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연출의 일반적인 특성들
1) 연출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나?
2) 문화적, 미학적 문맥 안에서의 연출의 위치
3) 이 연출에서 당신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렬하거나 약하거나 지겨운 순간들은?
4) 어떤 이야기를 극은 말하고 있는지 요약해 보라.
5) 텍스트에는 어떤 애매함들이 있으며, 연출에서는 어떤 명료함이 있는가?
6) 배우와 무대에 의해 플롯은 어떻게 구축되었는가?
7) 이 연출에 따르면, 텍스트는 어떤 극장르인가?
8) 연출의 다른 가능했던 선택들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2. 무대술
1) 도시, 건축, 무대, 연기 등을 위한 공간들
2) 관객의 공간과 연기 공간의 관계
3) 공간구조화의 원칙들
3. 조명시스템
4. 오브제들
5. 의상, 분장, 가면
6. 배우들의 퍼포먼스
7. 음악, 음향, 침묵의 기능
8. 공연의 리듬
9. 관객
1) 연출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나?
2) 문화적, 미학적 문맥 안에서의 연출의 위치
3) 이 연출에서 당신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렬하거나 약하거나 지겨운 순간들은?
4) 어떤 이야기를 극은 말하고 있는지 요약해 보라.
5) 텍스트에는 어떤 애매함들이 있으며, 연출에서는 어떤 명료함이 있는가?
6) 배우와 무대에 의해 플롯은 어떻게 구축되었는가?
7) 이 연출에 따르면, 텍스트는 어떤 극장르인가?
8) 연출의 다른 가능했던 선택들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2. 무대술
1) 도시, 건축, 무대, 연기 등을 위한 공간들
2) 관객의 공간과 연기 공간의 관계
3) 공간구조화의 원칙들
3. 조명시스템
4. 오브제들
5. 의상, 분장, 가면
6. 배우들의 퍼포먼스
7. 음악, 음향, 침묵의 기능
8. 공연의 리듬
9. 관객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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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사자야 놀자'에 대한 평가를 어떤 기자가 쓴 글을 봤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북청사자야 놀자'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 얘기를 보고 미리 필요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연극을 보러갔는데 연극을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배경지식에는 호원설화, 처용설화, 오광대놀이, 강령탈춤, 봉산탈춤, 북청사자춤, 양주별산대놀이, 오태석 선생님의 출생지 등이 있었다. 이들을 알아야 '북청사자야 놀자'에 대한 올바른 감상을 할 수 있었다.
호원설화와 처용설화는 이 연극의 내용에 부분적으로 들어있었고 오광대놀이를 비롯한 전통놀이와 춤 등이 무대 위에서 행해졌다. 이를 모르면 단지 어안이 벙벙하게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오태석 선생님의 고향이 북청이고 북청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주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4)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기술해 보라.
-관객들은 대부분 ‘북청사자야 놀자’의 새로움에 놀랬고 어떤 사람은 갈피를 못잡기도 했으며 연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먼저 나 같은 경우엔 연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배우의 관객에 대한 물음에 동화하여 극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배우가 관객석으로 나와 관객의 손을 잡기도 하면서 퇴장하였는데 이것은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을 허무는 행위였고 이를 통해 연극 속으로 동참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연극을 내용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진행을 따라가고 연극이 주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자 했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연극의 볼거리에 주목하고 즐거워했다. 북청사자춤이나 오광대춤, 봉산탈춤 같은 우리 전통춤에 신기해했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연극에 대해 배경지식 없이 온 일부 20대들은 하나의 스토리 중심의 진행이 아닌, 호원설화, 처용설화 등이 입혀지고 비약이 있는 이번 연극을 잘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또 관객석 중앙 앞자리에 앉은 40~50대 분들은 우리것의 흥과 연극의 참신함에 만족함을 느끼신 것 같았다.
5) 의미의 생산에 있어서 관객인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라 느꼈는가. 제공된 공연작품 이해는 한 가지인가 아니면 여러 가지인가?
