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신석기 시대의 기초 지식
2. 신석기 시대의 시기별 구분
1)전기 신석기 문화
(1)배리강 문화
(2)앙소 문화
(3)하모도 문화
(4)세석기 문화
(5) 기하문양 도기문화
2)중기 신석기 문화
(1)용산 문화
(2)제가 문화
(3)대문구 문화
(4)양저 문화
3)후기 신석기의 문화
(1)염제
a.열산씨 부락
b.공공씨 부락
c.사악 부락
d.분수 부락
(2)황제
(3)태호
(4)구이
(5)요와 순
3.결론
2. 신석기 시대의 시기별 구분
1)전기 신석기 문화
(1)배리강 문화
(2)앙소 문화
(3)하모도 문화
(4)세석기 문화
(5) 기하문양 도기문화
2)중기 신석기 문화
(1)용산 문화
(2)제가 문화
(3)대문구 문화
(4)양저 문화
3)후기 신석기의 문화
(1)염제
a.열산씨 부락
b.공공씨 부락
c.사악 부락
d.분수 부락
(2)황제
(3)태호
(4)구이
(5)요와 순
3.결론
본문내용
합이(察哈爾) 탁록현(鹿縣) 부근>에서 그의 두 큰 적인 염제와 치우(蚩尤)를 격파하여 제후로부터 천자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그는 군대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이주와 왕래가 빈번하여 정주(定住)하지 않았다. 그의 행적은 동쪽으로는 바다와 대종(岱宗)<즉 泰山>, 서쪽으로는 공동(空桐)<山名, 지금의 감숙성(甘肅省)에 있음.>, 남쪽으로는 장강에까지 미쳤다.
고대인은 황제시대를 중국 문화의 시원으로 삼고, 전국말기의 학자들은 고대의 모든 발명과 제작의 공을 황제에게로 돌리고 있다. 예를 들면 문자 · 수학 · 역법(曆法) · 진법(陳法) · 음악 · 군제 · 전제(田制) · 정치구획 · 궁실 · 의상 · 화폐 ·주차(舟車) 등 이들 문화상의 중요한 공헌은 직간접적으로 황제에 의하여 발명, 혹은 창제 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황제는 이동을 반복하면서 일종의 수렵(狩獵) 혹은 유목의 경제단계의 생활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황제시대의 중국 고대 민족이 유목생활에서 초기 농경 생활로 진입하는 과도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악성, 전인서, pp.10-11.
(3) 태호(太)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태호 부락은 풍성(風姓)이고 복희씨(伏羲氏)로 일컬어졌으며, 염제 부락에 비해서 약간 늦은 시기에 등장하였다. 태호의 부락은 하남(河南) 회양(淮陽) 일대에서 활동한 부락이었고, 나중에는 황하 하류인 산동 곡부(曲阜) 지역에까지 확대되었다. 전국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문헌인 《左傳》에 등장하는 소호(少)는 바로 태호 부락 일파의 후예로 보인다. 김영환, 전인서, p.55.
또한 태호는 팔괘(八卦) · 서계(書契) · 혼인제도 등을 만들었다.
(4) 구이(九夷 : 黎)
황하 하류에서 장강의 회하(淮河) 유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는 동이(東夷)와 회이(淮夷)가 거주하였는데, 모두 9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9이(9夷)라고 일컬었다. 구이는 구여(九黎)로 우두머리는 치우(蚩尤)이다. 치우는 9개 부락 81개 씨족으로 이루어진 부락연맹장이었다. 치우는 황제 부락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구이 부락은 황제 부락에 흡수되었다. 당시 황제 부락에 흡수된 이족(夷族) 부락으로는 순(舜)의 조상인 고양씨(高陽氏) 전욱(頊)과 요의 조상인 고신씨(高辛氏) 제곡(帝) 부락이 유명하였다. 동상서, p.56.
(5) 요(堯와) 순(舜)
중국의 고대전설에서 가장 칭송되는 요와 순은 황제의 후예라고 전해 오기도 하고, 본래 그들은 동이족 출신인데 덕망이 높아 황제족의 수령이 되었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요는 당시에 홍수에 의한 피해가 심하여 일부 종족의 수령들을 소집하고 치수방법을 논의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수령이 곤()을 천거하므로 요는 곤에게 치수사업을 맡겼다. 순은 요의 뒤를 이어 그의 자리를 맡았는데 순은 각 종족 수령들을 소집하여 업무분담에 대하여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순은 자신의 의견은 내세우지 않고 각 종족 수령들이 천거한 인물에 모두 동의하고 자신은 회의의 사회자 역할에 그쳤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 요와 순의 행동은 후세에 높이 칭송되었는데 이것은 고대의 종족동맹회의와 원시적 민주주의의 자취를 전해 주는 것이다. 윤내현, <<중국사>>, (서울, 민음사, 1995), p.61.
