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에 있던 덕수궁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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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한말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에 있던 덕수궁에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덕수궁의 역사

2. 덕수궁 전각

3. 근현대사 속의 덕수궁

본문내용

00년경에 건립된 궁궐 안 최초의 양관(한옥과 양옥의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건물)으로 내부 기둥은 로마네스크식 주두로 되어 있고 바닥을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베란다가 있으며 기둥 상부에 우리의 전통 문양을 새겨 넣었다. 고종이 연회를 열거나 차를 즐겨 마시던 장소로 전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라고 할 수 있다.
2.8. 덕수궁에 있던 유물들
보루각 자격루는 조선시대 중종 때 만든 물시계로는 덕수궁 내 유일한 국보(국보 제229호)다. 창경궁에 있다가 옮겨왔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은 신기전기화차이다.
3. 근현대사 속의 덕수궁
1907년(순종 1) 순종 즉위 후 고종은 궁호를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1910년에는 궁내에 서양식 대규모 석조건물인 석조전이 건립되었는데, 815 후 이곳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며, 47년 국제연합 한국위원회가 들어오게 되어 새로운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석조전은 625 후 공원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8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활용되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덕수궁에는 지난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약 1만8635여 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 및 석조전 등에 불과하다.
덕수궁은 시청 옆에 있는 조선시대 궁궐로 매번 시청이나 광화문에 갈 일이 있을 때 지나가곤 했던 서울시내 명소이다. 자그마한 규모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의 큰 궁궐에 밀려 그리 역사적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근현대사 수업의 덕수궁 답사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덕수궁이 구한말,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해방 후 미소공동회의가 열리는 등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궁이었지만 쉽게 들어가지 않았던 곳이라 많이 알지 못했던 곳이기도 했다. 답사를 갔을때 대화문 밖에서 근위대교대식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많은 시민들이 길을 멈추고 관람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편, 덕수궁을 둘러보는 내내 역사의 아픔 때문에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진정한 덕수궁의 가치를 느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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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0.02.08
  • 저작시기201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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