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우에 대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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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홍종우에 대한 재조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본론
1. 홍종우의 생애
1) 프랑스 유학 이전의 삶
2)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2. 홍종우와 김옥균의 개화사상
3. 김옥균 암살 과정과 그 이유
1) 암살 과정
2) 암살 이유
4. 대한제국 시기 홍종우의 활동
5. 홍종우에 대한 평가

Ⅲ. 결론

본문내용

내고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대한제국에 심어놓는다면 속국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서로의 이익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일본정부와 친일세력은 김옥균을 우상화하고 영웅시하여 그의 개혁사상을 높이 받들었다. 김옥균의 개화사상은 조선을 근대화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한 것이었지만 친일세력은 일본을 본받아 근대화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왜곡시켰다.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은 자신과 급진개화파를 지지하는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조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일본을 이용하고자 했고 조국이 근대화된 다음에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김옥균의 개화사상을 일본과 친일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만 있었다. 이후 홍종우의 노력과 달리 조선의 운명은 ‘한일합방’으로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일본은 우호적이었던 김옥균을 위인으로 세우고 그를 암살한 홍종우를 테러리스트로 매장해버렸다.
5. 홍종우에 대한 평가
우선 학계에서 홍종우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을 보도록 하겠다. 서사봉은 "유학시절 개화사상 신봉자였던 열혈청년 홍종우가 개혁의 선봉자였던 김옥균을 살해하고 개혁의 반대편에 섰던 이유는 바로 출세를 보장한다는 이일식의 유혹이었던 것이다. 출세를 위한 변신, 그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하였다.
이규태는 홍종우의 과격한 성격과 용기에 주목하여 "홍종우는 남양 홍씨 라는 양반 명분 때문에 굶주리다 못해 과감하게 족보와 호패를 팔고 물장사를 하는 등 천인으로서 생계를 세웠다. 주변 사회에서는 이 명분을 버린 자를 소외하고 그 집 앞을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이 소외에 대한 반항심이 고질 되어 그의 일생은 과격한 반항으로 일관한다"고 분석했다. 홍종우는 반체제의 보상과 체제에의 적응을 위해 공명을 얻고자 김옥균 살해의 자객이 되고 만다는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한편 조재곤은 "종래의 역사는 김옥균을 '근대화의 선각자'로 평가하되 홍종우를 근대화를 가로막은 수구파'로 규정했지만 홍종우의 김옥균 암살을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이 아니라 개화파 내부의 갈등이다" 라고 보았다. 홍종우의 김옥균 살해 이유와 관련해 두 사람 사이에는 시대상황을 보는 눈의 차이, 특히 제국주의에 대처하는 문제와 지향해야 할 정치체제에서 분명한 대립 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의 견해에서는, 김옥균과는 달리 홍종우는 이 시기 조선이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외국으로부터의 도전이라고 인식하고 외부의 압력을 극복하면서 자주적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어떠한 평가들이 존재하는 지 알아보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홍종우에 대해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평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위정척사파 혹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보수 관료들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역사적 정합성을 무시하면서 이들 세력을 무시하려는 시각은 이제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개항 이후의 변화들을 충분히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 방안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향과는 달리 대외적으로 자주와 독립, 내부적으로는 공론과 공도를 핵심으로 하는 홍종우와 같은 제3의 근대화 방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편견과 무지에 의해 역사의 미라가 된 홍종우에게 이제 심장을 박아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Ⅲ. 결론
대부분의 위인전에는 나라의 근대화를 주창하며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의 삶은 치열하고도 열정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김옥균을 암살했던 홍종우는 '조선의 개화를 막은 흉노, 무식한 수구파'정도의 모습으로 우리 뇌리에 기억되어있다. 하지만 홍종우는 조선의 개화를 반대했던 무식한 수구파였을까? 역사가 말하는 홍종우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면 왜, 무엇 때문에 3여 년 간 프랑스에 가서 유학까지 했던 것일까? 한일합방이후 일제에 의해 남겨진 역사에서 홍종우의 존재는 무식한 수구파로 매도되어왔다. 그러나 홍종우는 누구보다도 나라를 걱정하고 나라를 위해 힘썼던 선각자였다. 그와 김옥균은 서로 다른 근대화를 추구하며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갔지만 만약, 이 두 사람이 함께 뜻을 합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일제치하 36년의 억압의 역사를 배우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19세기 말, 조선을 위한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홍종우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개척했지만 수구파라는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이태진은 "홍종우는 개화파에 속하는 자인데도, 수구파로 몰려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라고 했다. 조선의 개혁을 꿈꾸었던 홍종우, 다른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조선말 개화사상은 일부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개화 대 수구라는 단순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고민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그들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옥균과 홍종우 두 선각자를 기억하자. 같은 개화인사임에도 그들의 지향과 달리 대외적으로 자주와 독립, 대내적으로 공론과 공도를 핵심으로 하는 홍종우와 같은 제3의 근대화 방안도 있었기 때문이다. 홍종우에 대해 섣불리 평가내릴 수 있는 입장은 못 되지만 역사를 똑바로 알아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한 명은 역적이라 불렸고 그를 죽인 다른 한 명은 애국자라 불리는 이때까지의 그들을 평가하는 역사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할 것이다.
참고문헌 (가나다 순)
권정노, 『누가 역적인가』, 어문학사, 2007
금병동, 『김옥균은 왜 암살당했는가』, 내일을 여는 역사, 2003
김윤식, 「정치적 암살자 홍종우에 관하여」, 한국학보, 1977
임종업, 「난 김옥균이 업은 외세를 쐈다」, 한겨례, 2005
조재곤,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푸른역사, 2005
조재곤, 『홍종우(洪鍾宇)와 황제권력』, 경원대 아시아문화연구소, 2005
하원호, 『근대여명의 '비상한' 혁명가 김옥균』, 내일을 여는 역사, 2000
KBS, 한국사 傳 : 제9회 ‘내가 김옥균을 쏜 이유 -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 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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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26
  • 저작시기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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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9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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