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게서 소년에게' 문학사적 의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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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에게서 소년에게' 문학사적 의의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1910년대 문학의 시대적 배경

2. 작가 최남선

3.『해에게서 소년에게』 작품해석

4. 신체시와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형식적 특징,
5. 신체시와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시사적 의의

6.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의 일정한 규율의 방법으로 각 연의 대응 행에서는 음절수의 일치를 꾀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자유시의 형식을 시험하겠다 하여 시행의 이는 자유스럽게 하였으나 각 연의 대응 행끼리는 음수율적 정형에 구속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순된 작업이 된 샘이다. 각 연의 대응 행끼리 음수율적 정형률을 받아들인 것이 그의 결정적인 한계였지만, 한 연 안에서는 자유율을 지향하여 자유시적 가능성의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수준이 당시까지 그가 생각해낸 자유율에 대한 인식수준이었고 기여 정도가 아니었을까? 장도준, “”한국 근대 자유시 형성과 전통 계승의 문제,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새로움」
7·5조 등 음수율에 대한 혼란은 일제시대를 지나 심지어 오늘날까지고 계속 되는 것으로 봐서 개화가사, 창가 등 음수율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에는 어떤 면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새로운 시 형식을 위한 어떤 미적 노력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육당 최남선의 시도는 매우 의식적으로 새로운 시에 대한 형식 시험을 시도했던 것이다. 새로운 시를 위한 근대적인 시험은 최남선의 신체시 이후부터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신체시가 근대 자유시 형성의 유일한 동기라고 할 수 없지만 매우 중요한 계기와 시금석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은 알 수 있다.
자유시에 대한 장르 인식이 투철하지 못했고, 그 이후 자유시를 위한 그의 노력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나머지 운율적 긴장을 놓아버린 산문화(「녀름ㅅ구름」등)를 보여 주거나 창가와 시조라는 더 엄격한 자수율과 정형률로 퇴행한 것은 우리 근대시 발전을 위해 아쉬운 점이었지만, 또 신체시에서 모색된 자유율이 그대로 자유시로 장르적 승화를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 형식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있었다는 점에서 값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이 시의 새로운 면모는 구어체와 의성어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시는 그 이전의 개화가사나 창가보다 구어체 어휘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속도감을 수반한 문체 역시 간과될 일이 아니다. 또 하나 신체시에는 행과 연에 대한 인식의 자취와 함께 구두점의 사용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본래 구두점의 사용은 작품의 형태, 특히 운율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다. 구두점은 詩作에 사용될 때 의미의 단락과 단락사이에 쓰이면서 그 한계를 명시하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다음 달락과 연결, 호흡 조정 문제까지를 담당해 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체시에 구두점 사용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역시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의 근대적 성향이라고 보아야겠다. 김용직, 「한국근대시사(上)」, 학연사
그러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의 신체시의 새로움은 근대 자유시로의 발전에 직결되기에는 또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한계는 시대의식과 형식에 모두 해당된다.
새로운 세대에 의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시만큼 강하게 상징하여 드러낸 시가는 일찍이 없었으나 1905년에 이미 실질적 외교권을 상실한 시대적 상황을 생각한다면, 맹목의 계몽주의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것 또한 없다. 김윤식, “육당과『소년』”, 「이광수와 그의 시대」(솔출판사)
자유, 평등 등의 관념이 현실적인 표현 속에서 객관화 되지 못하고 기성화되고 당위적인 감정에 압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 형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형태를 탄생시킨 것이기는 하나 다음에 올, 자유시의 미적 공감이 큰 시형에 비해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신체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최남선의 창의에 머물고 만 것으로 보인다. 신동욱·조남철,「현대문학사」(한국방송통신대출판부,1999)
이는 시의식보다 너무 앞섰으면서도 아직 순진했던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모처럼 채용한 스스로운 리듬과 자수율에의 집착, 이 이형적인 모습을 타개하기에는 육당의 시적 미의식과 그 리듬의식이 너무 허약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남선의 시「海에게서 少年에게」에서 보여준 반정형률 혹은 준자유시적 시행착오는 근대적인 자유시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를 수 밖에 없는 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형식 시험은 재래 시가의 엄격한 규범에 얽매인 정형률에서 벗어나서 율격적인 자유를 모색하고자 했음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실천에 있어서는 한 연 내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였으나 그런 형식에 불안을 느끼고 그 완전한 자유에 대한 나름대로의 일정한 규율의 방법으로 각 연의 대응 행에서는 음절수를 일치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모순된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각 연의 대응 행 끼리의 음수율적 정형률을 받아들인 것이 그의 결정적인 한계였지만 한 연 안에서는 자유율을 지향하여 자유시적 가능성이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 이후 그의 사가 신체시의 형태적 구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산문의 수준으로 후퇴하거나 시조나 창가 등의 더 경직된 정형률로 나아간 것은 그의 장르 의식이 애초부터 철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에 대한 그의 의욕이 그의 계몽의식에 배해서 또 진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당의 신체시가 근대적 형식의 개척이라는 사명보다는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라는 계몽적 목적을 위한 문화적 도구였다는 사실도 그의 시적 시험이 한계에 봉착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6. 참고문헌
* 조동일, 한국문학통사4, 지식산업사
* 조동일, 한국문학통사5, 지식산업사
* 정덕순, 한국문학사
* 오세영, “자유시 형성에 있어서 사설시조와 잡가”(「한국문화」14집, 서울대한국문화연구소)
* 장도준, “”한국 근대 자유시 형성과 전통 계승의 문제,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새로움」
* 장도준, ‘육당 최남선의 신체시와 시사적 의의’
* 김용직·박철희, 한국현대시 작품론
* 윤경갑 外, 현대시 연구
* 김용직, 「한국근대시사(上)」, 학연사
* 김윤식, “육당과『소년』”, 「이광수와 그의 시대」(솔출판사)
* 신동욱·조남철,「현대문학사」(한국방송통신대출판부,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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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17
  • 저작시기2009.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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