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왜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끊임없이 왜곡시키는가
2. 한일 간 사고방식의 차이
[결론]
[2] 본론
1. 왜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끊임없이 왜곡시키는가
2. 한일 간 사고방식의 차이
[결론]
본문내용
조건을 갖춘 다음에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전쟁하기 전부터 반드시 패배할 상대와 싸우기 때문에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孫子:軍形編』
즉, 이 가르침은 전쟁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쟁에서 적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가능한 한 모험을 하지 않는다. 착실하게 준비를 하여 반드시 이익이 눈에 보이는 것에 만 힘을 기울이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 들어오거나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의 회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진출하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정보를 알아보고,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며 철저한 계획을 준비한다. 이러한 근본을 알고 보면 손자병법에 있다. 이익이 보이지 않는 사업은 아예 벌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7) 일본에서는 민중들이 일어나서 정치 권력을 타도한 역사는 없다.
1910년대로부터 1920년대에 걸쳐서 ‘다이쇼(大正)데모크라시’라는 시대가 있었다. 이 시기는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데 언론이 자유로웠던 그 시대는 군부가 일으킨 5.15사건(1932)이라든가 2.26사건(1936) 등으로 문민정치가들이 대거 살상을 당하면서 끝이 났다. 일본의 문민정치가들이 무관들에게 폭력으로 위협을 당해 입을 다물어 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펜이 총칼에 패했던 역사밖에 일본은 갖고 있지 않다. 즉 일본은 폭력과 물리적인 힘에 약하다는 것이다. 정의라든가 진리가 폭력에 의해 왜곡되기 쉬운 나라가 일본이다.
무사들이 힘을 쥐고 있었던 일본은 무사들이 언제나 일본의 역사를 바꿔나갔다. 칼이 역사를 만들어나간 것이다.
일본 국민성의 이러한 단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이 역사를 재대로 정리하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한 일류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 한국에서는 민중들의 힘이 권력을 무너뜨린 역사가 많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는 침략국의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을 받았고, 해방 후에도 부패한 정권이라든가 군사정권에 의해 자유를 묵살 당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항상 민중들은 힘을 모아 총칼과 무력에 대항해왔다.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에서는 총 한 자루 재대로 갖지 않았던 민초들이 한반도 남부를 거의 점령했었고, 1919년 3.1운동 때에도 전국의 민중들이 일어섰었다. 해방 후, 1960년의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고, 1980년의 광주사태는 전두환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끊임없는 민중들의 저항의 힘으로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역사의 전환점에서는 꼭 민중들이 앞에 나서서 나라를 만들어 지켜나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민중들은 근현대사를 창조하는 주인공들이었다. 한국에서는 민중들이 역사를 만들어나간 것이다.
한국인들은 폭력이나 물리적인 힘에 쉽게 굴복하지 않으며, 올바른 의견이나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이긴다고 믿는 국민이다.
[결론]
왜곡된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한국 측이 왜곡 부분 수정을 거듭 요구했지만, 일본정부가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우호 관계로 향하던 한일 간은 급랭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한일 간의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가? 위에서 논한 내용을 토대로 앞으로 취해야 할 대응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손자병법에서는 이길 수 있는 상대만을 골라 싸운다.
그러므로 일본이 지금 한국에게 강경 노선을 택한 것은 한국을 약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에게 약자로 보여지는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과 함께 대일 정책에 초 강경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② 초 강경 대응을 하면서도, 일본을 연구하는 장을 축소시키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일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초 강경 대응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감정적으로만 생각해서 무조건 일본에 대한 연구를 폐쇄하거나 축소시키면,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은 다시 일본을 모르게 되어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계속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고, 적어도 약자로 보여서는 안 된다.
③ 일본인들에게 한일관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최근 자매결연관계에 있는 일본 중, 고등학교와 관계단절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내의 중, 고등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역효과이다. 일본인들에게서 한국을 배울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면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일본인들은 아예 재대로 된 역사를 알 기회와 역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조차 전혀 갖지 못하게 된다. 강경 대응과 미래를 위한 준비는 따로 해야한다.
④ 문화교류라든가 역사교육 교류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일본을 교육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일본 내에서 왜곡된 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데다, 고등학교에서는 역사가 선택과목이므로 한일 간은 불씨가 계속 남겨지는 셈이다.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일본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각 분야의 문화 교류, 역사 여행, 일어로 된 한일 간 현안 소개 사이트, 일어로 된 관련 책자, 드라마, 만화 등을 통해 일본인들이 역사를 재대로 알 수 있도록 보급해 나가야 한다.
⑤ 일본은 일반 국민의 힘이 약한 나라이다.
