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가 활발했던 나라와 시대는 어김없이 일반 역사의 부흥기였다. 그러나 선교의 열기가 식고, 구령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서 그 나라의 역사도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선교역사를 살피는 것은 미래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저자는 WCC 운동에 관해 상당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해서 에큐메닉 운동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특히 WCC라는 거대한 몸집의 신학 앞에서 우리 개혁주의 신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바르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저자를 통해서 올바른 성경관과 교회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신학의 혼돈과 더불어 물량주의가 판치는 한국교회 속에서, 선교 또한 물량주의로 흐르고 있다. 어느 지역에 몇 명의 선교사를 보냈는가를 자랑하고, 단기선교의 횟수를 자랑하고 있는 현실은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열매 맺기까지는, 산모가 아이를 잉태하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겪는 고통과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선교에고 이런 자세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교회는 그저 물량주의와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 선교를 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저자는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시대 신학의 최후의 보루로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WCC와 같은 신학의 오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파수꾼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저자의 책은 이 시대 선교에 대한 무한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WCC 한국총회를 앞두고 있는 현 실정에 참으로 時宜適切(시의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선교에 대한 수십 종의 책들이 있지만 저자의 책은 선교를 준비하고 선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선교에 있어서 교과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독자에게 자세히 제공하고 있으며, 독자가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성경적이며 올바른 개혁주의 신학의 토대위에서 성경적 선교를 할 수 있도록 길잡이로서 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적용
선교를 말할 때 꼭 언급해야 하는 것이 있다. 선교를 함에 있어 사람도 필요하고, 재정도 필요하고,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선교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선교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선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세계 1.2위를 차지할 만큼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선교역사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에큐메닉 신학의 도전이다. 이 에큐메닉의 신학은 큰 포용력이 있어 여러 종교를 끌어안는 힘이 있다. 에큐메닉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일치와 단결이다. WCC 1차대회에서 저들이 표방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연합의 필요성”과 “교회 연합을 통한 선교사명의 수행”이라는 타이틀은 충분한 호소력이 있다. 이 운동은 관용과 포용이라는 미명하에 예수를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과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를 주창하므로 타당성 있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그들은 성도와 교회의 경건과 순결, 구령과 선교보다는 사회, 정치적 이슈와 현안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사회의 개혁과 변혁을 부르짖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파간의 교리적 불일치성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담한 단체들 중에는 로마 카톨릭을 위시하여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를 믿지 않는 단체들도 많다. 행위적 구원을 가르치고, 유일한 구원자요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침례 또는 세례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는 이단적인 교리들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함께 가담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교리적 이단성과 상이한 교리적 차이를 무시하고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창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하게 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기독교적 바벨탑을 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연합이 정확이 무엇인지 교리적인 진술이 명확하지 못함으로 이후의 연합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현대의 혼탁한 신학 속에서 올바른 선교의 지침을 마련하여 올바른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학이 필요하다. 자유주의와 WCC와 같은 혼탁한 기독교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신학만이 올바른 대안이며, 이 땅의 기독교를 바르게 세워주는 길잡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위에서 선교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이 지상 최대의 위임 명령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외국 땅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고 있다. 21세기의 세계 선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며, 누가 담당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세계의 이목은 한국 교회를 향하고 있고, 많은 선교 전문가들도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의 큰 몫을 감당해야 할 것을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목회와 세계선교 사역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목회와 세계 선교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서 우리의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들을 예수의 제자, 즉 지도자가 되도록 계발하고, 다시 현지 지도자들을 그들의 족속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며 지도자를 세워서 교회를 개척하여, 그들의 족속을 복음화 할 뿐 아니라 눈을 들어 밭을 보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세계 선교에도 동참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영적인 흐름들이 우리의 문화와 삶을 정복해 나가고 있는 이때에, 김성태 교수의 [현대선교학총론]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바로 그러한 도도한 영적 흐름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거기에 맞는 대책을 간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복음에서 소외된 6천 개의 종족과 남은 우리 가족들, 지역의 많은 불신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뜨거운 부르심을 듣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WCC 운동에 관해 상당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해서 에큐메닉 운동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특히 WCC라는 거대한 몸집의 신학 앞에서 우리 개혁주의 신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바르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저자를 통해서 올바른 성경관과 교회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신학의 혼돈과 더불어 물량주의가 판치는 한국교회 속에서, 선교 또한 물량주의로 흐르고 있다. 