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마을 풍물굿][대동굿][도당굿][사천진리 별신굿][진오귀굿][소놀이굿][위도 띠뱃굿]필봉마을 풍물굿, 전라남도 대동굿, 경기도 도당굿, 사천진리 별신굿, 서울 진오귀굿, 양주 소놀이굿, 위도 띠뱃굿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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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필봉마을 풍물굿][대동굿][도당굿][사천진리 별신굿][진오귀굿][소놀이굿][위도 띠뱃굿]필봉마을 풍물굿, 전라남도 대동굿, 경기도 도당굿, 사천진리 별신굿, 서울 진오귀굿, 양주 소놀이굿, 위도 띠뱃굿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필봉마을 풍물굿

Ⅱ. 전라남도 대동굿
1. 두레굿
2. 마을굿

Ⅲ. 경기도 도당굿

Ⅳ. 사천진리 별신굿

Ⅴ. 서울 진오귀굿
1. 부정거리
2. 가망거리
3. 상산거리
4. 별상거리
5. 신장거리
6. 조상거리
7. 창부거리
8. 대감거리
9. 사제삼성거리
10. 말미
11. 아린말명
12. 도령거리
13. 베가르기
14. 영실
15. 뒷전

Ⅵ. 양주 소놀이굿

Ⅶ. 위도 띠뱃굿

참고문헌

본문내용

세 번째 단계는 1980년 양주소놀이굿이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던 때에서 지금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미 두 번째 단계에서부터 비롯된 양주소놀이굿 전승에의 외부적 개입이 이제 무형문화재라는 국가 차원의 개입으로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승 주체의 계보 역시 앞의 두 단계와 차이를 보인다. 앞의 두 단계가 “단순한 놀이굿의 전승을 계보적으로 잇는 것이었다면, 양주소놀이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인공적 조건 아래 당위적 전승 계보로 전환”된 것이다. 이 시기 마부 계열의 전승자로는 우용진의 뒤를 이은 김인기가 있으며, 김인기의 뒤를 이어 현재 어윤관, 박형배, 허영이 등으로 이어진다. 만신 계열의 전승자로는 두 번째 단계에서 만신 역할을 했던 조영자의 제자인 양달순(梁達順: 1936년 생)이 새로운 전승자로 나타났고 이어서 김봉순(1936년 생)이 양달순을 대신하게 되고, 현재 한애옥이 이수자로 있다.
이 시기 전승 주체의 양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해금을 켜는 악사인 고희정(1926년 생)이 문화재로 지정된 일이다. 그 동안 마부와 만신을 주축으로 해서 전승되던 양주소놀이굿의 전승 체계에 악사라는 새로운 축이 새삼 부각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마부, 만신, 악사 등의 세 가지 전승축이 마련되게 된다. 현재 악사는 김병옥이 그 전승 계보를 잇고 있다. 또한 소와 송아지 연행자들이 분명히 갖추어지게 되어 전승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고, 길놀이와 뒤풀이를 담당하는 농악대도 생겼다. 마부, 만신, 악사, 소, 송아지, 농악대 등의 나누어져 전승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상 주체를 중심으로 살핀 양주소놀이굿의 전승 양상은 크게 본다면 다시 두 단계로 대별할 수가 있겠다. 그 기준이 되는 전환점은 1980년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다. 1980년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기점으로 하여, 그 전승 환경이나 체계가 현저하게 변별된다.
현재 양주소놀이굿의 전승과 연행 활동은 양주소놀이굿 보존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현재의 전승과 연행 활동은 양주소놀이굿 본래의 연행 문맥에 의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보존회 구성원 모두가 양주소놀이굿은 경사굿에서 벌어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지만, 실제 경사굿에서 연행을 해봤거나 아니면 최소한 보기라도 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정은 1980년도 이후 벌어진 공연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양주소놀이굿 보존회의 공연 연보를 보면, 실제 경사굿에서 연행을 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 연행 장소 역시 매년 행해지는 정기 발표회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양주 지역 밖에서 개최되는 행사의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돈 써버리는 굿’이라 해서 양주 지역 부자들이 자기 집안의 경사를 기원 할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한 턱을 내며 서로 어우러지는 기회로 삼았던 소놀이굿이, 이제 양주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민속놀이 또는 민속 예술로 변모한 상황을 이를 통해 파악할 수가 있다.
Ⅶ. 위도 띠뱃굿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 전승되는 띠뱃굿은 서해안 도서지역의 풍어기원 마을굿으로서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문헌 기록은 없다. 위도는 전북 서해안 변산반도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위치하며 전라북도에 속하는 유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원래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반농반어촌이었으나 현재 농업은 거의 하지 않고 어업과 김양식을 주로 한다. 조기잡이로 유명한 ‘칠산어장’은 위도 주민들의 생업의 터전이었고, 칠산바다 조기어장이 한창일 때, 선주들이 비용을 부담하여 펼치는 대규모의 별신굿이 있었으나 약 50여 년 전 단절되었고, 매년 풍어와 제액을 기원하는 무굿 중심의 띠뱃굿이 전승되고 있다.
한때 조기잡이 쇠퇴로 굿이 약화되고 해상 해적행위가 자주 발생하자 이도곤이라는 대리마을 이장이 띠뱃굿을 줄다리기와 함께 부활시켰다 한다. 위도 띠뱃굿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위도 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1978년 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마을 주민들이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1985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이다.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위도 띠뱃놀이’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후,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토대로 1980년 ‘위도띠뱃놀이보존회’를 결성하고 이 고장의 어촌 민속과 전통의 원형을 보존 계승한다는 취지 하에 ‘띠뱃놀이’를 국가 무형문화재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하여 1985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마을 주민인 이복동 씨와 세습무 조금례 씨가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위도 대리마을 인근에는 치도리, 벌금, 진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들에도 각각 무녀가 살았었고 각 마을마다 무굿으로 이루어진 마을굿이 있었다고 하나, 무녀가 사라지면서 마을굿도 차차 소멸하였다고 한다. 대리에 남아있던 조금례 무녀도 1995년에 세상을 떠나자 대리 마을에서 오랫동안 그 굿을 지켜보고 참여해 왔던 마을주민인 안길녀 씨가 이어서 무녀의 역할을 하였으나 안길녀 씨조차 1998년 사망하여 현재는 각지의 무녀를 알아봐서 초빙하여 굿을 하고 있다. 또 이복동 씨 사망 후에는 장구 예능보유자로 대리 옆 마을인 전막리 김상원 씨가 선정되었다.
위도 띠뱃굿은 현재 전승되는 전북의 마을굿 가운데 무굿 중심으로 연행되는 풍어제 성격의 도서형 마을굿으로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위도 세습무의 무굿이 단절된 상태로 전승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그 연행의 형태나 의미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참고문헌
김익두(1994) - 풍물굿의 공연원리와 연행적 성격, 호남지방의 풍물굿을 중심으로
박흥주(2001) - 서울의 마을굿, 서문당
이기웅 - 경기도 도당굿, 열화당
이상일(1971) - 변신설화의 유형 분석, 대동문화연구, VOL.8, 성균관대학교 대동 문화연구원
이두현(1968) - 양주 소놀이굿, 국어국문학 39·40, 국어국문학회
이선주(1988) - 인천지역무속 2, 내림굿·고창굿·진오귀굿·병굿, 미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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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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