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 서양의 철학역사와 한국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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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사 - 서양의 철학역사와 한국의 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철학에 대해서
* 설 명
* 철학의 대상
* 철학의 방법
* 세계관으로서의 철학과 과학의 관계

2. 철학의 여러 부문
* 제1부문
* 제2부문
* 제3부문

3. 철학의 역사
1) 고대
* 창시기의 철학
* 아테나이기(아테네)의 철학
*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철학
2) 근대
* 합리론과 경험론
* 칸트의 비판철학
* 독일관념론
* 현대철학의 여러 조류
* 한국의 철학사상

4. 한국의 철학 사상
* 무속신앙
* 유교사상
* 불교사상
* 도교사상
* 동학사상
* 현대철학의 사조

본문내용

미쳤으나, 그보다는 불교적 윤리관과 종교적 세계관 형성에 더 많은 공헌을 하였다. 6∼7세기 백제에서는 겸익(謙益) 등의 노력으로 율종(律宗) 연구가 왕성하였으며, 신라에서는 원광(成光)·자장(慈藏)이 점찰보(占察寶)·세속오계·포살의식(布薩儀式) 등으로 불교적 도덕 실천을 고취하였다. 또한 원효(元曉) 등은 아미타불 중심의 정토신앙(淨土信仰)을 크게 일으켜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대승불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7세기 원효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는데, 그의 <일심설(一心設)>과 <화쟁론(和諍論)>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 뚜렷이 나타나 있으며 불교 내의 모든 이론들을 유기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통합적 방법론의 태도는 이후의 불교사상가들에게도 계승되어 한국 불교의 특징이 되었다. 11세기 의천(義天)과 12세기 후반 지눌(知訥)의 <선교합일(禪敎合一)>사상이라든지, 14∼15세기 기화(己和)와 16세기 휴정(休靜)의 <삼교유사론(三敎類似論)> 또는 <삼교회통론(三敎會通論)> 등의 그 예이다. 한국불교의 또 다른 특징은 호국불교로서의 성격을 띰으로써 민족국가 유지와 민족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이는 불교 본래의 무국적적 보편성향과는 관계없이 한국불교가 민족사상의 형성·발전에 일정한 몫을 하여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불교가 한국 전통사상으로서 간주되어 높이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도교사상
도교가 언제 한국에 도입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체로 2세기 말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가(道家)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은 신라의 태학에서 교과목의 하나로 채택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의 교양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 사상은 조선시대의 몇몇 유학자들에 의해 매우 깊이 연구되면서 비판적으로 수용되기도 하였는데, 이이의 《순언(醇言)》, 박세당(朴世堂)의 《도덕경주해(道德經註解)》 《남화경주해(南華經註解)》, 한원진(韓元震)의 《장자변해(莊子辨解)》,서명응(徐命膺)의 《도덕경지귀(道德經指歸)》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밖에 휴정의 《도가귀감(道家龜鑑)》은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도교와의 일치점을 찾아본 노장연구서이다. 도교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현세적 성향이나 산천·일월성신 등의 자연신을 숭상하는 점에서는 무속신앙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 예로부터 서로 동화·화합하였고, 민간에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풍수도참사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교 신앙은 고려시대에 가장 왕성하여 도로·관청건물·사찰·가옥·묘지, 그리고 관복·승복에 이르기까지 풍수서인 《해동비록(海東秘錄)》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유행한 《정감록(鄭鑑錄)》 신앙 역시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서의 왕조 변전(變轉)에 대한 주장으로서 풍수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한편 제도화된 도교의 성립도 이루어져 도관(道觀)의 설립과 도교의 제의인 초제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행하여졌으며, 고려시대에는 <천존(天尊)> <태일(太一)> <태을(太乙)>의 신앙이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도교가 성리학에 의해 배척당하면서 피지배층인 민중의 장생과 초복(招福)을 위한 기능을 행사하게 되었던 까닭에 지배층의 사상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배층의 사대주의·현란함에 비해 도교는 보다 주체적이고 소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 동학사상
19세기 조선사회는 사회구조의 해체기로서, 홍경래(洪景來)의 난과 진주민란, 삼정(三政)의 문란 등 극도의 혼란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구세제민(救世濟民)>의 기치 아래 등장한 것이 동학사상이다.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된 동학은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물인 <서학(西學)>과의 대결을 의도하고 있었다. 즉 동학이라는 명칭 아래 무속신앙·불교·유교·도교 등의 요소를 나름대로 포괄함으로써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의 통일을 꾀하고자 하였다. 또한 동학에는 적극적인 현실개혁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현실개혁 의지는 전봉준에 의해 주도된 동학농민운동을 통하여 혁명의 차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동학사상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천주(侍天主)>사상으로서, 이의 실현을 위해 성(誠)·경(敬)·신(信)의 태도가 강조되고 <인내천(人乃天)>사상과 연결되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동학사상은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되어 인간존중정신이 부각되었다. 이와 같이 동학이 만인의 평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사회로의 진입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을로 평가된다.
* 현대철학의 사조
서구의 철학사상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가톨릭의 전래였다. 그 뒤 18∼19세기 무렵부터 서구철학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여, 마침내 19세기 말 그리스철학을 유학의 관점에서 비판한 《철학고변(哲學攷辨)》 같은 저술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20세기 초부터는 서구사상 연구와 병행하여 최남선(崔南善)·손진태(孫晉泰) 등의 단군신앙과 무속신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1950년대에 이상은(李相殷)·박희성(朴希聖)·박종홍(朴鍾鴻)·손명현(孫明鉉) 등은 각각 맹자·생명·부정(否定)·자유의지 등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 전후의 분위기를 타고 조가경(曺街京) 등은 실존철학을, 김태길(金泰吉) 등은 미국실용주의철학을 보급하는 데 각각 앞장섰다. 1970년대 이후로는 김준섭(金俊燮)·이초식(李初植)·이명현(李明賢) 등이 과학철학을 소개하였고, 김여수(金麗壽)·소흥렬(蘇興裂) 등은 언어철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이상은·김경탁(金敬琢)·김용배(金龍培) 등에 의해 동양의 전통철학을 현대적인 방법론 아래 연구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는 1970년대 유승국(柳承國)·김충렬(金忠裂) 등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의 현상윤(玄相允)·권상로(權相老)에 의한 한국유교와 불교의 정리, 1960년대 이을호(李乙浩)의 다산경학연구(茶山經學硏究), 이기영(李箕永)의 원효연구, 1970년대 윤사순(尹絲淳)·유정동(柳正東)의 퇴계철학연구 등 전통철학 연구들도 오늘날의 한국철학계에서 관심을 쏟을 만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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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28
  • 저작시기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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