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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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산업혁명의 정의
2. 산업혁명의 기원
3.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유
4. 산업혁명이 면직물 공업에서 시작된 이유
5. 산업혁명의 결과
6.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생활
7. 산업혁명의 계급탄생 결과
8. 산업혁명의 계급의 제도와 사건들
9. 산업혁명에서의 계급의식의 형태
10. 산업혁명의 사회문제
11. 영국산업혁명기 기술혁신의 기원에 관한 비판적 검토
12. 산업혁명의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13. 산업혁명의 대외개방과 기술혁신

본문내용

경제론자들은 대체로 15세기 이후 이른바 유럽의 지리혁명과 이를 계기로 확대된 유럽의 대외 무역과 개방성이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의 구축과 산업혁명, 그리고 기술혁신에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다루고 있다. 영국산업혁명기 기술혁신의 문제에 한정한다면, 이러한 입장은 기존의 접근 방식이 제기하지 못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기술이전의 방향성이다. 유럽중심주의적 전파론(diffusionism)의 입장에 따르면 기술혁신은 유럽만의 현상으로서 그것이 비유럽지역으로 일방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비유럽지역의 유럽지역에로의 반대방향의 기술이전은 없었는가? 만일 있었다고 한다면 기술이전의 통로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의 산업혁명과의 관련성은 어떠하였는가? 둘째, 만일 산업혁명 직전 비유럽지역에서의 유럽지역과의 동등한 기술잠재력의 보유, 혹은 유럽 지역을 능가하는 기술 우위성이 확인된다고 한다면, 왜 비유럽지역은 영국과 유럽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혁명을 직접 수행하지는 못하였을까?
우선 기술이전의 문제와 관련하여 니덤의 중국 과학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는 동서양 기술의 상호의존성과 영향력에 대해 상세한 문헌조사와 실증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Needom 1954-). 특히 니덤은 이른바 자극전파의 가능성, 즉 기술의 세부내용은 없이 기본개념만이 전달되어 기술혁신의 노력을 자극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동서양의 기술교류의 폭을 크게 확대시켜 놓는데 기여하고 있다. 프랭크의 경우 "유럽만의 기술이라는 것은 없었다. 세계경제의 노동분업 상황에서 최소한의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경쟁자가 있어 그러한 기술을 획득하고자 하였다고 한다면 한 국가, 지역 혹은 특정 부문의 기술 우위성은 유지될 수 없었다"(Frank 1996, p. 204) 라고 주장하며 산업혁명기 기술혁신을 당시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양방향 기술이전의 결과로 보고자 한다. 블라우트는 산업혁명기의 기술혁신 중 유럽 고유의 것은 거의 없었으며, 예컨대 면공업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도의 면공업은 영국에 새로운 기술을 전수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영국의 공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인도의 탈공업화 전략을 통해서 그 발전이 억제되었다"(Blaut 1993)라고 언급하여 산업혁명기 기술혁신의 문제를 이후 제국주의와도 관련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동서양 기술이전의 가능성을 높인 것은 15세기 이후 활발히 전개된 세계적 차원의 대외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신성장론자에 의해 제기되고 있듯이 '대외무역은 정보유통의 배관'(conduit for information flows)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외시장과의 단순한 접촉에 의해서도 기술의 이전효과가 발생한다 (Grossman and Helpman 1991, 1994). 와이즈만은 기술혁신과정을 순열조합의 과정으로 받아들여 기술혁신은 기존에 존재하는 기술 가운데 이전에는 한번도 그 결합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 결합을 성공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Weitzman 1996). 이에 따르면 유럽의 비유럽 지역과의 활발한 접촉은 유럽 사회 전체의 가용 기술집합의 크기를 확대시키고 이러한 상황이 유럽의 기술재생산 능력을 확충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외무역을 통해 제고된 영국을 위시한 유럽 사회의 대외개방성의 확대는 유럽 이외 지역과의 지식 소통 현상을 강화시켜 기술혁신에 대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였다. 모키어는 "기술혁신 시대는 일차적으로 자신과 다른 세계의 기술을 관찰하여 그것을 자신의 사는 곳에 모방하는 형식을 취하는 노출의 시대"(Mokyr 1990)와 일치한다라고 말하여 이상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15세기 이후 유럽이 대외 무역을 확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였을까? 대부분의 세계경제론자들은 신대륙의 발견으로 인한 금, 은 등 교환수단의 확보가 유럽의 대외무역을 자극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는 이러한 유럽의 성장(the Rise of Europe)에 관한 논의에 부가하여 당시까지 세계경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여 온 중국 혹은 동양의 몰락(the Decline of the East)을 동시에 설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Frank 1998). 그는 1421년 중국의 明왕조에 의한 北京으로의 천도와 이를 기점으로 한 해양 활동의 침체와 폐쇄적 대외 정책 노선이 이후 전세계 해양 무역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옮겨간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골드스톤과 포메란츠는 1620-90년 사이에 중국, 일본, 중앙, 동남 아시아 국가, 오토만 제국 등 대부분의 유라시아 국가들이 기후, 인구, 사회, 경제, 정치적 격변을 겪었으며 이러한 17세기 위기의 과정 속에서 점차 영국 등 유럽의 국가들이 대아시아 무역에서 배타적 주도권을 확립하여 간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Goldstone 1991, Pomeranz 1997).
왈러스틴은 산업혁명기의 기술혁신이 중요성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시기에 영국이 세계경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Wallerstein 1989). 이는 영국이 세계경제에서 발휘한 지배력으로 말미암아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새로운 사업 확장 노력이 세계시장에서 독점 이윤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산업과 기술의 영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사후적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국내적인 상황에 적용시키면, 부르주아 혁명을 겪은 후 영국의 자본가 계층은 국가권력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들은 이후 대외 무역이나 제국주의 확대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사실과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산업에서보다는 새로운 사업영역의 개발이나 독점을 통해 보다 많은 이윤의 기회를 엿보게 되었으며, 이는 영국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확보한 사실과 맞물려 대외무역을 통한 이윤확보 노력으로 집중되게 되었고 이러한 노력들이 사후적으로 기술혁신의 사례로 인식되는 경우를 낳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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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6.16
  • 저작시기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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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19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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