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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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죽음의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수용소에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

2. 작품 줄거리 요약

3. 극한 상황에서 발견하는 자아

4. 인간 실존에의 진지한 천착

5. 인생의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

6.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작가의 인생관

7. 결론

본문내용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는 어떤 삶의 의미가 남겨졌을지 궁금하다.
6.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작가의 인생관
예전에 임레케르테스의 <운명>이라는 책을 보았다. 저자는 아우슈비츠에 수용소 생활을 회상하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라는 운명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그 경계점으로 자신도 나아갔으므로 ‘내 자신이 곧 운명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대목을 통해 인간정신의 실체를 어렴풋이 느꼈다면 <죽음의 수용소>를 통해서는 인간 정신의 고결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책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첫째, 삶은 의미있는 가치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니체는 이렇게 통찰했다. "사람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의미)가 있다면 어떠한 시련도 감내할 수 있다" why가 있다면 how도 있게 마련이다.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생활속에서조차 - 이름대신 번호만 부여된 비인격화가 된 상태에서조차 - 직업의식을 가지고 모든 상황을 분석한다. 그리고 미래에 강단에 서서 자신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강의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러한 존재의미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강력한 지지력이 되어 준다. 우리에게도 가족, 친구나 연인, 혹 직업이나 이념 등이 살아가게 하는 중대한 이유가 되어준다. 그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플로우>란 책에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조금 벅차지만 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목표가 삶의 발전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다.
둘째, 인간이 극한상황에 처해서 한없이 비굴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혼의 고결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죽음의 수용소인 - 통계적으로 28명중에 한 명만 살아남았다는 - 아우슈비츠에서 조차 말이다. 배고픔과 고된 노동, 인간적인 모멸감과 무엇보다도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할지 모르는 기약할 수 없는 나날들, 수용소의 사체에서 나오는 굴뚝의 연기를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저자 또한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픈 환자를 떠나는 것이 양심이 가책이 되어 탈출계획을 포기하고 만다. 아우슈비츠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여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제멋대로였어요. 여기와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해요”도대체 이런 마음의 구조, 자유의지, 선택의 위대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을 도킨즈가 말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생존법칙으로만 설명한다면 인간을 너무 왜소한 울타리에 갇혀 놓는 것만 같다.
셋째 운명에 관한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는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 선택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누비는 위험한 순간들이었다. 혹자는 위험 앞에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위험 앞에 내던졌다. 위험과 죽음과 운명이 자신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정말 책을 읽다보면 저자도 죽음의 경계선에서 많은 선택을 해야했으며 때로는 운명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 저자를 살려낸 것이다. 운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만 때로는 원하지 않는 운명이 자신 위에 덮칠 때도 있다. 운명(결과)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저자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을 찾을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행복을 찾지 않고 자신에 충실할 때 자연스럽게 행복은 찾아온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의 상당수는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더 심한 불행을 만들기 때문이다. 진짜 불행은 없다. 단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행한 것이다.
즉,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존재의미를 찾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알 때 얻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이 저자가 하는 말이다. 그 또한 그러한 의미존재 찾기를 아우슈비츠안에서 조차 진행시켜 마침내 독창적인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숭고한 삶에 대한 사랑과 헌신, 봉사의 마음 앞에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7. 결론
만일 고통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쓸모가 있다는 것뿐이다. 만일 고통이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은 그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반대로 만일 고통을 야기시키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 해도 자신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고통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다. 삶이란, 삶속에 존재하는 행복이란, 살아가면서 모든 고통과 행복을 함께 끌어안고 다음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도스도예프스키는 삶에 의미가 있다면 죽음, 고통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살아오면서 그것만큼 절실히 마음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과연 고통은 많았고 행복은 적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로는 행복이란 고통의 열매이었던 적이 더 많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와 유사한 경험들이 있는지 내 기억을 뒤적였다. 살면서 그 어느 타인의 권력 앞에, 사실 폭력 앞에 무릎 끓은 기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군대 외에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군대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의 경험만큼 열악하지는 않았지만, 내 내면에 그것이 끼친 충격과 해악에 비교해서는 적다고 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 한마디로, 살면서 결코 하지 않을 온갖 경험들을 그 짧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다 했으니까 말이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된 그 2년이란 시간동안, 그래도 나를 지탱시켜준 것은 피곤한 새벽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희미한 불빛 속에서 읽던 책과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 그리고 포근하게만 느껴지던 내 방의 온갖 물건들에 대한 향수, 내 방 침대의 포근함 같은 게 아니었던가? 이 책을 빌어 말하자면, 그것은 어쩌면 내가 2년이란 악몽을 사고없이 버틸 수 있었던 ‘생의 존재 의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매일 열심히 살고 있을까? 이 책은 다시 내게 묻고 있었다.
  • 가격1,8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0.03.01
  • 저작시기201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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