-연극의 의미 생산에 있어 관객인 나는 수용의 대상이다. 연출자가 어떤 부분에 대해 특정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수용의 대상인 내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나에게서의 그 의미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그 의미부여 부분에 대해 연출자가 특정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것에 입각하여 '북청사자야 놀자'에 대해 말해보면 관객의 반응이 가지각색이라는 데서 연극의 의미가 여러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통공연의 즐거움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호원설화가 중심이 되어 인간 남편을 위해 희생한 호랑이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며, 짐승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인간의 잔혹함 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여 그 사람만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6) 어떤 이미지, 무대, 주제들이 던져졌으며 당신에게 남는 것은?
-'북청사자야 놀자'에서 가장 중심이 된 이야기는 호원설화였다고 생각한다. 호원설화는 신라 시대에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가 김현과 부부인연을 맺은 뒤 그를 위해 죽음을 택했다는 설화이다. 이 연극에서는 그 호랑이가 사당이었고 부부인연을 맺은 사람은 완보였다. 사당은 인간세계로 내려오고 북청사자춤을 추는 완보와 인연을 맺은 뒤, 완보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호랑이 혹은 짐승이 인간을 위하는 이미지를 받았으며 나에게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아내의 사랑이 여운 깊게 남았다.
그리고 또 다른 설화가 '북청사자야 놀자'에 스며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처용설화'이다. 처용설화는 다음과 같다. 헌강왕이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해 용왕의 소행이라 생각한 왕은 용왕을 위하여 절을 짓도록 명령하니 곧 용왕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다. 그 아들 중 하나가 처용이었다. 헌강왕이 그를 아름다운 아내와 짝지어 주었는데, 어느날 역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아내를 범하였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이 이를 보고 처용가의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처용이 역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 것에 탄복한 역신은 그에 감격하여,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북청사자야 놀자'에서는 사당을 탐한 역귀가 완보에게 탐복해 얼씬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는 함경도를 가버리는데 완보는 함경도를 걱정하여 이를 저지하려 한다. 여기서 함경도에 있는 북청에 대한 오태석 선생님의 그리움과 통일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게는 분단이라는 현실이 태어날 때부터 있어 북한에 대한 그리움을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오태석 선생님의 열망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7) 연출은 어떻게 관객의 집중력을 움직였는가?(이 작품의 서스펜스의 요체는 어디에?)
-나는 이 작품의 서스펜스의 요체는 신선함과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전통극을 찾기가 힘든 오늘날에 다양한 전통춤과 음악, 그리고 설화를 한 번의 기회를 통해 모두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이러한 연출은 전통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관객이 빠져들게 했다. 새로운 이야기, 설화, 전통춤, 오늘날의 방역 등이 무대 위에 구현될 때마다 신선함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들였고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전통 음악으로 한층 더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그리고 비약이야말로 이 연극에서 관객의 집중력을 움직이는 최고의 진행법이었다. 일반 연극에 익숙해진 우리는 쉽게 이해되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연극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인물의 속마음을 배우가 말로써 관객에게만 이야기하는 방식 등이 연극에서 자주 사용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북청사자야 놀자'는 그런 필요이상의 설명을 과감히 생략했고 어떤 경우엔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의 세부내용도 생략해버렸다. 이것은 관객이 무대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게 꽁꽁 붙잡았고 몰입 이상의 상상력 또한 발휘하게 했다.
-'북청사자야 놀자'에 대한 평가를 어떤 기자가 쓴 글을 봤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북청사자야 놀자'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 얘기를 보고 미리 필요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연극을 보러갔는데 연극을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배경지식에는 호원설화, 처용설화, 오광대놀이, 강령탈춤, 봉산탈춤, 북청사자춤, 양주별산대놀이, 오태석 선생님의 출생지 등이 있었다. 이들을 알아야 '북청사자야 놀자'에 대한 올바른 감상을 할 수 있었다.
호원설화와 처용설화는 이 연극의 내용에 부분적으로 들어있었고 오광대놀이를 비롯한 전통놀이와 춤 등이 무대 위에서 행해졌다. 이를 모르면 단지 어안이 벙벙하게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오태석 선생님의 고향이 북청이고 북청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주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4)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기술해 보라.