3.결론
중국의 신석기는 중국 구석기에 비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우선 가장 먼저 발전이 된 것은 바로 주거지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동굴에서 주거를 했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식량을 구하는 것도 차이가 나는 것 중 하나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무리를 지어 이동하면서 사냥과 수렵으로 생활을 했지만 신석기시대에는 정착한 곳에 농사를 지어 살고 가축을 키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구석기 시대에는 토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흙으로 만든 것을 구워 사용한 토기도 나온다. 그리고 도구의 사용도 눈에 띄게 발전했다.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뜨려 사용하거나 골기도 그리 수준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신석기 시대로 넘어 오면서 돌은 더 예리하게 변했고 골기의 사용 하는 것도 많은 곳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석기 시대에는 모계씨족사회 였지만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부계씨족사회로 넘어 왔다.
마지막으로는 구석기 시대에는 모두가 공동체 생활이 였지만 신석기 시대로 넘어와 빈부격차가 생기고 공동체 생활에서 벗어난 계급사회가 시작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 신석기 문명은 구석기와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그 차이는 인류가 점점 진화하거나 또는 발전해서 편안해지고 있다는 것이 나는 신기할 뿐이다. 또한 인류는 자동적으로 물가근처로 가서 정착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을 이루고 그래서 부족을 이룬다는 것이 아마 인류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석기는 구석기 시대를 보안하면서 한 나라의 왕조를 건설 하는 기초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중요하게 느껴진다.
나는 중국 신석기를 조사하고 찾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전혀 몰랐던 곳에서 문명이 시작되고 그 문명이 발전하여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그것은 사용하고 다시 발전하고 이런 것들은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이런 것들이 나의 흥미를 끌어낸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신선했다.
참 고 문 헌
1. 김영환,《중국의 역사와 문화 -구석기 시대부터 후한까지-》,서울,길상득,2010.
2. 樊樹志, 김지환 외 역,《100가지 주제로 본 중국의 역사》,서울,고려대학교출판부,2007.
3. 송봉규 외 공저,《중국학개론》,서울,동양문고,1998.
4. 중국사학회, 《중국역사박물관1》, 서울, 범우사, 2004.
5. 심규호,《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서울,도선출판 일빛,2002.
6. 저우스펀,김영수 역《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중국사 강의》경기,돌베개,2006.
7. 부악성, 신승하(역), 《中國通史 上》, 서울, 지영사, 1998.
8. 김영환, 《중국의 역사와 문화》, 서울, 아이반호 2006.
9. 중국사학회, <중국통사1>, 서울, 범우, 2008.
10. 신승하,《중국사(상)》,서울, 대한교과서, 2005.
11. 윤내현, 《중국사》, 서울, 민음사, 1995.
고대인은 황제시대를 중국 문화의 시원으로 삼고, 전국말기의 학자들은 고대의 모든 발명과 제작의 공을 황제에게로 돌리고 있다. 예를 들면 문자 · 수학 · 역법(曆法) · 진법(陳法) · 음악 · 군제 · 전제(田制) · 정치구획 · 궁실 · 의상 · 화폐 ·주차(舟車) 등 이들 문화상의 중요한 공헌은 직간접적으로 황제에 의하여 발명, 혹은 창제 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황제는 이동을 반복하면서 일종의 수렵(狩獵) 혹은 유목의 경제단계의 생활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황제시대의 중국 고대 민족이 유목생활에서 초기 농경 생활로 진입하는 과도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악성, 전인서, pp.10-11.
(3) 태호(太)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태호 부락은 풍성(風姓)이고 복희씨(伏羲氏)로 일컬어졌으며, 염제 부락에 비해서 약간 늦은 시기에 등장하였다. 태호의 부락은 하남(河南) 회양(淮陽) 일대에서 활동한 부락이었고, 나중에는 황하 하류인 산동 곡부(曲阜) 지역에까지 확대되었다. 전국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문헌인 《左傳》에 등장하는 소호(少)는 바로 태호 부락 일파의 후예로 보인다. 김영환, 전인서, p.55.
또한 태호는 팔괘(八卦) · 서계(書契) · 혼인제도 등을 만들었다.
