남의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해 주겠다며 메리에게 훈계를 하고 심지어 메리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고, 커피를 접대하겠답시고 부엌에 들어가서는 게이로까지 몰린다. 스탠리를 입양하라는 대사(연극을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에 크게 웃었을 것이다)에서,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천사”라는 극도로 희화화된 대사에서 그는 결정적으로 웃음거리가 된다.
경찰은 국가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치안 기구이다. 치안이 목적이니만큼 주민의 보안을 책임져야 하고, 그리고 주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찰은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고압적이고 쓸데없이 관료주의적인가 하면,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특권의식에 젖어서 주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목적은 간데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오랜 군부 독재로 인하여 경찰들이 주민의 보안보다는 정부의 권력 유지에 이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경찰에 무제한적인 힘이 주어져 수많은 인권이 유린되었다. 각국 경찰들이 교육과 훈육을 받아 많이 친절해졌다 하고, 모든 경찰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우리는 경찰 하면 두렵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라이어’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경찰과 더 나아가 관료들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져 있는 것이다. 평소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경찰이 연극에서는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얼마나 통쾌하고도 가슴 서늘한 경험인가!
4.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라이어’에 나타난 사회의 현실과 인간들의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발까지 동동 굴러 가며 웃고 나온 관객들에게는, ‘라이어’가 그저 ‘웃긴’, 혹은 ‘웃기기만 한’ 희극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왜 우리가 그토록 웃었는가? 바로 그 순간, 그 상황을 이해하고 웃게 만든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도 결국에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는 자신의 속한 사회를 보고 어떤 측면을 인상 깊게 생각하여, 그것을 무대 위에 재현시키기 위해 대본을 쓰는 것이다. 그것을 그 자신이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연출가는 그런 극작가의 의도를 읽어내고, 그것을 다시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여 무대에 올린다. 배우는 대본을 읽고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또다시 맡은 배역을 재해석하여 연기를 펼친다. 이런 공연을 보는 관객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의 상징이나 어떤 코드를 읽어 내고 공감하게 된다.
결국 어떻게 보면 ‘라이어’도, 그 속에 담긴 복잡한 현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평범한 희극의 수준을 넘어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가의 힘도 공연에 큰 몫을 차지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저 연극 ‘라이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사회속의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것은, 연극 속의 우리의 모습에 공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민병욱, 「연극 읽기」(제 2판), 서울, 삼영사, 1998
2.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2」, 서울, 웅진출판, 2002
경찰은 국가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치안 기구이다. 치안이 목적이니만큼 주민의 보안을 책임져야 하고, 그리고 주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찰은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고압적이고 쓸데없이 관료주의적인가 하면,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특권의식에 젖어서 주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목적은 간데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오랜 군부 독재로 인하여 경찰들이 주민의 보안보다는 정부의 권력 유지에 이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경찰에 무제한적인 힘이 주어져 수많은 인권이 유린되었다. 각국 경찰들이 교육과 훈육을 받아 많이 친절해졌다 하고, 모든 경찰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우리는 경찰 하면 두렵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라이어’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경찰과 더 나아가 관료들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져 있는 것이다. 평소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경찰이 연극에서는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얼마나 통쾌하고도 가슴 서늘한 경험인가!
4.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라이어’에 나타난 사회의 현실과 인간들의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발까지 동동 굴러 가며 웃고 나온 관객들에게는, ‘라이어’가 그저 ‘웃긴’, 혹은 ‘웃기기만 한’ 희극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왜 우리가 그토록 웃었는가? 바로 그 순간, 그 상황을 이해하고 웃게 만든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도 결국에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는 자신의 속한 사회를 보고 어떤 측면을 인상 깊게 생각하여, 그것을 무대 위에 재현시키기 위해 대본을 쓰는 것이다. 그것을 그 자신이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연출가는 그런 극작가의 의도를 읽어내고, 그것을 다시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여 무대에 올린다. 배우는 대본을 읽고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또다시 맡은 배역을 재해석하여 연기를 펼친다. 이런 공연을 보는 관객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의 상징이나 어떤 코드를 읽어 내고 공감하게 된다.
결국 어떻게 보면 ‘라이어’도, 그 속에 담긴 복잡한 현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평범한 희극의 수준을 넘어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가의 힘도 공연에 큰 몫을 차지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저 연극 ‘라이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사회속의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것은, 연극 속의 우리의 모습에 공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민병욱, 「연극 읽기」(제 2판), 서울, 삼영사, 1998
2.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2」, 서울, 웅진출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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