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화교의 애환사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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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한국의 화교
Ⅱ. 화교의 한국 거주 경위
Ⅲ. 한국인의 화교관 ― 대인에서 되놈으로
Ⅳ. 재한 화교 수난기
Ⅴ. 우리의 부끄러운 ‘마름’의식

본문내용

. 같은 동포들조차 수시로 속여 온 권력이, 힘없는 화교들과 한 약속을 지킬 턱이 없었다. 화교회관은 날아가 버리고 그 자리에 플라자 호텔이 병풍이 되어 화교촌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재개발 동의서를 써 준 화교들은 몇 평 안되는 땅이지만 서울에서 살 근거를 빼앗기고 푼돈 받아 대만으로 떠나야 했다. 양택식 시장이 그 일을 사과하러 대만에 갔을 때, 진사 사절단인지 모르고 따라갔던 당시 재개발 담당 공무원은 孤魂이 되어 돌아올 뻔했다.
Ⅴ. 우리의 부끄러운 '마름'의식
1930년대부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조선인들 중 상당수는 일등 황국신민이 될 수 있다는 미몽 속에서 살았다. 노천명이 싱가폴 함락을 노래하고, 모윤숙이 징병제를 찬양할 때, 그들은 아마도 진정으로 내선일체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반민특위에 붙잡혀 온 이광수가 당당하게, "민족을 위해 친일했노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확신 때문이었으리라. 만주국이 수립되고 '대일본제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면서 일본인과 가장 가까운 조선인이 대동아공영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기대를 넘어 현실이 되었다. 한족·만주족·몽고족·말레이족·폴리네시안까지. 이 모든 종족의 우두머리는 못되더라도 '마름' 구실은 할 수 있는 자격이 분명 조선인에게는 있었다. 일본의 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선봉에 서 준다면, 조선인도 강한 민족, 위대한 민족이라는 꿈을 꿀 수 있지 않겠는가. 스스로 이름을 갈고 언어를 바꾸고 정신을 바꾸고 나면 무엇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별하겠는가. 아니 구별된다고 해도 숱한 민족으로 구성된 "대동아공영권 = 대일본제국"의 이등국민은 될 수 있을 터였다. 못된 마름이 되기 위해 심력을 다 기울이는 추악한 소작인 의식이 당시 민족개량주의의 본질이었다.
사실은 민족개량주의를 만들어 내고 키워낸 논리, 천박한 社會進化論이 한국 근대의 대외 의식에, 특히 華僑認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찌기 윤치호는 아메리카·아프리카가 식민지가 되어 그 곳 원주민들이 죽느니만 못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도 그들 탓이라 비웃었다. 하느님이 그 완악함을 미워하시어 그 땅을 영국인과 불란서인에게 내어 주었다고 하였다. 영국인·미국인·불란서인에게는 한없는 존경과 찬사를, 필리핀인·아프리카인·중국인에게는 더 없는 경멸과 모욕을 퍼부을 수 있는 강심장은 바로 그런 세계관에서 유래한다. 세계를 약육강식, 우승열패의 냉엄한 논리가 지배하는 경쟁의 마당으로 보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논리는 자본의 논리 그것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적 부와 문명에 대한 열망, 그를 스스로 달성하지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 그러면서도 또 자신보다 못한 타자를 발견할 수 있는 세계는 얼마나 다채로운가? 모든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등급을 매긴다. 1등 국민이 있고, 2등 국민이 있으며, 3등 민족이 있고, 꼴찌 민족이 있다. 근대화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민족개량주의를 만들어 내고, 또 민족서열의식을 심어 주었다.
일제하 韓人들은, 그리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함께 연대하여 일본인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같은 피해자끼리 어루만지고 보듬기보다는 가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중했다. 아니, 중국인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싸우고 있었으니까. 韓人들은 일본에 기대어 중국인을 조롱하고 멸시했다. 수천년간 지속된 '사대주의'의 청산이라는 민족주의적 언설 뒤에 숨은 민족개량주의는 아주 자연스럽게 피압박 민족의 연대라는 숭고한 이상 ― 이것이 참된 민족주의가 아닐까 ― 을 질식시켜 버렸다.
華僑가 제대로 발붙이지 못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한국. 그것이 한국인의 배타적 '민족주의' 때문인가? 한국 민족주의는 정녕 '배타적'인가? 20세기 마지막 해, 대통령 신년사에서 표명한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개방적 세계주의'로라는 언급은 과연 타당한가? 잠시 고개를 돌려보자. 명동의 중국대사관을 보고, 덕수궁 뒤의 하비브 하우스를 보자. 연남동 중국집에 들렀다가 압구정동 로바다야끼에 가보자. 우리가 정녕 미국·미국인에 대해서, 일본·일본 문화에 대해서 배타적인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길거리에 나서 보자. 코를 높이고 눈을 키우고 쌍꺼풀을 만들어 붙이고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갱스터 랩을 흥얼거리고 힙합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그렇지 않은 젊은이보다 더 많다. TV에서는 일본옷을 입은 한국인 여가수가 역시 일본 전통복장을 한 백댄서들을 거느리고 한국말로 노래를 부른다. 그 가수는 요즈음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다. 한국의 현존 민족주의는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강대국에 대해서는. 그러나 한국의 현존 민족주의는 또한 무척이나 배타적이다. 한국보다 못살고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는. 한국인 스스로가 이처럼 기형적인 민족주의 ― 근대화 지상주의, 곧 민족개량주의 ― 를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인은 앞으로도 계속 한편으로 비굴하고 한편으로 잔인한 문화와 정서의 천박성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이 땅에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고, 그럼으로써 한국인 노동자들을 또 희생시키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들 것이다.
제국주의적 침략과 수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당한 피해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피해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공격해야 한다. 일본에는 피해배상을 요구하면서 華僑를 비롯한 외국인을 억압하고, 미국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면서 베트남과 동남아 노동자의 권리는 묵살하는 이중적 태도는 참으로 비굴하고 천박하다. 각 민족이 동등하게 어울려 사는 세계를 꿈꾸었던 民世 安在鴻은 정글이 아니라 화원이 되는 세계를 꿈꾸었다. 노란꽃, 빨깐 꽃, 보라색 꽃이 제각각 피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화원, 조화로운 세계를. 벼만 자라는 논이 아니라 온갖 풀과 온갖 꽃이 흐드러지는 자연스러운 벌판을. 華僑가 잡초라면 다른 외국인은 어떤가? 우리가 외국인들을 산삼, 인삼, 도라지, 잡초, 독초로 구분하고 그에 '합당한' 처우를 하려고 할 때, 다른 외국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취급할까? 우리는 산삼인가? 독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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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17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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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1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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