(4) 구이(九夷 : 黎)
황하 하류에서 장강의 회하(淮河) 유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는 동이(東夷)와 회이(淮夷)가 거주하였는데, 모두 9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9이(9夷)라고 일컬었다. 구이는 구여(九黎)로 우두머리는 치우(蚩尤)이다. 치우는 9개 부락 81개 씨족으로 이루어진 부락연맹장이었다. 치우는 황제 부락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구이 부락은 황제 부락에 흡수되었다. 당시 황제 부락에 흡수된 이족(夷族) 부락으로는 순(舜)의 조상인 고양씨(高陽氏) 전욱(頊)과 요의 조상인 고신씨(高辛氏) 제곡(帝) 부락이 유명하였다. 동상서, p.56.
(5) 요(堯와) 순(舜)
중국의 고대전설에서 가장 칭송되는 요와 순은 황제의 후예라고 전해 오기도 하고, 본래 그들은 동이족 출신인데 덕망이 높아 황제족의 수령이 되었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요는 당시에 홍수에 의한 피해가 심하여 일부 종족의 수령들을 소집하고 치수방법을 논의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수령이 곤()을 천거하므로 요는 곤에게 치수사업을 맡겼다. 순은 요의 뒤를 이어 그의 자리를 맡았는데 순은 각 종족 수령들을 소집하여 업무분담에 대하여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순은 자신의 의견은 내세우지 않고 각 종족 수령들이 천거한 인물에 모두 동의하고 자신은 회의의 사회자 역할에 그쳤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 요와 순의 행동은 후세에 높이 칭송되었는데 이것은 고대의 종족동맹회의와 원시적 민주주의의 자취를 전해 주는 것이다. 윤내현, <<중국사>>, (서울, 민음사, 1995), p.61.
3.결론
중국의 신석기는 중국 구석기에 비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우선 가장 먼저 발전이 된 것은 바로 주거지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동굴에서 주거를 했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식량을 구하는 것도 차이가 나는 것 중 하나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무리를 지어 이동하면서 사냥과 수렵으로 생활을 했지만 신석기시대에는 정착한 곳에 농사를 지어 살고 가축을 키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구석기 시대에는 토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흙으로 만든 것을 구워 사용한 토기도 나온다. 그리고 도구의 사용도 눈에 띄게 발전했다.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뜨려 사용하거나 골기도 그리 수준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신석기 시대로 넘어 오면서 돌은 더 예리하게 변했고 골기의 사용 하는 것도 많은 곳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석기 시대에는 모계씨족사회 였지만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부계씨족사회로 넘어 왔다.
마지막으로는 구석기 시대에는 모두가 공동체 생활이 였지만 신석기 시대로 넘어와 빈부격차가 생기고 공동체 생활에서 벗어난 계급사회가 시작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 신석기 문명은 구석기와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그 차이는 인류가 점점 진화하거나 또는 발전해서 편안해지고 있다는 것이 나는 신기할 뿐이다. 또한 인류는 자동적으로 물가근처로 가서 정착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을 이루고 그래서 부족을 이룬다는 것이 아마 인류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석기는 구석기 시대를 보안하면서 한 나라의 왕조를 건설 하는 기초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중요하게 느껴진다.
나는 중국 신석기를 조사하고 찾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전혀 몰랐던 곳에서 문명이 시작되고 그 문명이 발전하여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그것은 사용하고 다시 발전하고 이런 것들은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이런 것들이 나의 흥미를 끌어낸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신선했다.
참 고 문 헌
1. 김영환,《중국의 역사와 문화 -구석기 시대부터 후한까지-》,서울,길상득,2010.
2. 樊樹志, 김지환 외 역,《100가지 주제로 본 중국의 역사》,서울,고려대학교출판부,2007.
3. 송봉규 외 공저,《중국학개론》,서울,동양문고,1998.
4. 중국사학회, 《중국역사박물관1》, 서울, 범우사, 2004.
5. 심규호,《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서울,도선출판 일빛,2002.
6. 저우스펀,김영수 역《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중국사 강의》경기,돌베개,2006.
7. 부악성, 신승하(역), 《中國通史 上》, 서울, 지영사, 1998.
8. 김영환, 《중국의 역사와 문화》, 서울, 아이반호 2006.
9. 중국사학회, <중국통사1>, 서울, 범우, 2008.
10. 신승하,《중국사(상)》,서울, 대한교과서, 2005.
11. 윤내현, 《중국사》, 서울, 민음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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