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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로마건축의 특색
1. 사회적 기능과 구조
2. 내부 공간론

Ⅲ. 로마건축의 형성조건
1. 자연적 조건
2. 인문적 조건
1) 에트루스칸시대
2) 로마시대
3. 기술적 조건
1) 재료
2) 구조

Ⅳ. 로마건축의 방식

Ⅴ. 로마건축의 볼트구조

Ⅵ. 로마건축의 건물

Ⅶ. 로마건축의 집합주택

Ⅷ. 로마건축의 실례
1. 포르투나 비릴리스 신전, 로마 2세기말
2. 시빌신전, 티볼리, B.C 1세기초
3. 포르투나 프리미게니아의 성역, 프레네스테, B.C 2c
1) 개요
2) 건축적 형태
3) 건축적 의미
4) 폼페이시
5) 폼페이 시의 로마시대 개인주거 건축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 보인다.
2) 건축적 형태
이집트의 건축에서는 나일강이 지배하는 경관의 지형을 반영함으로써 단일한 직선이 그 주된 특성을 이루었지만, 여기서는 1차축과 여기에 직각으로 2차축이 더해져서 그 교차점에 중심을 형성하며, 이는 그 중심에 로마 시를 갖는 로마제국을 표상한다. 여기에서 중심과 통로는 처음으로 건축적으로 통합되었다.
잘 계획된 과정을 따라 계속하여 진행하면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절정에 도달하게 되며, 이와 같은 것이 전체의 구성에 있어 주된 법칙이 된다. 축에 의한 배치는 균형과 대칭성을 부여하며, 리듬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디자인의 통일성에 기여하고 있다. 잘 조직된 정적인 외부공간은 아크로폴리스의 자유롭고 동적인 외부공간과 대조가 되며, 두 문명의 근본적인 가치를 대비시키고 있다.
성역은 신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로마의 통로는 이 중심으로부터 뻗어 나간다. 이집트의 ‘초월’의 개념이 로마에서는 ‘출발’, ‘정복’, ‘복귀’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3) 건축적 의미
이 성역의 건축적 형태는 무엇보다도, 혼돈스러운 세상 내에서의 절제된 질서를 전달한다. 경사가 가파른 접근로는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염원을 나타낸다. 반원형의 열주현관과 그 아래쪽의 평지를 둘러싼 열주랑에서 보이는 인간의 팔에 대한 인유는 이와 같은 거동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개념을 전달한다. 즉, 아버지의 포옹과 같은 느낌과 함께 전체 배치의 절정을 이루는 여신의 비호아래 하계의 땅을 정복하고 지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형적인 로마인의 가치들 즉, 질서, 인내, 목표달성에의 집착, 야만인에 대한 우월감, 특출한 정복기질들이 모두 여기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4) 폼페이시
이도시의 배치와 건축을 볼 때 이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것임을 나타낸다.
폼페이시는 배치에 있어 전형적인 카스트롬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불규칙하며 성장하고 있는 도시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폼페이시는 작은 정주지로서 시작되었으며, 후에 삼니옴에 의해 정복되어 일시적으로 점유되었다. 삼니옴 인들은 그리스의 도시계획 개념의 영향을 받아 이 도시를 요새화하고 재계획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의 격자체계가 엄격하게 적용될 수는 없었으며 그 결과 도시의 주도로들은 직각으로 교차하지 않고 도로들 사이의‘섬(도시의 구획)’들도 비정형으로 되었다.
이 도시는 슐라황제에 의해 정복되어 B.C 80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A.D 62년에 이 도시는 지진으로 일부분이 파손되었다.
로마눔 광장(Forum Romanum)에 이어 폼페이 광장은 초기 로마의 도시중심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예가 된다. 3.5:1의 비율을 갖는 직사각형의 중정은 2층높이를 가진 삼면이 연속적인 열주랑에 의해 구획되고 있다. 대부분의 로마의 광장이 그러한 것처럼 이 광장도 중심교통망과 분리되어 있으며 차량은 광장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 광장의 긴 남북의 축은 카피톨리움(Capitolium)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이 건물은 높은 기단위에 서 있는 커다란 신전으로 정면에서 접근하도록 되어있다.
남쪽 끝에는 시민의 권위를 대표하는 큐리아(Curia)라는 세 개의 홀, 그리고 법과 사업의 중심이 되는 B.C 100년경에 지어진 바실리카가 있다. 따라서 이 광장은 종교적, 상업적, 행정적 중심의 기능들이 결합되어 있는 도시의 심장부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이것은 축소판의 제국 중심이기도 한다. 가로형태는 불규칙적이고 좁으며 판석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보행자용 디딤돌은 마차바퀴 폭 만큼씩 간격이 띄어져 있다. 대부분의 교차로에는 계속하여 흘러넘치는 분수대가 있었다. ‘스트라다 델 아본단짜(Strada dell\' Abbondanza)\'는 작은 상점, 사무실, 선술집, 빵집 등이 있는 상가이다. 연이어 있는 상점들 중간 중간에 개인주거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이 개인주거는 상점뒤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으며, 완전히 둘러싸여져서 상점으로부터 분리되고 거리의 먼지나 소음으로부터 차폐되고 있다.
5) 폼페이 시의 로마시대 개인주거 건축
판사의 주택 같은 부유층의 도시형 주거는 주로 보도에 면하여 있다. 좁은 문을 통과하면 현관이 나오며 이는 안뜰로 이어진다. 중정은 지붕의 중앙에 개구부가 있으며, 그 아래쪽의 바닥에는 빗물을 받기 위해 움푹 파놓은 곳이 있다.
건물의 측면을 따라 침실들이 만들어져 있으며, 중정의 끝부분에는 2개의 작은 방이 양측에 자리잡고 있다. 중정의 뒷부분에는 가족의 중요문서나 조상 등이 보관되어 있는 타블리눔이 있다. 타블리눔은 막혀 있기도 하며 페리스타일(perisryle)쪽으로 가는 통로가 나 있을 수도 있다. 이 페리스타일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열주랑으로 된 넓은 마당이다. 이 마당에는 분수와 정원이 있고 이것을 둘러가며 가족의 사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뒤로는 보통 채소밭이나 과일밭 등이 있었다.
집의 바깥쪽을 따라 가로에 면한 개구부들은 상점으로 되어 있다. 집 자체는 안쪽을 향하여 있지만 중정이나 타블리눔, 페리스타일 같은 다양한 중심들은 입구에서 시작하는 축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개인주거 건축은 로마제국시대 전반을 걸쳐 고도로 발달하였다. 가족과 가정을 신성하게 여기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정서에 의해 로마의 가정적 종교의 성격이 나타나며, 이는 주거 건축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설명해 준다. B.C 2세기에 지어진 폼페이 근처의 빌라 미스테리스 같은 로마의 시골별장은 탁 트인 시골 경치를 볼 수 있게 도시형 주거의 뒷부분을 열주랑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 별장 역시 중정과 페리스타일로 이어지는 축을 따라 배치되어 있는데 때때로 중정과 페리스타일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도 있었다.
참고문헌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한결사
전중건 저, 역학과 건축물의 형태, 도서출판 : 건설도시
프리츠 하이겔하임, 김덕수 역, 로마사, 현대 지성사
한양대 산업대학원 현대 건축 연구 모임, 유럽 건축과 만남, 기문당
Chris Scarre(2004), 로마 황제, 갑인공방
Raffalt,Reinhard(1997), 로마 황제들의 눈물, 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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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0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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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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