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 정의란 무엇인가 여러 견해
본론
1. 옳은 일하기
2. 최대행복원칙 공리주의
3. 우리는 우리자신을 소유 하는가 ?
4. 대리인 고용하기 시장과 도덕
5. 중요한 동기다 이마누엘 칸트
6. 평등옹호 존 롤스
7. 소수집단 우대 정책 논쟁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0. 정의와 공동선
결론 한국의 정의란 무엇인가?
1. 정의란 무엇인가 여러 견해
본론
1. 옳은 일하기
2. 최대행복원칙 공리주의
3. 우리는 우리자신을 소유 하는가 ?
4. 대리인 고용하기 시장과 도덕
5. 중요한 동기다 이마누엘 칸트
6. 평등옹호 존 롤스
7. 소수집단 우대 정책 논쟁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0. 정의와 공동선
결론 한국의 정의란 무엇인가?
본문내용
는 관념 속에서 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단어가 바로 정의이다. 과거 성리학적 명분 사회에서 만 쓰였던 도덕과 명분은 국제사회에서 널리 쓰이고 그 가장 핵심적 가치가 바로 정의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대의명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고 세계평화를 적극적으로 위협한다는 명분이었다. 그 명분의 아래 미국적 정의의 깃발을 끼고, 전쟁을 수행해 나갔다. 미국적 판단 미국적 정의는 그렇게 세상을 영향을 끼쳤다. 종국적으로 세계를 재편하는데 정의가 쓰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도덕적인 힘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였다. 한국의 군부독재 30년 동안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도덕적인 국민, 도덕적 가치의 핵심인 바로 정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하고 부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싸웠고,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의라는 가치를 잊어버렸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 경제논리가 수입해 들어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 눈을 감은 채 현실과의 타협을 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도덕적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정의를 지탱해왔던 혹은 도덕을 구성해 왔던 기반들이 하나 둘씩 무너져 갔기 때문이다. 맹자의 말 중에서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경제적 기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국은 그동안 유교자본주의를 통하여, 도덕적 가치를 확립하고, 정의를 세워왔다. 그러나 한국은 IMF를 맞이한 이후 유교자본주의는 붕괴되었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덕과 정의는 가장 힘없고, 무가치해졌다.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지, 도덕이나 인륜 혹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 뿐만 아니라 집단 혹은 국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되었다. 생존이 당위적 명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처절한 경쟁이 당연해져버리자, 그동안 우리사회가 가졌던 공익적 가치는 잊거나, 불편한 마음으로 그것을 어겨야 만 했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에게나 딜레마를 가져왔고, 아예 그 가치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고, 성공의 문턱에 가까이 왔다. 그러면서 사회적 자본은 사라지고, 개인의 사익추구는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사람들에게 정의라는 것은 불편하고, 자신의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에겐 정의란 자신의 생존을 뜻하는 말이었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우리의 유교자본주의는 패퇴했고, 천민자본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과거 군부 독재자들이 한국을 총칼로 지배했다면, 시장의 독재자들은 돈으로 한국을 지배한다. 경쟁과 경제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군림한다. 효율성을 앞세워, 많은 사람들을 일터에서 내쫓고, 모든 것을 경제학적 논리로 바꾼다.
모 그룹회장은 모든 대학생들에게 회계학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하고, 어떤 기업관계자들은 대학에서 기업에 필요한 학문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성토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조차 성과에 매몰되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한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조차 교수를 성과주의로 평가하겠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성과와 효율로 재단할 수 있는가 ? 계량화 될 수 없는 방면이 많은데 그 모든 것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사실 결과를 내놓기 전에 많은 지식 암묵지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진정한 지식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이야기 하는 것들은 인문적이거나 혹은 사회적 가치의 재생산이다. 그러한 가치들에 대해서 우리는 계량화 할 수 없다.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마음은 경제학적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당대인들과의 호흡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그 필요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고민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짜 지식인 것이다.