그러한 국민 개인의 힘을 한국의 일반 국민과 연대하면 강해질 수 있다. 한국의 일반인 단체라든가 시민연대 등과 일본 내 일반인의 단체와 연대하여 강한 활동 단체를 만들어 여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도 있을 것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공부를 하는 일본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어 나라의 힘이 강해지기라도 하면, 잘못된 역사를 재대로 한번도 반성하지 않았던 일본은 다시 침략국가가 될 것이다. 그것은 1차대전이후의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일본도 다분히 이런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시기에는 오히려 한국 측이 ‘적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이 가르침은 전쟁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쟁에서 적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가능한 한 모험을 하지 않는다. 착실하게 준비를 하여 반드시 이익이 눈에 보이는 것에 만 힘을 기울이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 들어오거나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의 회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진출하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정보를 알아보고,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며 철저한 계획을 준비한다. 이러한 근본을 알고 보면 손자병법에 있다. 이익이 보이지 않는 사업은 아예 벌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7) 일본에서는 민중들이 일어나서 정치 권력을 타도한 역사는 없다.
1910년대로부터 1920년대에 걸쳐서 ‘다이쇼(大正)데모크라시’라는 시대가 있었다. 이 시기는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데 언론이 자유로웠던 그 시대는 군부가 일으킨 5.15사건(1932)이라든가 2.26사건(1936) 등으로 문민정치가들이 대거 살상을 당하면서 끝이 났다. 일본의 문민정치가들이 무관들에게 폭력으로 위협을 당해 입을 다물어 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펜이 총칼에 패했던 역사밖에 일본은 갖고 있지 않다. 즉 일본은 폭력과 물리적인 힘에 약하다는 것이다. 정의라든가 진리가 폭력에 의해 왜곡되기 쉬운 나라가 일본이다.
무사들이 힘을 쥐고 있었던 일본은 무사들이 언제나 일본의 역사를 바꿔나갔다. 칼이 역사를 만들어나간 것이다.
일본 국민성의 이러한 단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이 역사를 재대로 정리하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한 일류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 한국에서는 민중들의 힘이 권력을 무너뜨린 역사가 많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는 침략국의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을 받았고, 해방 후에도 부패한 정권이라든가 군사정권에 의해 자유를 묵살 당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항상 민중들은 힘을 모아 총칼과 무력에 대항해왔다.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에서는 총 한 자루 재대로 갖지 않았던 민초들이 한반도 남부를 거의 점령했었고, 1919년 3.1운동 때에도 전국의 민중들이 일어섰었다. 해방 후, 1960년의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고, 1980년의 광주사태는 전두환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끊임없는 민중들의 저항의 힘으로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역사의 전환점에서는 꼭 민중들이 앞에 나서서 나라를 만들어 지켜나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민중들은 근현대사를 창조하는 주인공들이었다. 한국에서는 민중들이 역사를 만들어나간 것이다.
한국인들은 폭력이나 물리적인 힘에 쉽게 굴복하지 않으며, 올바른 의견이나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이긴다고 믿는 국민이다.
[결론]
왜곡된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한국 측이 왜곡 부분 수정을 거듭 요구했지만, 일본정부가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우호 관계로 향하던 한일 간은 급랭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한일 간의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가? 위에서 논한 내용을 토대로 앞으로 취해야 할 대응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손자병법에서는 이길 수 있는 상대만을 골라 싸운다.
그러므로 일본이 지금 한국에게 강경 노선을 택한 것은 한국을 약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에게 약자로 보여지는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과 함께 대일 정책에 초 강경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② 초 강경 대응을 하면서도, 일본을 연구하는 장을 축소시키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일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초 강경 대응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감정적으로만 생각해서 무조건 일본에 대한 연구를 폐쇄하거나 축소시키면,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은 다시 일본을 모르게 되어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계속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고, 적어도 약자로 보여서는 안 된다.
③ 일본인들에게 한일관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최근 자매결연관계에 있는 일본 중, 고등학교와 관계단절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내의 중, 고등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역효과이다. 일본인들에게서 한국을 배울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면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일본인들은 아예 재대로 된 역사를 알 기회와 역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조차 전혀 갖지 못하게 된다. 강경 대응과 미래를 위한 준비는 따로 해야한다.
④ 문화교류라든가 역사교육 교류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일본을 교육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일본 내에서 왜곡된 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데다, 고등학교에서는 역사가 선택과목이므로 한일 간은 불씨가 계속 남겨지는 셈이다.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일본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각 분야의 문화 교류, 역사 여행, 일어로 된 한일 간 현안 소개 사이트, 일어로 된 관련 책자, 드라마, 만화 등을 통해 일본인들이 역사를 재대로 알 수 있도록 보급해 나가야 한다.
⑤ 일본은 일반 국민의 힘이 약한 나라이다.
그러한 국민 개인의 힘을 한국의 일반 국민과 연대하면 강해질 수 있다. 한국의 일반인 단체라든가 시민연대 등과 일본 내 일반인의 단체와 연대하여 강한 활동 단체를 만들어 여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도 있을 것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공부를 하는 일본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어 나라의 힘이 강해지기라도 하면, 잘못된 역사를 재대로 한번도 반성하지 않았던 일본은 다시 침략국가가 될 것이다. 그것은 1차대전이후의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일본도 다분히 이런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시기에는 오히려 한국 측이 ‘적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