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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죄][기독교에서의 죄][기독교]죄(기독교에서의 죄)의 성격,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이론,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참상,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고백, 죄(기독교에서의 죄)와 肉(육), 죄(기독교에서의 죄)와 망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성격
1. 구약에서
2. 신학에서

Ⅲ.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이론
1. 교만
2. 태만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태만
2)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태만으로서의 죄
3. 기만 - 거짓말하는 죄

Ⅳ.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참상
1. 원죄(original sin)
2. 자범죄(actual sin)
3. 특정한 범죄(special sin)

Ⅴ. 죄(기독교에서의 죄)의 고백

Ⅵ. 죄(기독교에서의 죄)와 肉(육)
1. 악덕과 열심으로서의 죄
2. 욕심내다, 염려하다, 자랑하다, 신뢰하다의 죄
3. 세력으로서의 육과 죄

Ⅶ. 죄(기독교에서의 죄)와 망각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생각과 행위를 꾸짖는 후회와 죄책감의 기억도 있으며, 사랑하고 사랑 받던 기쁨과 감격, 그리고 감사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억들은 그 속에 자기 모멸감을 동반하는 후회와 죄책감의 얼룩만 제거한다면 모든 것이 삶에 의미와 소망을 던져주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직면하고 그것을 넘어서려 하기보다는 도리어 도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 기억이 자기를 훼파시킬 것이라 생각하기에 기억 자체를 거부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마치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술과 환각제에 자신을 내맡기려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최고의 술 다량 소비국, 가장 골초가 많은 부끄러운 한국인으로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며, 가장 비싼 술 소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유흥 환락가의 자리가 더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잊어보려는 어리석음과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부 사람들만의 모습인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개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공동체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문화의 혼돈 속에는 바로 이 악성적인 망각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척박하게 가난했던 시절을 잊고 흥청망청하는 이 시대, 과거의 군부독재 시절의 억압을 잊고 다시 보스적인 권위주의적 지도자상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민족의 문화적 정서를 상실하고 천박한 외국문화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현상들은 모두 기억 상실증이 가져온 죄악들인 것이다. 세속사회의 더러움에 아첨하지 않은 선비들의 고고하고 협협한 정신은 어디로 가 버렸던 말인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복음만으로 만족하며 그것으로 삶을 살려했던 그 헌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복음 때문에 일사각오를 하며 순교의 길을 걸어가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망각은 명백한 죄악이다. 한 사람이 과거를 잊으면 자기 정체성의 분열이 생기는 것이고, 한 가정이 과거를 잊으면 가정불화가 생기며, 한 사회가 과거를 잊으면 불의한 사회가 되고, 한 민족이 과거를 잊으면 천박하고 어리석은 백성으로 전락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교회 또한 자기의 시작을 잊으면 열정과 헌신은 사라지게 되고 굳은 문자의 교의와 제도만 남게 되는 것이다.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은 단지 잊는 것만으로는 치유도, 새로운 창조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어제로부터 우리를 과감하게 탈출하게 하며, 오늘을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미래를 소망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기억하는 능력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과감히 현재에 끌어 들여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들의 의미를 살피며 경축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움이다(요 14:26). 성령은 기억을 통하여 시간의 한계들을 초월하게 하고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소망을 부여하시는 분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후회와 죄책감의 어두운 터널을 탈출할 용기와 힘을 주시며, 우리의 아픔을 기쁨과 감사로 바꾸시고, 그리하여 우리를 치유하시고 살리시는 분이다. 성령의 역사란 바로 모든 기억을 통전시키며 승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인간의 치유나 사회와 민족의 치유에는 반드시 이 성령을 통한 기억이 있어야 한다. 과거를 망각하는 사람이나 민족은 숙명적으로 과거를 다시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억하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도움으로 어제를 기억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그리고 오늘을 기억하며 내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Ⅷ. 결론
죄는 분명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없으시기 때문이다(요일 1:5).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옵 34:10),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다”(신 32:4).
성경에 의하면 죄는 창조의 형성 주간의 6일이 지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매우 좋게 만든 후(창 1:31), 인간 타락 이전의 어느 시점에 천사들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자유의지를 부여받아 창조된 루시퍼(Lucifer)는 교만의 죄를 범했고(cf. 딤전 3:6) 모든 천사들 중에 많은 수가 하나님께 반역하고서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 난 것이다(계 12:7-9).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을 의도적으로 창조하신 것은 아닐지라도 악의 발생이 하나님을 놀라게끔 발생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의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지혜에 따라서 그의 큰 영광이 되게끔 이미 정하신 것을 뜻한다.
사람도 본시 매우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엄청난 시기심 때문에 사단은 자신이 쫓겨 난 땅의 아담을 유혹하기로 한 것이다. 사단은 여자에게 나타나 그녀를 미혹케 하고(고후 11:3),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에 빠지게 했다(딤전 2:14). 인간의 참상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첫 조상은 전 인류의 계약적 대표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고전 15:22). 이런 원죄의 교리와 전체 인류에 대한 아담 죄책의 언약적 전가(federal imputation)의 교의는 이 세상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삶의 정확한 사실과 일치하는 성경교리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우리는, 날 때부터의 자기 중심성과 악한 성질을 보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중기, 인간의 한계와 범죄, 신학논단 21, 연세대학교, 1993
김영철, 주님의 주님되심 구약 I, 서울 : 여수룬, 1992
박형룡, 교의 신학II 인죄론, 서울 : 한국 기독교 교육연구원, 1981
이명수, 치유목회의 고찰, 서울 : 성광문화사, 1981
월리엄 요크, IVP, 제 1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One to One, 2000
존 칼빈(연구학술인) 저,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경건에 대한 순수한 가르침, 라틴어 직역), 생명의말씀사, 2009

키워드

,   기독교,   망각,   성경,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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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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