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학][지역문학단체]지역문학의 필요성, 지역문학의 배경, 지역문학의 교재, 지역문학의 내용, 지역문학과 구비문학, 지역문학과 지역문학단체, 지역문학의 사례 분석(지역문학, 지역문학단체, 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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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지역문학단체]지역문학의 필요성, 지역문학의 배경, 지역문학의 교재, 지역문학의 내용, 지역문학과 구비문학, 지역문학과 지역문학단체, 지역문학의 사례 분석(지역문학, 지역문학단체, 구비문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지역문학의 필요성

Ⅱ. 지역문학의 배경

Ⅲ. 지역문학의 교재

Ⅳ. 지역문학의 내용

Ⅴ. 지역문학과 구비문학

Ⅵ. 지역문학과 지역문학단체

Ⅶ. 지역문학의 사례

참고문헌

본문내용

부 조직과 두드러진 매체 발간 또한 두드러진 바 있다. 조선문맹은 1945년 창립부터 ‘지방문화연맹지부’를 두었다. 경남지역 지부는 모두 여섯이 확인된다. ‘문학가동맹 진주지부’, ‘하동문화협회’, ‘삼천포예술동맹’, ‘진교예술동맹’, ‘마산문화동맹문학부’와 ‘부산문학가동맹’이 그것이다. ‘삼천포예술동맹’은 1945년 10월, ‘진교예술동맹’은 1946년 2월에 마련되었다.
‘하동문화협회’는 1946년 2월에 창립되었다. 『동아일보』와 『예술신문』 하동지국을 맡았던 남대우가 간부로 일했다. 따옴시는 그의 작품이다. 어린 ‘맨발동무’끼리라도 “붉은 기폭” 아래 ‘오똘똘똘’ 뭉쳐 나가자는 권유가 힘차다. 이때 “붉은 기폭”이라는 표현이 막연하나마 새조국 건설, 인민 해방을 내세운 것이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광복기 경남지역 아동시에 담겨진 혁신적 의지가 넌지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소지역 조직 활동 가운데서 가장 활발했던 곳이 진주지부였다. 1945년 12월 20일 일찌감치 위원장 김병호, 서기장 손풍산, 회원 남대우김성봉이석우권병탁과 같은 이들이 모여 깃발을 달았다. 그들은 각별히 달에 두 번 기관지 『문학신문』을 내면서, 글쓴이를 중앙지역 없이 고루 끌어들였다. 게다가 맹원 손풍산은 진주지역에 좌파 아동지 『새동무』 진주지사를 운영하면서 『民友』라는 좌파 종합지까지 냈다. 지역 계급주의 매체 활동의 모범을 보인 셈이다. 『민우』는 진주 가까운 여러 곳에 지부를 두었다. 그 지부장은 거의 모두 농업조합장들이어서 지역에서 지닌바 위상을 알게 한다.
그 무렵 나라 바깥에서 들어오고 있었던 ‘귀환동포’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각 지역마다 그들을 위한 임시 토막촌이 있었다. 여느 작품들이 유명 정치가나 명망 있는 광복투사를 대상으로 삼은 데 견주어, 이 작품은 ‘인민’으로 표현되고 있는바 예사 사람의 ‘귀환’을 다루고 있어 각별하다. 꾸미지 않은 표현에 직설적인 소박함이 보이나, 그들의 곤궁한 처지에 대한 공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살 곳 업는 그들의 安息鄕은/南 北 어느 마을”일까, “그들을 擁護할 人民의 정부는 언제 설까”를 자탄하며 ‘답답’해 하는 시인의 되뇌임에 광복기 지역 지식인의 이념 갈등상이 적확하게 담겼다.
진주지역 좌파 조직의 활발한 모습과 달리 부산지역은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프로예맹의 하부 조직으로 문학, 음악, 연극 동맹이 마련되어 갖가지 합동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으나, 시인들의 활동은 미미했다. 오히려 우파 매체 『애국 문예신문』의 역할이 돋보인다. 그러나 인접 매체 활동은 컸다. 