어느 지역에 몇 명의 선교사를 보냈는가를 자랑하고, 단기선교의 횟수를 자랑하고 있는 현실은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열매 맺기까지는, 산모가 아이를 잉태하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겪는 고통과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선교에고 이런 자세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교회는 그저 물량주의와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 선교를 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저자는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시대 신학의 최후의 보루로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WCC와 같은 신학의 오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파수꾼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저자의 책은 이 시대 선교에 대한 무한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WCC 한국총회를 앞두고 있는 현 실정에 참으로 時宜適切(시의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선교에 대한 수십 종의 책들이 있지만 저자의 책은 선교를 준비하고 선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선교에 있어서 교과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독자에게 자세히 제공하고 있으며, 독자가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성경적이며 올바른 개혁주의 신학의 토대위에서 성경적 선교를 할 수 있도록 길잡이로서 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적용
선교를 말할 때 꼭 언급해야 하는 것이 있다. 선교를 함에 있어 사람도 필요하고, 재정도 필요하고,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선교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선교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선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세계 1.2위를 차지할 만큼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선교역사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에큐메닉 신학의 도전이다. 이 에큐메닉의 신학은 큰 포용력이 있어 여러 종교를 끌어안는 힘이 있다. 에큐메닉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일치와 단결이다. WCC 1차대회에서 저들이 표방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연합의 필요성”과 “교회 연합을 통한 선교사명의 수행”이라는 타이틀은 충분한 호소력이 있다. 이 운동은 관용과 포용이라는 미명하에 예수를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과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를 주창하므로 타당성 있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그들은 성도와 교회의 경건과 순결, 구령과 선교보다는 사회, 정치적 이슈와 현안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사회의 개혁과 변혁을 부르짖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파간의 교리적 불일치성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담한 단체들 중에는 로마 카톨릭을 위시하여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를 믿지 않는 단체들도 많다. 행위적 구원을 가르치고, 유일한 구원자요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침례 또는 세례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는 이단적인 교리들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함께 가담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교리적 이단성과 상이한 교리적 차이를 무시하고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창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하게 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기독교적 바벨탑을 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연합이 정확이 무엇인지 교리적인 진술이 명확하지 못함으로 이후의 연합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현대의 혼탁한 신학 속에서 올바른 선교의 지침을 마련하여 올바른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학이 필요하다. 자유주의와 WCC와 같은 혼탁한 기독교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신학만이 올바른 대안이며, 이 땅의 기독교를 바르게 세워주는 길잡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위에서 선교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이 지상 최대의 위임 명령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외국 땅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고 있다. 21세기의 세계 선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며, 누가 담당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세계의 이목은 한국 교회를 향하고 있고, 많은 선교 전문가들도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의 큰 몫을 감당해야 할 것을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목회와 세계선교 사역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목회와 세계 선교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서 우리의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들을 예수의 제자, 즉 지도자가 되도록 계발하고, 다시 현지 지도자들을 그들의 족속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며 지도자를 세워서 교회를 개척하여, 그들의 족속을 복음화 할 뿐 아니라 눈을 들어 밭을 보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세계 선교에도 동참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영적인 흐름들이 우리의 문화와 삶을 정복해 나가고 있는 이때에, 김성태 교수의 [현대선교학총론]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바로 그러한 도도한 영적 흐름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거기에 맞는 대책을 간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복음에서 소외된 6천 개의 종족과 남은 우리 가족들, 지역의 많은 불신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뜨거운 부르심을 듣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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