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약력
Ⅲ.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神)관
Ⅳ.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
Ⅴ.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복한 종말론
Ⅵ.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
Ⅶ.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Ⅷ.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Ⅸ. 결론
참고문헌
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약력
Ⅲ.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神)관
Ⅳ.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
Ⅴ.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복한 종말론
Ⅵ.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
Ⅶ.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Ⅷ.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아픈 상처를 찔러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셨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참으로 행복은 믿음과 소망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제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행복된 삶을 갈망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했으며 따라서 그러한 삶을 피하면서 살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Ⅷ.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아우구스틴은 밀라노에서 플라톤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또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아우구스틴은 우선 밀라노의 주교의 웅변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점차로 그의 설교 내용에도- 즉 그의 이분법적 인간론, 그의 금욕주의, 그리고 그의 성서 주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필로, 오리게네스 등의 영향을 받아 성서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네오플라톤주의자 아우구스틴이 수용할 만한 신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구약 성서 해석은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제거해 주었다. 아우구스틴은 가톨릭교회에서도 신을 순수한 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부로시우스는 그에게 권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주었으니, 계시적 권위는 이성적 사고와 모순되지는 않는 것같이 보였다. 플라톤주의의 숭고한 진리와 대중의 미신 사이의 간격은 오직 암브로시우스 같은 인간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참된 선에 대한 가르침은 감각적인 것에 몰두한 인간들에게는 기이하게 보인다. 그들은 우선 믿어야 하고 영혼의 방향을 수정해야만 참된 선을 인식할 수 있다. \"너희가 믿지 않는다면 인식할 수 없다\"(nisi credideritis, non intelligetis). 이것은 아우구스틴의 표어가 된다. 결국 암브로시우스의 권위적 인격은 가톨릭 교회의 신앙에서 경멸할 만한 것을 제거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틴이 어머니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의 소위 \"회심\"과 이 사건을 기록한 [고백](Confessiones)의 기술 사이에는 12년의 시차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고백]의 회고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32세의 아우구스틴이 자신의 회심을 과연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있다. 그가 \"회심\"으로 인해서 호르텐시우스 독서 이후 가지고 있었던 철학적 삶에 대한 동경을 포기한 것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고백]에서 보다시피, 그는 건강상 이유로 카씨키아쿰(Cassiciacum)에 칩거하면서 전적으로 명상 생활에 헌신한다. 그의 \"회심\" 이후 바로 이 명상적 삶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의 회심은 신앙고백적 의미에서의 변화라기보다는 철학으로의 회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의 글에 의하면 질병이 그로 하여금 철학의 품으로 도피하도록 만들었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가 [고백] 8권 12장의 회심 보도에서 언급한 로마서 13, 13-14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목표였던 모든 것을 철저히 부정하였던 당시의 그의 자세를 잘 표현해 준다. 은둔자들처럼 살기로 결심한 청년 아우구스틴은 세상적인 삶 전체를 끊어버린다. 회심 직후 그는 바울이 골로 2, 8에서 철학을 정죄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이 세상의 지혜\'만을 정죄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곧 이교 철학이 아니라, 이기적 지식으로 이해된다. 청년 아우구스틴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 삶의 의미요 행복의 내용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므로, 이런 관점에서 그는 바울을 이해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틴은 지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복음으로 회심한 것이라기보다는 네오플라톤주의로 회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음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아우구스틴은 복음을 네오플라톤주의적으로 해석했고 이런 류의 기독교로 회심했다. 청년 아우구스틴에게는 지혜가 곧 신(神)이었다. 그는 [고백]에서 이전에 네오플라톤주의 철학에서 알았던 것을 바울에게서 재발견했으며 거기에 추가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의 은혜에 대한 찬양이라고 말한다.
Ⅸ. 결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생활하던 당시 사회는 거의 그리스도교적 분위기라는 점과 하느님은 진리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원리와 인간의 유일한 목적은 초자연적인 차원보다는 자연적인 차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과 이성의 완전한 조화를 추구”하며 신앙과 이성 양자는 구원되어 초자연적 목적에로 향하게 된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방법론적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개의 인식 형식에 있어서는 어떤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구별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상호 연관과 협력이 강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신앙은 이성이 나갈 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이성을 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이성이 획득하는 바를 확신시켜준다. 반면 이성은 인간의 믿음에 이성적 동기를 부여하면서 그로 하여금 신앙을 갖게끔 한다. 그리고 신앙을 받아들인 다음 이성은 신앙의 내용을 명백히 하는데 있어서 크게 공헌한다. 따라서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Credo ut intelligam)와 “믿기 위하여 이해한다.”(Intelligo ut credam)
때문에 그의 방법론에서는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 간에는 어떤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성은 분명히 신앙을 위해 보조적 역할을 담당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핵심적 문제이며 모든 것은 이 문제와 직결된다. 영혼 자체는 스스로를 초월하면서 신에 대해 증거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존재에 관해 결코 의심하진 않지만 보편 개념으로서의 신 존재가 인간 정신과 분리불가분한 것이라고 확신할지언정, 인간이 신 존재에 관한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관한 논증은 일반적으로 관념적 논증이라고 불린다.
