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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 기독론][신학 구원][신학 대상][신학 방법][윤리][성령][철학적 신학]신학의 정의, 신학의 기독론, 신학의 구원, 신학의 대상, 신학의 방법, 신학과 윤리, 신학과 성령, 신학과 철학적 신학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신학의 정의

Ⅲ. 신학의 기독론
1. 하나님과 신학에의 당위
2.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신가
3. 이단적 삼위일체 주장들
4. 그리스도의 성품과 의지론
5. 다미 선교회 이장림 목사를 중심한 이단적 기독론

Ⅳ. 신학의 구원
1. 그리스도의 완전/종교 다원주의
2. 구원의 종류 그리고 시기/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행위론

Ⅴ. 신학의 대상과 방법

Ⅵ. 신학과 윤리

Ⅶ. 신학과 성령
1. 성령과 그리스도
2. 성령과 선교
3. 성령과 교회
4. 성령과 개인

Ⅷ. 신학과 철학적 신학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관한 극단적 질문들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철학과 철학적 신학은 같은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철학적 신학은 외부로부터, 곧 철학으로부터와 신학으로부터 동시에 공격 받고 있다. 그것은 신학만이 신에 관한 진술을 할 수 있고, 철학은 신에 관한 어떤 진술도 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신학이 공격하는 이유이다. 이 경우 전통적 신학은 철학적 신학을 철학으로 간주한 것이다. 순수 신학은 철학적 신학이 철학이기 때문에 그 학문성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순수 철학은 철학적 신학을 신학으로 간주하여 철학이 아님을 선언하고 결별하려 한다.
철학은 본질적으로 존재의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오늘날도 행위하고 있다. ‘철학한다는 것’(zu philosophieren), 다시 말해서 ‘철학함’(Philosophieren)은 바로 철학의 이러한 존재론적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존재(Sein)를 설명함에 있어 다른 차원의 존재, 즉 무(Nichts)를 설명해야하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철학한다는 것은 존재와 무의 사이를 오가며 그 근원을 설명해야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야 말로 근원적 경험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철학한다는 것은 경험의 길을 가는 것이다. 철학함은 인간이 종종 그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 개념을 정의하고 결론을 도출해내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함은 오히려 인간이 경험한 것을 사유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한에서 철학의 근원은 결코 경험과 다른 것이 아니다. 철학함은 참된 의미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투명하게 제시해 줌으로써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하는 그 순간에 시작한다. 존재하지 않는 무는 스스로 존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문제의 심원에 달려있다. 요컨대, 철학적 근원적 경험은 전적으로 세계의 문제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철학적 근원적 경험이란 우리를 기습하는 세계문제에 대한 경험이다.
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에 관한 질문과 그것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존재를 설명하는 존재론은 정확히 말해서 인간의 구체적 현실을 초월한 불가시적 실재에 관한 진술이며, 그것에 대한 철학자들의 확신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 각자는 그들 나름대로 존재론을 갖고 절대적 존재, 곧 완전한 존재를 확신하고 설명하며 믿고 있다. 이런 철학자들의 철학함은 거의 신앙적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이론이며, 철학이고, 양심이기 때문이다.
신학이 신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은 존재에 관한 지식으로 그 학문성을 출발한다. 다만 우리는 철학자들 간에 존재를 설명할 때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점, 곧 너무 극단적이므로 거의 반대적인 진술로 양극단화 되는 것을 보면서 존재의 참된 진술에서 존재는 결국 비존재, 즉 무여야한다는 존재론을 읽을 수도 있다.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 존재성을 상실한 것이므로 ‘참된 있음’이란 없음, 즉 무적 존재여야 한다는 것도 존재론의 한 표현이다.
신학이 존재를 인격적 본질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구속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믿음의 대상으로 신앙화했다면, 철학은 존재를 실체적 본질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인식론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사변의 대상으로 존재화했다. 신학은 신앙의 학문이며, 철학은 사변(이성)의 학문이란 구별점은 존재구명의 방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철학적 신학은 어떤 입장인가? 철학적 신학은 인격적 신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하여 그 실재성을 제시하는데 그 학문의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철학적 신학은 엄밀히 말해서 철학이며 동시에 신학인 것이다.
Ⅸ. 결론
신앙의 메시지에 대한 상이한 해석(sententiae)들을 수집하고 그 해석에 대한 토론이나 평가 문제(quaestiones)가 제기되면, 신학은 그때부터 철학에 못지않게 변증의 기술(dialectica)을 필요로 하게 되고 치밀한 논증(ratiocinium argumentativum)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변증과 논리의 법칙은 기왕에 철학에서 발전된 그 변증 및 논리 법칙과 다를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신학은 불가피하게 철학의 논리와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논전을 전개할 때에 당사자들은 논리의 법칙에 호소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주장을 일관성 있게 개진하도록 요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앙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시도는 반드시 그 부분적인 주장들에 대해서 총체적인 일관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철학적 변증론과 논리학의 영향을 받아 소위 조직신학이 나온다.
신앙 메시지가 해석을 요한다는 사실은 메시지가 선포되는 즉시 자동적으로 이해되는 그런 것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메시지의 선포자는 그 청취자가 제대로 이해하여야 하는 방식으로 청취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열어 깨달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성급하게 그 메시지 자체에 대해서(\"어리석은 짓이라거나 걸림돌이라고 단정하는\") 평가를 내리려는 충동을 받는 까닭이다.
성서 메시지는 특유한 우주론에 입각하여 신의 보편적인 통치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멸할 인간들에게 신의 메시지가 선포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이 은총을 베푸는 행위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신에게서 선택을 받은 사람들만이 그 메시지를 \'하느님의 능력\'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한다(1고린도 1,25). 이것은 신앙인들이 어떤 진리를 신으로부터 온 계시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기의 행위를 타인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택을 받지 못한, 믿으라는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신의 메시지라는 것이 한낱 어리석은 소리에 불과하리라는 것도 수긍한다.
참고문헌
김홍기,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 서울 :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2002
성기호, 이야기 신학, 서울 : 국민일보사, 1997
이근호 저, 신학에 대한 질문과 답변, 대장간, 2008
이종기, 간추린 윤리학, 서울 : 세종문화사, 1993
조영엽, 기독론, CLC, 1993
황승룡 역, 교리 교육 지침서 中 성령론, 서울 : 장로교 출판사, 1994

키워드

신학,   윤리,   성령,   기독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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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04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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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7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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