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그라스]귄터 그라스의 역사개념, 귄터 그라스의 소시민관, 귄터 그라스의 상실의 미학과 정체성의 확장, 귄터 그라스의 소설 넙치, 귄터 그라스의 소설 국부마취를 당하고,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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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귄터그라스]귄터 그라스의 역사개념, 귄터 그라스의 소시민관, 귄터 그라스의 상실의 미학과 정체성의 확장, 귄터 그라스의 소설 넙치, 귄터 그라스의 소설 국부마취를 당하고,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귄터 그라스의 역사개념

Ⅲ. 귄터 그라스의 소시민관

Ⅳ. 귄터 그라스의 상실의 미학과 정체성의 확장

Ⅴ. 귄터 그라스의 소설 넙치

Ⅵ. 귄터 그라스의 소설 국부마취를 당하고

Ⅶ.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진실을 주장하고 싶고, 오스카의 문체의 이면을 쓰고 싶다. 여기서 보고해 두고 싶은 것은, 첫째, 얀이 유감스럽게도 끝까지 하지 못해 이길 수 없었던 최후의 게임은 그랑의 손이 아니고 2번 카드 없는 다이아몬드 게임이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오스카가 우편물실을 나설 때, 새 양철북을 갖고 오기는 했지만, 이 때 보고할 것은, 새 양철북만이 아니고, 멜빵도 없이 죽은 남자 및 편지와 함께 세탁물 바구니에서 굴러 떨어진 부서진 북도 함께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더 보완해야 할 것은, 얀과 나는 우편물실을 거의 비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역방위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회중 전등과 권총을 들이대고 “나왓!” 하고 명령했을 때 오스카는 두〔…〕지역방위대들 사이로 기어들어 가서 자신의 보호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미주”
위 문장에서 내(ich)가 그라스가 되었다가 조금 있다가 다시 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러한 1, 3인칭의 혼합 서술 방식은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세살배기라는 사실과 연관시켜 파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자신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즉 오스카가, 조금 전에 그들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것으로 생각했던 소방대원들이, 이미 나보다 먼저 마르쿠스 Markus에게로 와서 붓에 물감을 듬뿍 묻혀, 쇼윈도우 위에다 비스듬하게 ‘쥐털린 서체 (Sutterlinschrift)’로 유태인 돼지라고 써 놓았다.”
슈만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빈번한 1, 3인칭의 교체 서술은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자아 소외 현상 (Ich Entfremdung)’의 표현이다. 이것은 오스카가 자신의 정체성 (Identitat)을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보다 자신을 객관화시켜 오스카가 아니라도 이런 상황에 처한 제3자가 얼마든지 오스카와 같은 악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예는 작품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추정상의 아버지인 마체라트 Matzerath와 얀 브론스키 Jan Bronski 사이에서, 자신이 정확히 누구의 아들인지를 모르는 父權不在는 곧 오스카의 정체성 문제와 직결된다. 오스카는 또한 자신을 예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이 놀이에는 끼지 않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일란성 쌍생아임을 확인한다: 이 아기 예수는 혹 나의 쌍둥이 형제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체성의 부재 (Identitatslosigkeit)가 오스카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ich와 er의 혼용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오스카냐? 나냐? 나는 경건하고 오스카는 산만하다.”
이러한 1, 3인칭의 혼용은 텔렌의 제2의 얼굴의 섬 Die Insel des zweiten Gesichts, 르싸쥬의 질 블라스에서도 나타나고 이보다는 약하지만 라사리요에서조차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는 갑자기, 그 귀중하지만 흉칙스러운 항아리를 두 손으로 높이 들어 올려서 있는 힘을 다해 나의 입으로 내팽개쳤다. 이미 말했듯이 그가 그 일을 하며 자신의 모든 힘을 소모해 버렸기 때문에, 이런 짓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반대로 걱정없이 마음껏 즐기고 있던 그 불쌍한 라사로는 하늘이 송두리채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고 생각했다. 그 타격은 너무도 커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 미주”
악한소설의 자서전 형식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적 요소는 서술 차원의 이중화이다. 악한의 서술된 이야기 이외에, 시간의 거리감을 두고 이미 서술된 사건들을 돌아보는 화자의 입장이 나타난다. 그 결과, 악한의 삶에 도덕적 또는 종교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이러한 판단의 원칙들은 악한적인 존재로부터 발전되었다는 것이 암시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중성은 이야기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 투덜거리는 악한, 바로 그 자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묘사 형식 역시 악한의 빈정거림 (Ironisierung)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그 안에서 독자들은 악한이 자기변명을 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질 뿐 아니라, 그릇된 자부심을 고집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허구의 자서전 형식에서 사용되는 이중적인 서술 차원으로부터, 많은 악한소설 작품에서 특징지워질 수 있는 내적갈등이 야기된다. 한편으로 화자는 악한 주인공의 민완성에 대한 희열과, 서사적으로 만끽된 세상의 다채로움에 관심을 갖고 화합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화자는 악한의 反사회적인 처신에 대해서 도덕적 거리감을 두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반된 감정의 병존은 서술적 의도의 이중성에 상응한다. 독자는 흥미의 측면에서 악한의 뻔뻔스러운 장난을 즐기기도 하지만 교육적,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그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 두 의도들을 악한소설 속에서 상반되지 않게 일치시켜 효과를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마떼오 알레만은 구스만에서 도덕적, 종교적 교훈과, 악한적인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서사적 흥미 사이의 불협화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Ⅷ. 결론
그라스는 독일의 재통일을 대단히 회의적으로, 아니 나아가 비극적으로까지 보고 있다. 폰티는 결국 독일을 떠나고 만다. 마치 그의 친구가 죽음으로 독일을 떠나듯이.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탈주를 도왔던 케테 Katte가 있었듯이 독일을 떠나는 폰티옆에는 그의 프랑스 외손녀가 동행한다. 자신의 새 독일이 또 다시 정의와 질서의 이름으로 다른 의견이 수용되지 않는 사회로 변하는 것에 대한 항변을 하기 위해 그는 케테를 새로운 프로이센-독일인의 모범으로 만들고 있다.
참고문헌
◇ 귄터 그라스(1999), 양철북, 민음사
◇ 김홍섭, 독일문학과 예술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 공준모, 소설 양철북에 나타난 역사의식과 서술기법
◇ 박상화(1994), 포스트모더니즘과 귄터 그라스의 넙치, 온누리
◇ 박환덕(1988), 양철북에 나타난 귄터 그라스의 세계관, 열음사
◇ 박환덕, 독일 문학의 이해, 서울대학교 출판부
◇ 오한진 편저(1995), 독일 문학과 세계 문학, 도서출판 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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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1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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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3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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