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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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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조선시대 회화의 특성

Ⅲ. 조선시대 회화의 전개

Ⅳ. 조선시대 회화의 조선중기 회화

Ⅴ. 조선시대 회화 도화서출신화가

Ⅵ. 조선시대 회화 서회협회전

Ⅶ. 조선시대 회화 민화

Ⅷ. 조선시대 회화 작품

참고문헌

본문내용

많았던 화원이라든가 그 낙오자 또는 무명의 화가들이었다.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닌 일상 공간을 장식하는 실용성이 많은 생활화를 양반 화가들이 그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특히 민화는 그림의 크기, 화폭의 모양 모두 제멋대로이다. 장지에도 그리고 창호지에도 그렸다. 중국에서 온 화선지로부터 양지로 불리는 크라프트지, 모조지, 삼베, 모시, 양사, 비단, 광목, 나무 판자 닥치는 대로 그렸고 바탕도 가지각색으로 물들여 바탕색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았다. 은물감, 금물감으로 그리기 위해 마련한 붉은 색, 검정색, 청색, 남색, 녹색, 황색의 비단 또는 삼베로도 바탕을 만들었다. 정통화나 원화, 불화처럼 특수하게 처리된 광물성의 물감들로부터 화공들이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식물성 물감, 서양화에서 사용되는 유화용 물감, 그리고 페인트로 그린 그림까지 있다. 붓으로도 그렸으나 손가락으로도 그리고, 가죽붓, 버드나무 가지, 불에 달군 인두 등 멋대로 그렸다. 즉 재료나 소재 표현 방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였으며 또한 그처럼 많은 민화를 제작하였어도 절대로 똑같은 2개를 만들지 않았다. 그만큼 자유로웠던 것이다.
Ⅷ. 조선시대 회화 작품
안평대군이 꿈속에 도원을 여행하고 꿈에 본 바를 안견에 명하여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1447년 4월에 제작한 것으로 조선시대 최대의 걸작이다.
조선 초기에는 안견뿐만 아니라 사대부 화가로서 명대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대성한 강희안, 인물화의 최대 거장이었던 최경,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타고난 그림 재주 때문에 화원이 되었던 이상좌, 여성으로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여성적인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하여 다방면의 그림을 그렸던 신사임당, 왕손으로서 천진난만한 강아지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이암,「달마도(達磨圖)」를 그린 김명국 등이 관심을 끈다.
조선 중기의 회화 역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대란과 격렬한 당쟁이 계속되던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한편으로는 안견파 화풍, 절파화풍등 조선 초기 이래의 전통을 나름대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모나 화조화(花鳥畵), 묵죽(墨竹), 묵매(墨梅),묵포도(墨葡萄)등에서 종래에 보기 드물었던 새로운 한국적 특징을 발전시켰다.
김제의「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김명국의「설중귀로도(雪中歸路圖)」,이 정의 「묵죽도(墨竹圖)」등은 이 시대 회화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적 화풍이 더욱 뚜렷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영조와 정조의 재위 연간을 전후하여 꽃피웠던 조선 후기의 회화는 정선에 의해 발전된 진경산수(眞景山水),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유행된 풍속화에서 특히 한국적인 특색을 농도 짙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시기에는 남종 문인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 청나라를 통해 서양화법이 전래되는 등 전과는 다른 경향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밖에 이 시대에는 서민들 사이에서 민화가 크게 풍미하였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금강전도」나「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등에서 보듯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는 산천을 새로운 화풍으로 구사하여 그린 것으로 후대의 화원과 민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정선의 제자였던 심사정은 대담한 필선과 고아한 담채를 혼합한 우수한 기법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정선파의 산수화들은 종전의 산수화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또한 우리의 국토에 실재하는 산천을 묘사한 것이기에 특히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서민들의 생활의 전경을 주로 해학적으로 묘사한 김홍도와 김득신의 풍속화,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한량과 기녀 등 남녀간의 로맨스를 예리하게 파헤친 신윤복은 「미인도」등으로 풍속화에 더욱 한국적인 멋과 특색이 넘쳐흐른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문인화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후기의 토속적인 진경산수나 풍속화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참고문헌
박용숙(1978), 회화로서의 민화, 한국의 미⑧ 민화, 중앙일보사
안휘준 저(2000), 한국 회화사 연구, 서울 : 시공사
안휘준(2000), 한국 회화의 이해, 시공사
홍선표(1999), 조선시대회화사론, 문예출판사
H.W·D.J.잰슨 저·유홍준 역(1983), 회화의 역사, 서울 : 열화당
Kazimir Malevitch 저, 송심이 역(1974), 회화에 있어서의 색채와 형태와의 관계, 미술수첩,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예림 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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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3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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