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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전쟁,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포스트모더니즘,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독서교육,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지식정보화와 멀티미디어, 현대 인문학과 컨텐츠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전쟁

Ⅲ.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포스트모더니즘

Ⅳ.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독서교육

Ⅴ.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지식정보화

Ⅵ.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멀티미디어

Ⅶ.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컨텐츠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필자의 경험상 그러한 수준에 도달하는 영상활용 강의를 진행하려면, 강의담당자는 대단히 수고로운 수업준비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필자도 솔직히 아직 그러한 강의를 못하고 있다. 영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상을 활용하여 수업하는 사례를 학생들이 일단 호응한다고 하여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더욱이 교과목 제목을 갖고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영화로 철학하기]가 어떠한가? 문제는 그 수업을 통해 본래 철학수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목표를 달성했는가 어떤가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것이다. 분명한 목표와 도달방법을 모색하여 시도하는 강의라면, 보다 학생들에게 친근하고 주목을 받을 교과목으로 제목을 바꾸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역으로 다음과 같은 시도도 정당한 것이다. 예를 들어 콘텐츠 교과목이 아니고 전통적인 인문학 교과목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새로운 디지털기술과 관련된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기존의 주입식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인문학 교육의 목표인 ‘창의성, 상상력, 비판력’을 제대로 담보할 수만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흔히 영상 등의 도구를 사용해야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전통적인 제목과 방식이어도, 올바른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제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학생들은 그 과목을 좋아하며 인정한다. 따라서 진정 인문학의 ‘기본’에 충실하고 인문학의 지향하는 ‘목표’를 심어줄 수 있다면, 어떤 전통적 교과목이어도 전혀 상관없이 많은 호응과 교육효과 그리고 활용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그 소재가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그 수업방식이나 사용도구가 학생들을 흥미롭게 하고 효과적인 교육효과를 낸다면, 그러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전혀 부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다. 콘텐츠 교과목의 보완은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식과 소재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 그 지향하는 목표에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인문콘텐츠학회]는 그러한 입장에서 창립된 학회이다. 흔히 ‘문화콘텐츠’라고 하여 콘텐츠라면 전통적인 인문학적 축적과는 유리된 것으로, 더 나아가 그 방식이나 목표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 있어서도 내용물 창출의 주된 원천은 바로 인문학적 사고와 축적물인 것이다. ‘인문콘텐츠’란 그 점을 분명히 하고자 명명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변화된 시대에서 인문학자들은 지금까지 축적된 인문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지털내용물(콘텐츠)을 창출시켜 나감에 있어, 올바른 방향성의 제시와 실제적인 참여를 요구받는 실천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함께 모색해 가고자 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인문학자들이 창립시킨 학회가 [인문콘텐츠학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검토한 콘텐츠교과목의 효용과 목표는 결코 기존의 전통적인 인문학과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며, 올바른 콘텐츠 교과목은 인문학 내의 시너지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전통적인 인문학 교과목과 상생(相生)의 관계를 맺을 것이다.
Ⅷ. 결론
우리의 인문학은 뿌리 없는, 생명 없는 헛가지만 무성하게 매달고 있다. 다중적인 식민의 경험 속에서 뿌리 뽑히고, 이제 \'자본\'으로부터 다시 소외당한다. 무늬가 탄생하는 태반인 삶의 중심 터가 공허하게 비어 있다. 뿌리 중심에서 뻗어 오르는 원형적 생명이 차단된 나무, 그 힘의 원심으로부터 무늬 형성이 정지된 나무, 고목이다. 표피적인 생명만을 겨우 유지하는 5천년 묵은 고목이다. 부재로부터 \'신생\'과 부활. 문제는 부재를 극복할 그 \'힘의 원천을 탐색하는\' 일이다.
철학, 과연 \'신생\'의 명약인가 독약인가? 철학은 심산유곡의 백학인가 청학인가? 도대체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인간임\'의 조건을 밝히고, \'인간되어감\'의 과정을 제시하는 것, 혹은 목적 자체로서 인간을 해명하는 일이다.\" 이렇다면, 철학은 분명 인문학과 통해 있다. 그것도 곁가지가 아니라 근본과 통한다. 그래서 철학이 살면 인문학이 살고 인문학이 살면 철학이 산다. 과연 실속 있는 방책이 철학 속에 있는가? 철학의 황금율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철학의 근본 주제가 \'자비\', \'사랑\', \'박애\', \'인(仁)\', \'애인(愛人)\', \'겸애\', \'에로스\', \'선(善)\' 등으로 표현된다.
지금까지 걸어온 반성의 긴 노정, 이제 그 두터운 흔적이 기둥이 되어 \'우리\'를 세운다. 그래서 \'인간적인 것이 축적되는\', 그리고 \'그 축적되는 경험이 하나의 인간적인 이념을 생산해 내는\' 이런 사회를 그린다. \'뇌물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 인간적인 사회. 그것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경제 구조,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전혀 다른 이미지가 제시될 때,\" 오직 그럴 경우에만 가능하다.
\'성숙\'의 페러다임은 인간은 \'되어간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래서 탐욕적인 사회, 탐욕적인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사회가 문제다. 배움의 터전은 문화다. 문화는 지식의 소유가 아니다. 문화는 삶의 지혜다. 그래서 지혜의 철학이 문화의 중심이다. 정치와 사회도 모두 거기에 걸려 있다. 권력 중심의 이동을 위해 과학과 종교가 마치 생선뼈 추리듯이 앗아간 것들이 근본학의 등뼈를 중심으로 다시 모인다. 짐이 무겁다고 엄살떨 일이 아니다. 또 훌훌 털고 나태한 일상으로 돌아갈 처지도 아니다. 식민의 영토로 잠식당한 철학, 거대한 공룡의 잡식성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인문학, 이제 그 \'신생\'의 길을 철학 속에서 찾아야 한다.
참고문헌
김욱동,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본질, 1990
김우창, 인간에 대한 물음, 새로운 인문학을 위하여, 1993
심광현, 21세기 인문학의 발전방향, 현대사회의 인문학 위기와 전망, 중앙대 인문과학연구소, 1997
안토니 기든스, 포스트 모더니티, 민영사, 1990
이진우, 사회비판 논리로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2001
Toffler,Alvin, 제3물결, 서울 한국경제신문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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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1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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