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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추상미술 화가][김환기][남관][유영국][칸딘스키][파블로 피카소]추상미술 화가 김환기, 추상미술 화가 남관, 추상미술 화가 유영국, 추상미술 화가 칸딘스키, 추상미술 화가 파블로 피카소 분석(추상미술 화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추상미술 화가 김환기

Ⅱ. 추상미술 화가 남관

Ⅲ. 추상미술 화가 유영국

Ⅳ. 추상미술 화가 칸딘스키

Ⅴ. 추상미술 화가 파블로 피카소
1. 청색시대(Blue Period. 1901~1904)
1) 인생 - 1903년
2) 다림질을 하는 여인 – 1904
2. 장미빛시대(Rose Period)(1905~1906)
3. 입체주의 미술(1907~1914)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색이 사용되어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그림이 변하게 된다.
2. 장미빛시대(Rose Period)(1905~1906)
피카소는 서커스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실방당크의 가족 - 1905년>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저마다 다른 자세로 서 있는데 피카소는 꽃바구니를 든 딸의 손을 잡은 아를캥(광대)을 자신과 일치시킵니다.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는, 부단히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야한다는 그리고 메마른 전경 속에서 다들 지치고 외로운 모습이 피카소 자신의 느낌이 들어있는 듯하다.
그 후 피카소는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조각, 가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해 가을에 열린 \'세잔 회고전\'에서 세잔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는다. 세잔의 예술과 아프리카, 에스파냐의 원시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피카소는 점점 더 뚜렷하게 그 영향을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해간다.
3. 입체주의 미술(1907~1914)
<아비뇽의 아가씨들 - 1907년>: 친구들에게 조차도 거센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지만 나중에는 큐비즘운동(입체주의)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람의 것이 아닌 듯 보이는 머리는 당시 피카소가 원시 부족 미술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화가 조르주 브라크는 이 그림에 매료되었고 때부터 피카소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테이블 위의 빵과 과일 1908> : 식탁 위에 놓인 사물은 정면시점으로, 식탁은 아래가 보이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점을 한 화면에 담았다.
<두 인물이 있는 풍경 1908> : 두 나체 인물이 한명은 나무줄기처럼, 한명은 뿌리처럼 누워있는데 전체적으로는 모두 단순화, 기하학적으로 처리했다. \'세잔식 입체주의\'의 초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오르타데에브로의 저장소 1909>
<다니엘 앙리 칸바일러 의 초상 1910> : 오늘의 추상미술이 분석적 입체주의 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맞지 않은 두 눈, 귀, 코, 넥타이, 머리카락, 손.. 이초상화에서 얼굴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만돌린을 켜는 여자, 파니텔리에 1910>
1914년이 되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프랑스, 독일 사이에서도 전쟁이 시작된다. 동료들은 모두 전쟁터로 떠났지만 피카소는 에스파냐 사람이기에 홀로 남게 된다.
<할리퀸 1915> : 할리퀸은 팬터마임 ’코미디아 텔라르테’의 서커스에 나오는 캐릭터로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는 저승사자를 말한다. 극중에서는 광대처럼 다이아몬드 무늬가 있는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고 목검이나 지팡이를 들고 등장한다.
<퍼레이드의 무대를 위한 스케치 1917> : 어느 날, 러시아발레단의 무대미술을 부탁받고 로마에 가게 되는데 고대 건축물, 조각,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을 매일 보러 다녔고 이와 같은 작품도 남기게 된다.
<의자에 앉은 올가의 초상 1917> : 피카소는 다시 고전적인 주제, 기법으로도 눈을 돌렸다.
하지만 큐비즘 작품도 병행을 한다. 피카소는 한 가지 단일한 스타일의 화가로 규정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끊임없이 실험했으며, 창의력이 언제나 솟아 넘쳤고 자신이 한 가지 양식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할 때면 금방 자신의 양식을 변화시켰다.
<댄스(세명의 무희들) 1925> : 비평가들을 또 한 번 놀랜 작품이다. 발표당시 얼굴, 몸이 너무 추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꿈> <마리테레즈 1937> : 피카소로 하여금 가장 매혹적인 작품을 남기게 한 여인이 마리테레즈이다. 부드러운 곡선과 은은한 중간색을 많이 사용하여 아마도 아름다운 모델이었다기보다는 모성을 간직한 여성으로서의 마리 떼레즈를 묘사하였기 때문에 부드러운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많다.
<도라미르 1937> : 사진가이며 지식인 이었던 도라미르의 그림이다. 우연한 자리에서 도라미르를 소개받은 피카소는 한눈에 반하게 된다.
< 우는 여인 1937> : 도라미르의 눈물은 피카소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피카소에게 자신을 존중해달라고 고통스럽게 갈망하는 표시이며 피카소는 그림으로서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노란색, 초록색 붉은색, 흰색, 진홍색이 격렬하게 대립되어있다.
파리국제전시회의 스페인 건축물을 위한 벽화 제작을 의뢰받은 상태였던 피카소는 신문을 보고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에스파냐 내전에서 독일 폭격기가 게르니카를 전멸, 그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파괴적인 공격\'이었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피카소의 작품은 전쟁의 영향으로 어두운 기운이 가득했다. 게르니카에 폭격이 있은 후 1개월 후, 그 충격을 담은 작품이 완성되었다.
<게르니카 1937> : 24피트 너비 11피트의 이 작품에서 소와 말은 전쟁과 폭력을 상징하며 죽은 어린이들과 어머니의 비탄, 슬픔, 분노를 모노크롬으로 나타내었다. 파시즘독재와 공포 앞에 의연히 맞선 분노의 외침이며 혁명으로써 피카소의 상징이 된 작품이다.
<인형을 들고 있는 마야의 초상 1938> : 딸 마야의 불길한 미소에는 전쟁이 남긴 커다란 상처가 나타나 있는 듯 하다.
<수탉 - 1938(목탄소묘)> : 그는 수탉의 공격성, 뻔뻔스러움과 우둔함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에서 학살 1951> : 스페인 내란과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은 그에게 대량학살과 폭력을 증오하는 대작들을 남겼다.
이제 피카소라는 이름 주변에는 신화가 싹터서 그의 생애 마지막 20여 년 동안은 그의 작품은 비평을 초월해 존재했다. 피카소는 죽기직전까지도 정력적인 활동으로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며, 그 상징인 비둘기를 형상화 하고 지나간 시기의 작품들을 재해석하는데 몰두하다가 1973년 91세의 나이로 프랑스 남동부의 무쟁에서 눈을 감았다.
참고문헌
멜 구딩(Mel Gooding, 정무성 옮김(2003), 추상 미술, 열화당
바실리 칸딘스키, 권영필 역(1993),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서울, 열화당
오광수(1988), 추상미술의 이해, 서울, 일지사
전상희(1994), 한국추상회화의 형성에 관한 연구 - 김환기·유영국·남관을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인천
재원(1997), 추상미술 40년, 서울
청천 문화예술문고, 피카소의 예술세계
  • 가격5,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1.09.22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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