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그리스도교]기독교(그리스도교)의 권위와 이성,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철학, 기독교(그리스도교)의 발전, 기독교(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세속화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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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그리스도교]기독교(그리스도교)의 권위와 이성,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철학, 기독교(그리스도교)의 발전, 기독교(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세속화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기독교(그리스도교)의 권위와 이성

Ⅲ.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철학

Ⅳ. 기독교(그리스도교)의 발전

Ⅴ. 기독교(그리스도교)의 하나님

Ⅵ.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1. 이 교리의 진술
2.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명
1) 구약의 증거
2) 신약의 증거
3)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Ⅶ.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세속화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나님
과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영이라고 칭하는 신적 영향력이라는 그릇된 주장을 한다.
Ⅶ.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세속화
세속화 과정 자체는 무신론적 내지 탈종교화 운동이 아니다. 세속화 과정 자체는 독일의 세속화 신학자 고가르텐 이래 밴 퍼어센이 해석하는 바와 같이 “생활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하는 창세기 말씀의 실현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과 부패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으신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 형상성의 부분적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시고, 만물의 영장의 직분을 그대로 위임하시고, 자연과 역사를 기술개발을 통해서 정복하게 하셨다. 현재 우리는 콕스가 말한 바와 같이 기계기술사회에 진입해 있다.
세속화 과정 자체는 콕스와 밴 퍼어센이 밝힌 바와 같이 신화론적 세계관이 종말을 고하는 계몽과 해방의 과정이다. 이 신화론적 세계상의 비신화론화는 창세기의 창조신앙이 증언하는 것 같이 하나님, 세계, 인간을 명확히 구분해 주므로 성서적 세계표상, 비신화론적 세계관과 일치하게 된다. 세속화 과정 자체가 이처럼 성서적 창조신앙과 일치하며, 세속화과정의 비신화론적 세계이해가 성서의 창조에 의한 세계이해에 일치한다면 콕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세속도시의 세대를 종교 없는 세대로 간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속도시인은 신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탈종교 내지 무신론적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화를 현대인간에게 그의 도구적 이성을 통해 선사하신 세속 속에 계시는 신에게 감사와 경배의 축제를 해야만 한다.
세속화와 세속주의는 구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세속주의는 이 세상을 절대화하는 내재주의적 세계관을 말하며, 이러한 세속주의의 두 가지 유형이 도오슨이 밝혀낸 전체주의적 이념과 자유주의적 이념들이다. 세속화는 기독교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에게 내려진 이 세상에 대한 청지기적인 관리의 사명을 수행하는 역사적 과정을 말한다.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있는 현대 세속인의 정신적 비극은 그들 실존의 깊이요, 의미 차원이요, 의미 원천을 떠난 데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세속도시는 신이 퇴각한 인간만의 도시가 아니다.
현대문명의 위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리자적 관계가 자녀에 대한 인간의 예속관계로 변모한 데 존재한다. 인류의 문명은 진보하나, 인류의 정신과 영성이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원죄성 -권력의지와 자율성-이 오히려 문명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지해야 한다.
현대인은 과학기술주의가 역사의 해방, 역사의 구속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허위와 인본주의적 메시아 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역사의 이상향은 인간의 기계기술주의를 통한 역사건설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말론적 역사 구속에서만 실현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독교적 종말론은 그러므로 이러한 자연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상실하고 예속관계 속에 있으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자율화되어 자신의 인간성, 곧 창조적 동일성을 상실한 인간과 그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을 말해 주고 있다.
Ⅷ. 결론
신앙이라는 현상은 지극히 광범위한 현상이어서 신앙이 없는 사람, 신앙이 없는 시대, 신앙이 없는 나라는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철학자들, 그리고 키케로와 같은 기독교 이전의 옛 철학자들은 모두 모든 인간과 민족에게는 경외 내지 숭배하는 신들이 있어서 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였다. 아시아에서 여러분은 이러한 현상을 직접 목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종의 합의\"(consensus gentium)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다양한 종교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으며 어떤 언어든지 간에 \"하나님\" 혹은 \"신(神)\"이라는 말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도 근거가 된다.
우리가 여기서 개괄적으로 종교 내지는 종교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이러한 모든 사실과 현상을 포괄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종교라는 말의 라틴어어원을 키케로가 기술(記述)한 바에 따라 살펴보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의미는, ligare(=\"묶다“)라는 말에서 도출된 것으로 ”다시 연결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 의미는, legere(=\"읽다“)라는 말에서 도출된 것으로 \"반복하여 정확하게 읽는 것 내지는 보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문제가 된다. 그것은 종교 내지는 종교성 때문에 인간은 서로 결합되기도 하며 서로 구별되거나 분리되기도 하기 때문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적대감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과 양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대단히 민감한 영역인 바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란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인간은 신앙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가 쉽고 그래서 또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나님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환난 중에서도 피난처가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인데 내가 여러 번 말한 대로 오직 진심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되기도 하고 우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모든 인간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그가 무엇을 또는 누구를 믿는가, 그의 마음이 어디에 애착을 느끼는가,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또 무엇인지는 이렇게 하여 결정된다.
참고문헌
김광식 편저(1984), 기독교신학개론, 서울 : 연세대학교출판부
기독교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1993), 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 기독교문사
이승구(2005),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 SFC
정경옥(1999), 기독교의 원리, 서울 :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정성구(1979), 기독교와 문화, 서울 : 총신대학출판부
후스토 L. 곤잘레스, 이형기·차종순 역(1995), 기독교 사상사(III), 서울 : 한국 장로교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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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3.24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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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59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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