-관객들은 대부분 ‘북청사자야 놀자’의 새로움에 놀랬고 어떤 사람은 갈피를 못잡기도 했으며 연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먼저 나 같은 경우엔 연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배우의 관객에 대한 물음에 동화하여 극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배우가 관객석으로 나와 관객의 손을 잡기도 하면서 퇴장하였는데 이것은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을 허무는 행위였고 이를 통해 연극 속으로 동참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연극을 내용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진행을 따라가고 연극이 주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자 했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연극의 볼거리에 주목하고 즐거워했다. 북청사자춤이나 오광대춤, 봉산탈춤 같은 우리 전통춤에 신기해했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연극에 대해 배경지식 없이 온 일부 20대들은 하나의 스토리 중심의 진행이 아닌, 호원설화, 처용설화 등이 입혀지고 비약이 있는 이번 연극을 잘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또 관객석 중앙 앞자리에 앉은 40~50대 분들은 우리것의 흥과 연극의 참신함에 만족함을 느끼신 것 같았다.
5) 의미의 생산에 있어서 관객인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라 느꼈는가. 제공된 공연작품 이해는 한 가지인가 아니면 여러 가지인가?
-연극의 의미 생산에 있어 관객인 나는 수용의 대상이다. 연출자가 어떤 부분에 대해 특정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수용의 대상인 내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나에게서의 그 의미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그 의미부여 부분에 대해 연출자가 특정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것에 입각하여 '북청사자야 놀자'에 대해 말해보면 관객의 반응이 가지각색이라는 데서 연극의 의미가 여러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통공연의 즐거움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호원설화가 중심이 되어 인간 남편을 위해 희생한 호랑이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며, 짐승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인간의 잔혹함 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여 그 사람만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6) 어떤 이미지, 무대, 주제들이 던져졌으며 당신에게 남는 것은?
-'북청사자야 놀자'에서 가장 중심이 된 이야기는 호원설화였다고 생각한다. 호원설화는 신라 시대에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가 김현과 부부인연을 맺은 뒤 그를 위해 죽음을 택했다는 설화이다. 이 연극에서는 그 호랑이가 사당이었고 부부인연을 맺은 사람은 완보였다. 사당은 인간세계로 내려오고 북청사자춤을 추는 완보와 인연을 맺은 뒤, 완보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호랑이 혹은 짐승이 인간을 위하는 이미지를 받았으며 나에게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아내의 사랑이 여운 깊게 남았다.
그리고 또 다른 설화가 '북청사자야 놀자'에 스며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처용설화'이다. 처용설화는 다음과 같다. 헌강왕이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해 용왕의 소행이라 생각한 왕은 용왕을 위하여 절을 짓도록 명령하니 곧 용왕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다. 그 아들 중 하나가 처용이었다. 헌강왕이 그를 아름다운 아내와 짝지어 주었는데, 어느날 역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아내를 범하였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이 이를 보고 처용가의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처용이 역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 것에 탄복한 역신은 그에 감격하여,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북청사자야 놀자'에서는 사당을 탐한 역귀가 완보에게 탐복해 얼씬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는 함경도를 가버리는데 완보는 함경도를 걱정하여 이를 저지하려 한다. 여기서 함경도에 있는 북청에 대한 오태석 선생님의 그리움과 통일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게는 분단이라는 현실이 태어날 때부터 있어 북한에 대한 그리움을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오태석 선생님의 열망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7) 연출은 어떻게 관객의 집중력을 움직였는가?(이 작품의 서스펜스의 요체는 어디에?)
-나는 이 작품의 서스펜스의 요체는 신선함과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전통극을 찾기가 힘든 오늘날에 다양한 전통춤과 음악, 그리고 설화를 한 번의 기회를 통해 모두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이러한 연출은 전통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관객이 빠져들게 했다. 새로운 이야기, 설화, 전통춤, 오늘날의 방역 등이 무대 위에 구현될 때마다 신선함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들였고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전통 음악으로 한층 더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그리고 비약이야말로 이 연극에서 관객의 집중력을 움직이는 최고의 진행법이었다. 일반 연극에 익숙해진 우리는 쉽게 이해되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연극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인물의 속마음을 배우가 말로써 관객에게만 이야기하는 방식 등이 연극에서 자주 사용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북청사자야 놀자'는 그런 필요이상의 설명을 과감히 생략했고 어떤 경우엔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의 세부내용도 생략해버렸다. 이것은 관객이 무대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게 꽁꽁 붙잡았고 몰입 이상의 상상력 또한 발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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