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인문과학][인문]인문학(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과학기술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정보화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전쟁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돈의 관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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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인문과학][인문]인문학(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과학기술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정보화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전쟁의 관계, 인문학(인문과학)과 돈의 관계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인문학(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Ⅲ. 인문학(인문과학)과 과학기술의 관계

Ⅳ. 인문학(인문과학)과 정보화의 관계
1. 인문학은 정보화와 대립된 위치에 있다
2.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밑거름, 토대이다

Ⅴ. 인문학(인문과학)과 전쟁의 관계

Ⅵ. 인문학(인문과학)과 돈의 관계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적 인간, 혹은 인간적 문화’를 향한 환기력으로써 현실에 참여한다.
“전쟁이 역사적 담론의 모태”라는 푸코의 지적처럼, 전쟁저지의 담론으로서 인문학의 생산이 전쟁 중에 시작됨을 전시의 전쟁문학을 비롯한 전쟁비판의 글들이 확인하게 한다. 이는 ‘전쟁과 인문학의 상호상관성’의 확인이며, 파괴와 창조라는 전쟁의 이중성의 확인이고, ‘문명적 존재’와 ‘문화적 존재’라는 인간의 이중성의 확인이다. 또한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인문학의 필요성’을 전쟁이 생산한다는 역설의 확인이다. 전쟁이 야기한 ‘인간의 위기’는 ‘새로운 인문학의 생산’이라는 역설적 관계를 낳고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근대에서 야기된 ‘인간(이성)의 위기’로서 ‘인문학의 위기’란 ‘역사발전의 동인’이며, ‘문명의 충돌’로서 전쟁과 여전히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본 연구는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위기’라는 포스트근대성은 전쟁의 이중성처럼 ‘새로운 인문학의 필요성’을 야기하는 기회로서 위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회로서 위기일지라도, 그리고 ‘필요악으로서 전쟁’이라는 칸트의 명제가 여전히 유효할지라도, 전쟁은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없는 악임을 이성의 진보를 신뢰했던 칸트의 또 다른 명제에서 확인한다. 영원한 평화가 인간에게 가져올 행복 및 자신이 목적인 인간을 지향했던 칸트의 명제는 개인이 전체가 된 포스트근대에서 구현되어야 할 정치성의 명제이다. 그러므로 ‘전쟁과 인문학의 상호관계성’에 준한 본 연구의 결과는 전쟁이 인문학에 미친 영향뿐만 아니라, 인문학이 전쟁에 미칠 영향관계에 놓인다.
Ⅵ. 인문학(인문과학)과 돈의 관계
첫째는 인문학으로 돈을 버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80년대처럼 철학서나 역사서 등 교양서가 많이 팔리던 시대에는 인문학이 곧 돈이었다. 그만큼 인문학 시장이 넓었기 때문이다. 철학에세이가 1백만 부 가까이 팔리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 등이 그런 경우다. 이는 인문학의 시장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점은 예술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둘째 인문학 자체는 돈을 벌지 못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기초로서 인문학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시장이 개방되고 있지만 국내의 중국학 연구는 불모지에 가깝다. 시장연구를 위한 기초작업으로서 인문학은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 지식인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경우와 관련해서는 인문학 시장의 위축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견해들이 있다. 소위 인문학자들이 책을 내봐도 1000부도 안 팔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문학 시장의 위축 내지 축소는 국내 인문학자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더 강하다. 반증의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붐이다. 인문학에 어떤 당의정을 입히느냐에 따라 먼 나라 역사 이야기도 얼마든지 대형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시오노 나나미 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우에는 그런게 인문학이냐 하는 비판이 있다. 인문학은 학문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지 산업에 봉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다. 물론 이는 일면 근거가 있지만 인문학이 현실, 특히 산업에 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 예를 들어 중국철학 연구는 산업적인 목적과 관계없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결과적으로 그런 책을 중국관련 비즈니스맨이 읽더라도 현장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인문학(예술 포함)과 돈, 인문학과 산업의 관계는 대단히 복잡하다. 따라서 정부 혹은 기업의 인문학 지원 프로그램도 명확한 목표 하에 이루어질 때 의도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기업차원의 지원이 중복되지 않도록 세심한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과 산업의 관계는 아주 밀접한 경우도 있고 대단히 간접적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은 주로 산업지원을 위한 토대로서의 인문학 지원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 발성연구 같은 테마가 좋은 예이다. 한국적 창법이 제대로 연구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세계성악시장에서 한국 특유의 음악이 진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인문학이 돈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예술이건 인문학이건 근본에까지 이르렀을 때 돈도 될 수 있고 그 분야 자체도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칸트 연구가 일본과 중국을 제압한다면 칸트 연구서 들이 그들 나라에 번역 소개될 것이다. 이는 아주 초보적 단계에 속하는 경우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Ⅶ. 결론
인문학은<인간정신과 그 생산물>(문화)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제 기술을 배제한 인간정신의 활동이나 그것을 통한 지적 생산물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인간사회 전체가<기술에 의해 형성 technomorph>되고 있고, 문화는 하나의<기술 집합체 ein technisches Aggregat>가 되어버렸다. 때문에 인문학이 본래 학문적 성격과 이질적이었던 기술영역을 배타한 채 오직 학문적 순수성만을 고수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기술영역을 인문학 영역으로 끌어들여 연구함으로써(현대화함으로써), 메타(meta) 지평적인 성찰을 선도하고, 제 학문을 활발히 교류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여 근세 이후에 누렸던 선도학문으로서의 자리를 되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기존의 인문학,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을 아우르는 통합학문적 연구의 중심에 인문학이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려수, 인문과학의 이념, 인문과학의 새로운 방향, 서울대인문과학연구소, 1984
김성곤, 문화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노화준, 인문·사회과학분야 연구지원의 효율화 방향 학술진흥재단의 역할과 관리개선을 중심으로, 행정논총, 서울대 행정대학원, 2001
이성원, 인문학의 특성, 인문학의 위기
임홍빈, 과학기술시대의 인문적 상상력, 현대비평과 이론, 1994
학술단체협의회 편,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현재와 미래,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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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1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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