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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고운 최치원의 약력

Ⅱ. 고운 최치원의 출생설화

Ⅲ. 고운 최치원의 생애

Ⅳ. 고운 최치원의 저서와 업적
1. 시문과 사산비명
2. 풍류도 사상의 체계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올렸고 그 결과 초기 우리 문학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문학적인 역량을 세계에 떨치는 위업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최치원의 우수성을 인정할 수 있다. 결국 최치원은 세계 속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2. 풍류도 사상의 체계화
최치원은 단순히 문장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고 유교사상을 비롯한 불교, 도교에도 깊은 조예를 가졌다. 이념(理念)에 대한 이해가 막연하던 당시에 매우 특이한 일이라 하겠다. 그 스스로를 ‘유문말학(儒門末學)’, ‘이부지도(尼父之徒)’라 일컬은 것을 보면 그가 유교사상을 상당히 신봉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인 면과 관련하여 “반드시 요순(堯舜)을 따르고 우탕(禹湯)의 정치를 펴면, 천하가 창성하고 아름다워진다(必可驅堯舜而殿禹湯 苑五岳而池四海 盛矣美矣)”라고 했으며 또 일컫기를 “어진 신하는 그 임금이 요순(堯舜)처럼 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賢臣以致堯舜爲先)”라고 했다. 이로 보면 최치원은 유교사상의 핵심을 깨닫고 있었으며 당대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불은 나무에서 생기나 불이 사나우면 나무를 태우고, 물은 배를 뜨게 하나 물이 성하면 배를 뒤엎는다(以爲火生於木 而火猛則木焚 水泛其舟 而水狂則舟覆)”라는 발언을 보면 최치원이 당대 신라의 실정을 비판하고 교정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만민의 어버이인 임금이라도 패덕(悖德)을 저지르고, 실정(失政)을 하게 되면 백성이 힘으로 이를 저지하고 나설 수 있음을 경고했다고 하겠다.
이 외에도 유교에 대한 그의 입장과 발언은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그는 유교에서 이른바 사람다스리는[治人] 요체가 인정(仁政)과 예교(禮敎)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유교의 핵심을 꿰뚫었다. 인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백성을 바르게 다스려 구하는 것이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치자가 공평(公平)과 중정(中正)을 지켜 조금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며 예교는 인간질서의 근본이므로 반드시 백행(百行)의 근본인 효(孝)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임금에게 올린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의 내용도 이로써 짐작을 할 수 있다.
최치원은 유교 사상은 물론 불교 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 가운데 화엄에 대한 이해가 심원했다.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의 서(序)에서 법장화상의 행적을 10개의 과목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화엄삼매관(華嚴三昧觀)에 나오는 직심(直心)의 십의(十義) 즉, 광대심(廣大心), 심심심(甚深心), 방편심(方便心), 견고심(堅固心), 무간심(無間心), 절복심(折伏心), 선교심(善巧心), 불이심(不二心), 무애심(無碍心), 원명심(圓明心)에 맞춘 것이다. 논리적인 학문을 해온 그가 불교 사상의 핵심적인 논리를 보여주는 화엄경을 깊이 이해하고 이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화엄경이라는 교종(敎宗)에만 얽매이지 않았고 선(禪)의 실천적인 면도 중시했다. “선(禪)은 담박하여 맛이 없으나 모름지기 힘써서 마시고 먹어야 하리니, 다른 사람이 마신 술이 나를 취하게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먹은 밥은 나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낭혜화상(朗慧和尙)의 말을 빌어 선은 자득(自得), 자증(自證)하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했다. 그리고 최치원은 지증대사비서(智證大師碑序)에서 남종선의 종취(宗趣)를 “수행하고 수행했으나 수행함이 없고, 증득하고 증득했으나 증득함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는 심심상인(心心相印), 불입문자(不立文字)란 선(禪)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도교에 대한 그의 깊은 식견은 “도(道)는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니 진실로 탁마(琢磨)의 이치를 끊은 것이다”라는 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 진리의 본질이 언제나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천적인 면에서 지도(至道)를 알기 위해서는 성실성과 경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지도(至道)를 부지런히 행하는 자는 적고, 현문(玄門)을 닫는 자는 없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유불도의 사상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실천은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의 고유한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가치를 세상에 언표 했다는 점이다.
그가 우리의 고유한 사상인 풍류도(風流道)를 새롭게 이해하고 설명한 데에는 그의 민족적인 의식이라 할 수 있는 동인의식(東人意識)이 내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을 했으면서도 외국 문화에 물들지 않고 우리의 사상이 갖는 가치를 오히려 발견해 냈다. 동방이라는 방위가 갖는 의미, 그 동방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과 그 우수성, 동방에서 동방인이 세운 나라가 갖는 아름다운 명칭 등을 밝히고 언급함으로써 그 스스로 투철한 동방인의 의식 즉 주체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동방을 움츠렸던 것이 다시 살아나고 새로운 싹이 무성하게 뻗어 나와 생성, 변화하는 곳으로 보았다. 이러한 아름다운 방위에 살아가는 백성들은 천성이 어질어서 살리기를 좋아하고 부드럽고 유순하며, 서로 양보하고 다투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지적하였다. 최치원은 이러한 조건이 어울려 우리나라가 군자의 나라[君子國], 어진이가 사는 곳[仁域], 태평승지(太平勝地) 등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러한 선민(選民) 의식의 바탕이 된 우리의 고유한 사상인 풍류도(風流道)가 갖는 가치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최치원은 일찍이 세계적인 사상을 널리 섭렵했을 뿐 아니라 우리 사상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입증하여 민족적인 긍지를 심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성과 사상을 대표할 만한 위인(偉人)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인종(1989), 고운의 생애, 고운 최치원 대우 학술총서, 민음사
▷ 김중렬(1991), 최치원의 문학사상·한국문학사상사·계명문화사
▷ 김문기(1994), 최치원의 사산비명 연구, 한국의 철학, 제 22호
▷ 이능우(1965), 최치원, 신라의 지성, 한국의 인간상 제5권, 신구문화사
▷ 이헌홍, 최치원전의 전기소설적 구조
▷ 임재해(2000), 설화 자료에 의한 역사연구의 방법 모색, 설화와 역사,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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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1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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