참고문헌
금귀분 :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나타난 종말론적 역사 이해,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01
박해용 : 아우구스티누스가 들려주는 신의 사랑 이야기, 자음과모음, 2006
성 아우구스티누스 저, 김종흡 역 : 성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4
이석우 : 아우구스티누스, 민음사, 1995
이종성 : 종말론 Ⅰ, 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Ⅷ.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아우구스틴은 밀라노에서 플라톤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또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아우구스틴은 우선 밀라노의 주교의 웅변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점차로 그의 설교 내용에도- 즉 그의 이분법적 인간론, 그의 금욕주의, 그리고 그의 성서 주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필로, 오리게네스 등의 영향을 받아 성서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네오플라톤주의자 아우구스틴이 수용할 만한 신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구약 성서 해석은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제거해 주었다. 아우구스틴은 가톨릭교회에서도 신을 순수한 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부로시우스는 그에게 권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주었으니, 계시적 권위는 이성적 사고와 모순되지는 않는 것같이 보였다. 플라톤주의의 숭고한 진리와 대중의 미신 사이의 간격은 오직 암브로시우스 같은 인간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참된 선에 대한 가르침은 감각적인 것에 몰두한 인간들에게는 기이하게 보인다. 그들은 우선 믿어야 하고 영혼의 방향을 수정해야만 참된 선을 인식할 수 있다. \"너희가 믿지 않는다면 인식할 수 없다\"(nisi credideritis, non intelligetis). 이것은 아우구스틴의 표어가 된다. 결국 암브로시우스의 권위적 인격은 가톨릭 교회의 신앙에서 경멸할 만한 것을 제거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틴이 어머니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의 소위 \"회심\"과 이 사건을 기록한 [고백](Confessiones)의 기술 사이에는 12년의 시차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고백]의 회고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32세의 아우구스틴이 자신의 회심을 과연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있다. 그가 \"회심\"으로 인해서 호르텐시우스 독서 이후 가지고 있었던 철학적 삶에 대한 동경을 포기한 것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고백]에서 보다시피, 그는 건강상 이유로 카씨키아쿰(Cassiciacum)에 칩거하면서 전적으로 명상 생활에 헌신한다. 그의 \"회심\" 이후 바로 이 명상적 삶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의 회심은 신앙고백적 의미에서의 변화라기보다는 철학으로의 회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의 글에 의하면 질병이 그로 하여금 철학의 품으로 도피하도록 만들었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가 [고백] 8권 12장의 회심 보도에서 언급한 로마서 13, 13-14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목표였던 모든 것을 철저히 부정하였던 당시의 그의 자세를 잘 표현해 준다. 은둔자들처럼 살기로 결심한 청년 아우구스틴은 세상적인 삶 전체를 끊어버린다. 회심 직후 그는 바울이 골로 2, 8에서 철학을 정죄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이 세상의 지혜\'만을 정죄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곧 이교 철학이 아니라, 이기적 지식으로 이해된다. 청년 아우구스틴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 삶의 의미요 행복의 내용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므로, 이런 관점에서 그는 바울을 이해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틴은 지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복음으로 회심한 것이라기보다는 네오플라톤주의로 회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음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아우구스틴은 복음을 네오플라톤주의적으로 해석했고 이런 류의 기독교로 회심했다. 청년 아우구스틴에게는 지혜가 곧 신(神)이었다. 그는 [고백]에서 이전에 네오플라톤주의 철학에서 알았던 것을 바울에게서 재발견했으며 거기에 추가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의 은혜에 대한 찬양이라고 말한다.
Ⅸ. 결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생활하던 당시 사회는 거의 그리스도교적 분위기라는 점과 하느님은 진리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원리와 인간의 유일한 목적은 초자연적인 차원보다는 자연적인 차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과 이성의 완전한 조화를 추구”하며 신앙과 이성 양자는 구원되어 초자연적 목적에로 향하게 된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방법론적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개의 인식 형식에 있어서는 어떤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구별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상호 연관과 협력이 강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신앙은 이성이 나갈 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이성을 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이성이 획득하는 바를 확신시켜준다. 반면 이성은 인간의 믿음에 이성적 동기를 부여하면서 그로 하여금 신앙을 갖게끔 한다. 그리고 신앙을 받아들인 다음 이성은 신앙의 내용을 명백히 하는데 있어서 크게 공헌한다. 따라서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Credo ut intelligam)와 “믿기 위하여 이해한다.”(Intelligo ut credam)
때문에 그의 방법론에서는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 간에는 어떤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성은 분명히 신앙을 위해 보조적 역할을 담당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핵심적 문제이며 모든 것은 이 문제와 직결된다. 영혼 자체는 스스로를 초월하면서 신에 대해 증거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존재에 관해 결코 의심하진 않지만 보편 개념으로서의 신 존재가 인간 정신과 분리불가분한 것이라고 확신할지언정, 인간이 신 존재에 관한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관한 논증은 일반적으로 관념적 논증이라고 불린다.
참고문헌
금귀분 :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나타난 종말론적 역사 이해,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01
박해용 : 아우구스티누스가 들려주는 신의 사랑 이야기, 자음과모음, 2006
성 아우구스티누스 저, 김종흡 역 : 성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4
이석우 : 아우구스티누스, 민음사, 1995
이종성 : 종말론 Ⅰ, 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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