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쾌락주의][실존주의][흥부전][성서][이원론적 해석]이원론 이론, 이원론을 주장한 철학자, 이원론과 쾌락주의, 이원론과 실존주의, 흥부전의 이원론적 해석, 성서에 나타난 여성상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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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원론][쾌락주의][실존주의][흥부전][성서][이원론적 해석]이원론 이론, 이원론을 주장한 철학자, 이원론과 쾌락주의, 이원론과 실존주의, 흥부전의 이원론적 해석, 성서에 나타난 여성상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이원론의 이론
1. 원소론
2. 원자론
1) 기계론적 유물론
2) 원자론적 인식론

Ⅲ. 이원론을 주장한 철학자
1. 플라톤
2. 데카르트(1596-1650)

Ⅳ. 이원론과 쾌락주의

Ⅴ. 이원론과 실존주의

Ⅵ. 흥부전의 이원론적 해석
1. 현실계
1) 흥부, 놀부의 성격
2) 선악의 동기, 결과
2. 초현실계
1) 제비의 의미
2) 박의 의미

Ⅶ. 성서에 나타난 여성상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

참고문헌

본문내용

적 혼란을 걱정하며 여인들의 은사 활용이 자칫 또 하나의 무질서 적인 형태로 비쳐지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바울이 여인들에게 수건을 쓰라는 것은 그들의 은사를 무시하거나 여자들의 교회에서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교회에서 그들이 지도자적인 위치에서 은사를 활용할 지라도 항상 남편의 아내로서 창조의 질서를 순종하는 모습을 견지함으로 교회 내의 질서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인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는 겸손의 모양을 유지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바울은 이들 여자들이 자신의 자유의 복음을 잘못 오해해서 예배 시에 수건을 벗은 머리로 기도하고 예언하므로 써 자신들의 자유로운 신분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을 찬성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난해한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진술은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해석은 교회의 모임에 임재하는 천사들이 여자의 벗은 머리로 말미암아 성적으로 자극을 받지 않도록 그녀는 한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표시를 지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이론은 창6:2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악한 천사들’이라는 유대적 사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사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분께 충성하는 남자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 번째 해석은 모르나 후커(M.D. Hooker)의 견해이다. 그녀의 두 가지 논거는 첫째로, 바울에 의하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에 예배 때에 그의 머리를 가릴 필요가 없지만 반면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며 예배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는 남자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에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머리가 가리어져야 하는 것은 그녀가 남자의 임재 가운데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천사들의 임재 속에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이 임재하는 자리에서는 남자의 영광은 감추어져야 한다.”이에 덧붙여 후커는 여자가 수건을 써야 할 또 다른 신학적 이유를 끌어댄다. 그것은 여자들이 기도와 예언을 공예배 시에 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를 필요로 하는데 여자가 만일 벗은 머리로 기도하고 예언하면 자신에게 수치가 되지만, 이제는 머리에 수건을 씀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권세 아래 있음을 보여주게 되고 또 기도하고 예언할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후커에 따르면 그녀의 머리에 쓴 수건은 이 점에서 전에 금지된 것들을 하도록 여자에게 주어진 새로운 권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고전 14장 전체는 고린도 회중이 빠져든 혼란의 문제를 다루는데 그들이 겪은 혼란은 주로 방언의 은사를 무질서하게 사용하는데서 생겨났다. 바울은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관점에서 방언 보다 예언이 더 유익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린도인들에게 예언할 것을 권면하며 그들에게 예언을 질서정연 하게 하는 방향과 지침들을 제시한다. 29절에서는 예언의 은사들을 사용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설명하고 있고 30~33절은 예언자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34~35절 이전 문맥의 요지라면 우리는 본문의 위치가 결코 후대의 삽입 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쉽게 이르게 되며 오히려 바울의 계속되는 질서의 문제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헐리는 이들이 교회의 일반적인 여성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바울이 여인들에게 하는 권면은 예언을 토론하고 평가하는 남자들의 권위 문제에 끼어드는 행위를 주의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전 7장에서 공동체의 모든 여자들이 결혼 하지는 않았고 또 그들의 배우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자들은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또한 여자들이 집에 가서 예언의 내용에 대해 물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남편들’ 이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여자들에게 잠잠 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황에 적용 되는 의미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초대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말씀을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본문을 여성들에게 권면하는 일반적인 상황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바울이 11장 5절에서 여자들의 기도와 예언의 말씀을 인정한 사실과 모순이 되는 것이다. 바울의 일관된 입장은 분명 여자들에게 계시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결코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예언의 능력이 주어졌을 때에 그들은 공중 앞에서 선포해야 한다. 다만 자유분방한 태도로 예언의 메시지를 토론하고 평가하는 일에 끼어드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바울의 주관 심이 여자들의 행동이 아니라 초대 교회 공동체의 보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초대 공동체가 질서와 풍기를 문란 시키며 주신 제의, 밀의 제의, 근동 제의의 하나로 오해 받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바울이 제시하는 공적인 자리에서 아내들이 잠잠해야 할 이유는 교회 내부적으로는 질서의 차원에서 공예 배를 어지럽힐 정도의 토론과 평가를 자제시키기 위함이며 외부적으로는 여인들의 종용함을 통해 주변의 이방 제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에서의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여성 이해에 있어 그가 여자들에게 잠잠 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를 더 이상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창조의 질서와 이방 종교의 제의를 의식한 절제의 모습을 다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함으로 교회 내의 전체적인 질서를 올바르게 유지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바울의 의도를 단순하고 겉으로 드러난 의미만을 취해 교회 내에서의 여성들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은 사실 바울의 의도를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 게르하르트 로핑크, 허혁 역(1995), 당신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경북왜관 : 분도출판사
▷ 유광수(1993), 흥부전연구, 계명문화사
▷ 앤소니 케니, 이영주 역(2003), 서양철학사(문예신서 230), 동문선
▷ 최민홍, 플라톤전집, 상서각
▷ 폴키에, 김원옥 역(1984), 실존주의, 탐구당
▷ 한국철학연구회(1989), 철학대사전,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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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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