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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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해외 유출에 의한 우리 문화유산의 수난사

2. 우리 정부에 의한 우리 문화유산 훼손 사례

본문내용

전부터 중구 해안동 일대에 있는 대규모 붉은 조적조 창고(19 40년대 건축)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대형쇼핑몰이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의 전신인 구 식산은행(중구 해안동· 1919년 건축)은 2001년 8월 철거돼 현재 중구청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형편.
청국과 일본 조차지를 경계 짓던 진입계단 (1884년 건축)은 국내 최초의 언덕형 돌계단으로 인근 조경과 더 불어 보존가치가 높은 역사적 문화유산인데도, 구청에서 아무 관 련이 없는 공자상(중국 기증)을 최근 세워 역사현장을 심하게 훼 손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인천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kr
문화재 망치는 속세문화
우리는 굉장한 역사문화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보존과 관리로 말미암아 많은 자산이 멋대로 망가져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일이 허다하다. 2월이 끝나갈 무렵에 찾은 부석사와 소수서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부석사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해서 부석사로 오르게 되었다. 저녁 어스름에 잠겨 부석사는 그윽한 신비로움을 풍기고 있었다. 단순히 천년 고찰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정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깃줄을 모두 땅 속으로 깔아서 절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둠에 잠긴 솔숲에서 밤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니만큼 그 입구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화장실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커다란 주차장은 분명히 부석사의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부석사의 그윽함을 해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광객들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커다란 분수와 영주의 관광지를 알리는 커다란 관광안내판은 더욱 더 그렇게 보였다. 부석사는 고립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부석사를 돌아보고는 도망치듯이 부석사 아랫동네를 떠나 소수서원으로 갔다. 그 입구의 커다란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 사이로 들어서자 부석사와는 다른 유교문화의 고갱이가 밀려와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이 대단한 곳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배웠으나 정작 이렇게 찾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분명히 이곳은 선비문화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소리가 울려와 우리를 괴롭게 했다. 서양 고전음악이 들리더니, 이어서 재즈가 들렸다. 분명히 그 소리는 고요해야 할 소수서원의 분위기를 깨는 것이었다. 소수서원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하면, 결코 들려서는 안 되는 ‘소음’이었다. 그런데 주차장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휴게소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했으리라. 그러나 그 ‘친절’이 소수서원의 정취를 크게 훼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안으로 들어가자 ‘소음’은 점차 멀어지더니 들리지 않게 되었다. 소수서원에 담겨 있는 선비들의 정신과 풍류를 생각하면서 한바퀴 돌아보며 느끼는 기분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들이 있었다. 우선 커다란 문화재 안내판들이 문제였다. 그 안내판들은 이곳의 작은 공간들을 마구 망가뜨리고 있다. 원래 이곳에 있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옮긴 그림들을 안내한답시고 세워놓은 안내판들도 있다. 이것들은 명백한 문화재 훼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소수서원의 정취를 훼손하듯이, 문화재를 안내한답시고 세워놓은 안내판들이 소수서원의 원래 모습을 망쳐놓고 있는 것이다.
길을 따라 들어가자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제일 큰집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관리동이자 기념관이었다. 그 몸집이며 모습이 소수서원과는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비범한 선비의 세계에서 문득 비속한 속인의 세계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뒷문으로 나가니 죽계별곡을 ‘개발’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의 고향으로, 조선 성리학의 성지인 이곳에도 ‘개발’의 바람이 맹렬히 불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다시 매표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나무 숲을 지나 매표소 문을 나서는데, 이번에는 아예 ‘니나노 타령’이 들려온다. 서양음악 시간이 끝나고 우리 고전음악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소수서원에 울려 퍼지는 ‘니나노 타령’, 우리는 더욱 답답한 마음이 되어 급히 차를 몰아 이곳을 떠나고 말았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한겨레 2003-03-09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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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22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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