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고전적 기독교 윤리학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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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성 어거스틴
1. 하나님의 사랑으로서의 윤리
2. 진리추구
3. 기독교 신플라톤주의자
4. 윤리의 핵심

Ⅲ. 토마스 아퀴나스
1. 시대적 배경
2.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
3. 윤리학과 인간의 ‘텔로스’
4. 아퀴나스의 윤리학 정리

Ⅳ. 마르틴 루터 및 종교개혁자들
1. 자율적 이성에 대한 저항
2. 은혜의 윤리
3. 개인의 윤리
4. 칼빈주의적 수정

Ⅴ. 결론

본문내용

이다. 이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순종이 우리에게 최선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인간의 불완전성, 욕망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욕망이 추구하는 행복은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과 대립될 수도 있다.
2. 은혜의 윤리
‘공로문제’는 루터가 가톨릭교회와 결별하게 되는 핵심 사안이었다. 우리의 행위 통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순종의 태도를 촉진할 수 없다. 이들은 인간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루터는 율법의 기능을 무시 하지는 않았다. 루터는 죄를 억제하는 일반적 기능과 복음의 전주곡으로써의 신학적 혹은 구원적 기능을 인정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다. 하지만 율법만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은혜를 통해서만이 칭의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동기와 행동 모두가 항상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야하는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루터에 따르면, 신자들은 결국 ‘시물 유스투스 에트 페카토르(simul iustus et peccator)’, 즉 항상 죄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의인임을 깨닫는 경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덕은 옳은 행위를 통해 습득되는 습관이라는 아퀴나스와 다르게 루터에게 덕은 하나님이 믿음을 통해 주시는 새로운 본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매 순간 회개를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3. 개인의 윤리
근대에 오기까지 개인의 삶은 사회에 예속되어 있었다.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에게 윤리적 이상은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역할을 잘 감당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며, 공동체로부터 각자의 정체성을 부여받는 데 있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윤리가 개인 윤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종교 개혁이후 개인들은 직접 성서를 접할 수가 있었고, 개개인이 직접 구원의 신앙을 체험할 수가 있었다. 결국, 개인이 윤리의 주체가 되었다. 이렇게 주체가 된 개인은 율법의 영역과 은혜의 영역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는 국가의 통치권력 그리고 교회와 병행을 이룬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영역에서 각각의 목적을 잘 이해해야 한다. 세속영역에서는 법을 잘 받들고 위반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려 죄를 억제해야 하고, 은혜의 영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서를 선포해아 한다. 하지만 루터는 이러한 두 영역에 대한 가르침을 토대로 기독교 사회 윤리를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루터는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교육하는 개인적 차원에 주된 관심을 가졌다. 사회 질서의 ‘기독교화’가 아니라 개인적 체험이 관심사였다. 정치, 경제, 사회 차원의 삶에는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자율적 법칙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개인적 윤리의 영역과 사회 영역을 구분하였다.
4. 칼빈주의적 수정
칼빈은 루터의 모델을 좀 더 정교하고 다차원적 윤리로 승화시켰다. 그는 첫째, 윤리적 확장을 이루어 냈다. 루터의 율법의 일반적 용법과 신학적 용법을 수용하고 동시에 율법이 거룩한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친다는 용법을 첨가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자비에 대한 감사를 율법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표현해야한다. 성화를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함으로써 성숙하는 것으로 보는 개혁주의적 성화관의 토대를 마련했다. 둘째, 세속적 확장을 이루어냈다. 세속질서(자연법) 안에 있는 신법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진일보 시켰다. 칼빈은 하나님이 창조계와 인간의 마음 안에 합당한 질서를 촉진시키는 법을 두셨다는 루터의 견해에 동의하고 타락한 인간은 자연법의 다양한 측면을 각기 다른 정도로 분별한다고 덧붙였다. 칼빈은 결국 자연법과 신법의 내용이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자연법과 신법을 연결시킴으로써 칼빈주의자들은 더욱 강력한 사회 윤리를 만들어 냈고, 루터주의자들 보다 사회 변혁적 경향이 짙어졌다.
Ⅴ. 결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이론을 살펴볼만한 이유는, 이러한 고전적 기독교 윤리학 모델들이 바로 인간의 도덕적 열망에 대한 전형적인 기독교적 응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역사상의 지식적 유산으로써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올바른 윤리적 가치를 따져볼 수 있게 하는 대안적 모범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철학적 전통을 이었으며, 하나님은 지고의 선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완벽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덕의 완성이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재해석 해내었다. 인간 존재의 목적은 행복이며, 인간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만 이룰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인간 외에 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름). 그리고 이 행복은 하나님의 능동적인 사역을 통하여 산출된다.
마지막으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뜻은 인간 이성이 헤아릴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 한분만이 최선의 것을 아시니 그 길을 완벽하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최고의 윤리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스탠리 그랜츠 박사는 인간이 과연 스스로 윤리적 성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야하며, 철학적 전통을 비롯한 세상의 지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으로 살펴본 고전적 기독교 윤리학 모델에 관한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아래의 질문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적용질문
1. 루터주의에서는 삶의 매순간 이성적 성찰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 내 이성의 외침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2. 아브라함과 욥의 사례를 살펴볼 때, 그 과정은 고통이었으나 결과는 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결과만 ‘선’이라고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지고선’이라 칭할 수 있는가?
3.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전통의 영향을 받아 이성적인 기독교 접근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이 ‘이성’이 중심시 되는 현대 사회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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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2
  • 저작시기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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