우리의 기업들이 무한 경쟁 혹은 속도전을 외치고, 양적팽창주의를 말하는 동안, 미국과 일본 유럽의 기업인들은 인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스티븐 잡스의 원천적 지식은 인도에 가서 얻은 선불교 지식이 그의 원천적 지식이라 할 수 있다. 깊은 내면의 지식과 성찰은 자신의 새로운 정의를 만들었고, 그 정의는 세상을 관통하는 새로운 리더로써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기업가들의 정의는 아직도 성장이다. 그저 괴물처럼 먹고 마시고 크는 거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옆의 이웃을 돌보는 것도 아니고,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정의란 살아있던 시절이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정의는 살아있었고, 타자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과연 정의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존재들이 엄연히 한국 땅에 존재하는 한 정의는 없다. 어느 모 인터넷 강사는 한국에서 김구가 총을 맞고 죽은 그 순간부터 정의를 말하는 순간 팔푼이가 된다고 하였다. 그 것은 한국의 정의의 위치가 어느 정도임을 우리에게 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정의는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 그건 정말 쉽지 않다. 많은 학문을 하는 학자들 정치인들 풀어내지 못한 문제이다. 현실 속에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교감 또는 국가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방안은 경제적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당위이자 전제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산과 분배에 있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한 분배의 불공정성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적 민주화가 국가체계 전반에서 일어나야 한다. 즉 분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국가의 배분적 정의를 세우고,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정치력 복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행이 이루어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체제가 이룩되어야 한다. 그 틀을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 나갈 때, 한국의 새로운 이념 혹은 이데올로기가 형성될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대의명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고 세계평화를 적극적으로 위협한다는 명분이었다. 그 명분의 아래 미국적 정의의 깃발을 끼고, 전쟁을 수행해 나갔다. 미국적 판단 미국적 정의는 그렇게 세상을 영향을 끼쳤다. 종국적으로 세계를 재편하는데 정의가 쓰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도덕적인 힘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였다. 한국의 군부독재 30년 동안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도덕적인 국민, 도덕적 가치의 핵심인 바로 정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하고 부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싸웠고,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의라는 가치를 잊어버렸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 경제논리가 수입해 들어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 눈을 감은 채 현실과의 타협을 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도덕적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정의를 지탱해왔던 혹은 도덕을 구성해 왔던 기반들이 하나 둘씩 무너져 갔기 때문이다. 맹자의 말 중에서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경제적 기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국은 그동안 유교자본주의를 통하여, 도덕적 가치를 확립하고, 정의를 세워왔다. 그러나 한국은 IMF를 맞이한 이후 유교자본주의는 붕괴되었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덕과 정의는 가장 힘없고, 무가치해졌다.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지, 도덕이나 인륜 혹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 뿐만 아니라 집단 혹은 국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되었다. 생존이 당위적 명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처절한 경쟁이 당연해져버리자, 그동안 우리사회가 가졌던 공익적 가치는 잊거나, 불편한 마음으로 그것을 어겨야 만 했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에게나 딜레마를 가져왔고, 아예 그 가치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고, 성공의 문턱에 가까이 왔다. 그러면서 사회적 자본은 사라지고, 개인의 사익추구는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사람들에게 정의라는 것은 불편하고, 자신의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에겐 정의란 자신의 생존을 뜻하는 말이었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우리의 유교자본주의는 패퇴했고, 천민자본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과거 군부 독재자들이 한국을 총칼로 지배했다면, 시장의 독재자들은 돈으로 한국을 지배한다. 경쟁과 경제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군림한다. 효율성을 앞세워, 많은 사람들을 일터에서 내쫓고, 모든 것을 경제학적 논리로 바꾼다.
모 그룹회장은 모든 대학생들에게 회계학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하고, 어떤 기업관계자들은 대학에서 기업에 필요한 학문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성토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조차 성과에 매몰되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한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조차 교수를 성과주의로 평가하겠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성과와 효율로 재단할 수 있는가 ? 계량화 될 수 없는 방면이 많은데 그 모든 것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사실 결과를 내놓기 전에 많은 지식 암묵지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진정한 지식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이야기 하는 것들은 인문적이거나 혹은 사회적 가치의 재생산이다. 그러한 가치들에 대해서 우리는 계량화 할 수 없다.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마음은 경제학적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당대인들과의 호흡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그 필요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고민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짜 지식인 것이다.
우리의 기업들이 무한 경쟁 혹은 속도전을 외치고, 양적팽창주의를 말하는 동안, 미국과 일본 유럽의 기업인들은 인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스티븐 잡스의 원천적 지식은 인도에 가서 얻은 선불교 지식이 그의 원천적 지식이라 할 수 있다. 깊은 내면의 지식과 성찰은 자신의 새로운 정의를 만들었고, 그 정의는 세상을 관통하는 새로운 리더로써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기업가들의 정의는 아직도 성장이다. 그저 괴물처럼 먹고 마시고 크는 거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옆의 이웃을 돌보는 것도 아니고,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정의란 살아있던 시절이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정의는 살아있었고, 타자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과연 정의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존재들이 엄연히 한국 땅에 존재하는 한 정의는 없다. 어느 모 인터넷 강사는 한국에서 김구가 총을 맞고 죽은 그 순간부터 정의를 말하는 순간 팔푼이가 된다고 하였다. 그 것은 한국의 정의의 위치가 어느 정도임을 우리에게 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정의는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 그건 정말 쉽지 않다. 많은 학문을 하는 학자들 정치인들 풀어내지 못한 문제이다. 현실 속에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교감 또는 국가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방안은 경제적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당위이자 전제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산과 분배에 있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한 분배의 불공정성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적 민주화가 국가체계 전반에서 일어나야 한다. 즉 분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국가의 배분적 정의를 세우고,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정치력 복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행이 이루어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체제가 이룩되어야 한다. 그 틀을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 나갈 때, 한국의 새로운 이념 혹은 이데올로기가 형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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