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와 환율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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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 경제와 환율변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1. 미국 경제와 환율변동
(1) 미국 경기 후퇴와 변동환율제
(2) 미국의 통화 긴축정책과 플라자 합의
(3)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가치변동과 미국경제
(4) 미국의 환율정책 평가
(5) 달러화의 전망

2. 플라자 합의
(1) 왜 플라자 합의의 성립배경
(2) 플라자 합의의 결과 : 일본의 엔고 불황

3. 결 론 :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4.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레이거노믹스의 영향으로 그때까지 달러강세 엔 약세였던 환율을 각국의 정책협조로 달러 약세로 유도하자는 합의였다. 다카하시 조센(2002), 사라진 일본 경제의 기적, 다락원, p.129
플라자 합의에 의한 달러 매도 협정 개입과 단기 금리 상향 유도로 1985년 1월, 1달러=240엔 전후였던 엔 환율이 연말에는 200엔 전후로 까지 높아져 엔고가 됐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적자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또한 일본과 미국의 금리차가 줄어듦으로써 달러는 한층 하락한다.
이렇게 되자 타격을 받은 것이 일본의 수출 기업이다. 많은 일본 기업은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엔고와 달러 약세로 채산이 맞지 않게 됐다.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당시 일본 전체가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대소동이 일어났다. 일본경제의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일본에서의 수출로는 채산이 맞지 않으므로 생산거점을 동남아시아로 옮겨 값싼 노동력을 써서 생산하고 수출하는 식으로,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일본 기업의 해외진출은 이즈음부터 활발해졌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신규 설비투자가 정체하고 수출 의존부분의 생산이 급감하는 등 일본은 꽤 심한 불황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엔고 불황이다.
당시 일본은 재정 건전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금융정책에만 크게 의존하는 정책자세로 일관했다. 일본에서는 재정법에 기초하는 제도적 제약도 있어서 전후 거의 일관되게 균형예산을 원칙으로 했다. 공공사업에 충당되는 건설국채와 적자국채는 명확히 구별되어 있고 적자국채발행은 가능한 피한다는 것이 재정법의 기본입장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석유위기로 경제 감속이 현저해지고 세수는 늘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후쿠다 정권때 적자국채(재정법산 특례국채)를 대량 발행하게 되었다. 석유위기때는 이 적자의 축소가 큰 과제가 되었고, 나카소네 내각에서는 세출삭감이 실시됨으로써 신규 국채 발행 없이 그럭저럭 예산을 짜는 정도로까지 재정을 개선하게 되었다. 그러나 재정 재건이라는 족쇄에 있었기 때문에 엔고 불황 때도 공공사업 등 재정 면에서 수요 추가책으로 경기를 지탱하는 방책을 거의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유일한 방책인 금융정책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86년 1월에 이어 3,4,11월, 그리고 1987년 2월 잇달아 2.5%까지 공정금리를 내렸다. 초저금리가 계속되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2.5%라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였다. 다카하시 조센(2002), 사라진 일본 경제의 기적, 다락원, pp.138-145
한편, 일본은 1985년부터 5년 동안 급격한 달러 저평가, 엔고와 대미정책협조에 일본 경제는 큰 영향을 받아 거품이 팽창하고 토지와 주식값이 크게 뛰었다. 많은 국민들이 경제번영의 꿈이 취한 나머지 일대 투기 붐에 휘말렸다. 거품은 1989년 정점까지 부풀었고, 1990년에 들어서자 단숨에 꺼지기 시작했다. 상승일로의 토지신화, 주식신화가 무너지면서 일본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고 지금까지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3. 결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일본경제는 다른 나라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과의 환율전쟁에서 이겼을 때 초장기 번영을 누렸다. 한때는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훌쩍 넘어선 적도 있다. 1980년대까지는 환율정책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당시에 일본기업은 미국 경제의 상징인 록펠러 빌딩을 매입하기도 했고, 미국 문화의 상징인 영화사들을 상당수 사들였으며, 세계적인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매입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과의 환율전쟁은 물론 환을을 상대로 국내에서 치른 전쟁에서조차 패퇴했고, 그 결과 초장기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잠시 경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가 다시 고꾸라지곤 했다. 지금도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환율 정책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뒤에 ‘단군이래 최대의 난리’였던 외환위기를 겪었고, 그 여파로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백 수십 만 명에 달했고,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났다. 흑자를 기록하던 기업들까지 부도를 내는 등 3만개 이상의 기업들이 도산했다. 당시 김영삼 정권의 강력한 보호를 받았던 종합금융회사들은 거의 모두 도산했으며, 다른 금융기관의 3분의 1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은행들마저 이렇게 저렇게 짝짓기를 한 후에야 겨우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피땀 어린 공적자금이 160조 원이나 투입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1960년대까지 최고의 장기 호황을 누렸던 것도 세계경제가 공동으로 환율정책에 성공한 결과였다. 1970년대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도 환율정책이 실패한 결과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가 초장기 호황을 누렸던 것 역시 환율정책이 성공한 결과였다. 또한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왔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그에 따른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환율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경제의 패권을 쥐었던 나라들은 예외 없이 환율정책에 성공했으며, 경제패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준 것은 환율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환율이 세계경제는 물론이고 한 나라의 경제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기업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최용식(2010), 환율전쟁, 도서출판 새빛 pp.39-41
* 참고문헌 *
다카하시 조센(2002), 사라진 일본 경제의 기적, 다락원
송경헌(2004), 추락하는 미국 달러, 무너지는 한국경제, 물푸레
최용식(2009), 경제병리학, 새빛에듀넷
최용식(2010), 환율전쟁, 도서출판 새빛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http://ecos.bok.or.kr/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
매일경제신문 http://www.mk.co.kr/
한국경제신문 http://www.hankyung.com/
동아일보 http://ww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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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0.12.02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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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4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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