『인민해방보』『민주중보』와 같은 좌파중도좌파 언론이나 『한얼』과 같은 배달말 교육 매체가 있어, 좌파시의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이렇듯 경남의 계급시인들은 광복 초기부터 서울과 지역 안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46년을 넘어서면서 차츰 외부 정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49년 10월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이 마침내 등록을 취소당했다. 국민보도연맹의 전향 사업은 나라 곳곳을 덮었다. 1950년 벽두부터 양우정은 국민보도연맹 서울시 중구 결성식에 나가 경찰 관계자들과 함께 축사를 했으며, 서울특별시경찰국은 전향문필가들의 원고심사제를 실시한다고 대한출판문화협회에 통첩하고 있다. 서울에서나 지역에서나 좌파시인들의 설자리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김상훈은 우파 문예지 『문학』 2월호에 「국화」를 싣고 있다. 재혼의 뜨거움을 담은 사랑 시다. 스스로 전향했음을 뚜렷이 한 것이다. 1950년 6월 경인전쟁 앞까지 지역의 계급시인들은 알게 모르게 전향하거나, 잠적 또는 월북하면서 어려운 삶길을 걸었다. 박석정신고송은 1946년에, 박석정은 1948년에 북으로 넘어가 살길을 찾았고, 권환은 지병 탓에 마산 우거에 머물러 문단에서 잊혀져 갔다. 이주홍은 1947년 부산에 내려와서도 한결같이 지역 학교연극을 앞장서 발전시키며 자리를 굳혔다.
광복기 다시 교직에 몸담았던 김성봉김병호는 문맹 진주지부 활동을 끝으로 시로부터 멀어져갔다. 하동문화협회 일을 접고 부산으로 넘어온 남대우는 『매일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언론인으로 몸을 바꾸었다. 그러나 1950년 전쟁 직전 국민보도연맹학살폭거로 말미암아 희생되고 말았다. 이구월은 오랜 지병에도 불구하고, 광복기 내내 틈틈이 좌우 매체를 아울러 넘나들었다. 그러다 1949년 동시집 출판을 빌어 전향 표지를 확실히 했다.
경남지역 좌파 시단의 전향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은 1950년 6월 경인전쟁을 몇 달 앞둔 부산에서부터 이루어졌다. ‘경남보도연맹문화실’ 주최 부산문화기자회 후원 「시인 정지용선생을 마자 시와 음악, 무용의 밤」을 미국문화관에서 5일까지 연 것이다. 서울 『국도신문』은 정지용 일행의 여정에 따른 연재 기사를 실었다. 지역신문도 그 일을 크게 다루었다. 이주홍은 『부산일보』에 「예술의 계절 - 지용 시의 밤의 성과」를 실어, 스스로 경남문단에서 지닌바 자리를 뚜렷이 했다. 그 자리에 유치환정진업손풍산들과 같은 지역 주요 시인들이 좌/우에 관계없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광복기 경남지역 계급 시는 무엇보다 그 조직과 매체 활동, 그리고 소지역 활동에서 두드러진 실천 활동을 보여주었다. 경남 계급시인 모든 세대가 한 공간에서 매우 역동적이고 뚜렷한 문학 실천을 시와 동시에 아울러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정세의 악화로 1946년부터 1950년 전쟁까지 이르는 시기 동안 월북과 전향, 그리고 조직 해체로 말미암아 좌파 활동은 급격히 물러섰다. 그리하여 뒷 세대의 시 속으로 내면화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참고문헌
▷ 경남·부산지역문학회(2003), 지역문학 발굴자료 불별, 지역문학연구 8집
▷ 김문기(1982), 한국문학의 갈래, 한국문학 연구 입문, 지식산업사
▷ 구인환·우한용·박인기·최병우(2004), 문학교육론 4판, 삼지원
▷ 권영민 편저(1995), 한국문학50년, 문학사상사
▷ 박태일(2001), 지역시의 발견과 연구 - 경남·부산지역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국시학연구5집, 한국시학회
▷ 조동일,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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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07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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