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민화의 특징
1. 독특한 공간구성 방법을 들 수 있다
2. 민화는 모든 색채를 강렬한 색상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3. 복합성과 반복성이 두드러진다
Ⅲ. 민화의 종류
1. 무속. 도교적인 민화
2. 장식용 민화
Ⅳ. 민화의 발생배경
Ⅴ. 민화의 색채
Ⅵ. 민화의 관계변형
1. 장르의 조합
2. 관계의 새로운 인식
Ⅶ. 민화와 우키요에
Ⅷ.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Ⅱ. 민화의 특징
1. 독특한 공간구성 방법을 들 수 있다
2. 민화는 모든 색채를 강렬한 색상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3. 복합성과 반복성이 두드러진다
Ⅲ. 민화의 종류
1. 무속. 도교적인 민화
2. 장식용 민화
Ⅳ. 민화의 발생배경
Ⅴ. 민화의 색채
Ⅵ. 민화의 관계변형
1. 장르의 조합
2. 관계의 새로운 인식
Ⅶ. 민화와 우키요에
Ⅷ.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게 분리하였다. 정선과 같이 응집된 구조가 아니라 나열식의 구조인 것이다. 정선은 잘 알려져 있듯이 금강산을 실제 답사하고 그린 것이지만, 그 그림 또한 자신의 인식의 틀 속에서 재구성하였다. 그런데 에밀레박물관본을 그린 민화가는 금강산을 가보지 않고 귀로만 들은 상황에서 자유롭게 일만이천봉을 그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이 실제적인 측면보다 개념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볼 수 있다. 이 민화가는 서민들의 성지인 금강산을 현실세계가 아닌 이상세계로서 표현한 것이다.
Ⅶ. 민화와 우키요에
우리 동양화는 한국화, 일본 동양화는 \'니혼가\'(日本畵)이다. 근대 이후 도입된 서양화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지만 원형인 중국화와도 구별해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말이다. 수묵화건 채색화건 한국. 일본화가 실제로 이런 이름처럼 중국화와 분명한 차별성을 확보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우리 민화나 풍속화는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적 정서를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보편성이 우선 관심사인 상류층의 감각과 다른 서민, 대중적 정서를 담았기 때문이다. 우키요에가 실재하는 현실 세계, 당시 유행한 사회 풍속을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귀천승속(貴賤僧俗)을 가리지 않고 소재로 삼았던 초기 풍속화와 달리 에도시대에 번성한 우키요에는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유흥연예장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더욱이 노골적이고 과장된 성 묘사로 유명한 \'마쿠라에\'(枕繪)가 중요 장르였다는 점에서는 성묘사가 가벼운 해학에 그쳤던 우리 풍속화와는 많이 다르다.
우키요에는 이제 일본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예술품이다. 우키요에는 특히 서양의 그림 기법이 정점에 달한 19세기 말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수출용 일본 도자기의 포장지와, 리본도(칼)을 보호하기 위한 종이로 취급되던 우키요에를 보고 그 간결하면서 강렬한 색상, 자유로운 발상과 도안, 무늬 등의 표현 방법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종교적 재제에 얽매여 왔던 서양 화가들에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독특한 기법이었다. 특히 고흐는 우키요에에 감동받아 \'빗속의 다리\', \'기생\'등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으며, 그 영향으로 이때부터 초상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다. 일본중세까지의 귀족, 무사계급을 위한 미술이 아닌 민중, 서민을 위한 미술로서 나타났다. 16세기 후반부터의 포르투칼과의 무역이 성하고 상업, 공업이 융성하면서 상인이나 서민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되어 그들 나름의 문화적 자유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物見遊山, 가무음곡, 주안무정 등을 다룬 초기풍속화가 소위 우키요에의 전신으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작가나 감상계급은 여전히 귀족, 무사계급이 주류를 이루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열고 나서 세상은 비로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에도가 신개발지, 신천지였기 때문에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에도의 서민들은 직접 그리고 감상하는 미술의 주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서민예술로서의 우키요에의 발생을 볼 수 있다. 浮世의 의미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글자자체의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遊里와 가부키에 의해 형성된 현세의 향락적 세계를 그린 그림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에도말기의 풍경화는 반드시 향락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없고 또한 초기의 작품에서도 모든 주제가 그러하지 않음을 볼 때 ,중국의 산수인물이나 화조도, 원씨물언이나 평가물언등의 고전이야기만을 그린 작품에 대하여 현세의 생활을 그린 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우키요에라고 불렀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미술은 오랜 기간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중국이나 한국과 유사한 미술을 가진 때도 있었으며 매우 다르게 나타난 적도 있었다. 대개 새로운 조형성에 관심이 많았으며 채색미를 추구했고 회화의 경우 화면 전체의 구성에 치중하여 다소 디자인 적인 단계에까지도 이르렀다. 에도 시대에 고린파나 가노파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정교함과 감각이 중시되는 공예품, 예를 들면 도자기나 마키에, 기모노 디자인, 장식경(裝飾經) 등에서 그 예민한 감각이 특히 잘 드러난다. 또 외국에서 유입된 문화를 곧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점도 뛰어나다. 중국의 수묵화에서 가노파 회화나 남화를 만들어낸 것, 중국식 두루마리 그림에서 에마키 그림들이 나온 것이 그러하다. 특히 흑백 목판화에서 우키요에라는 다색판화를 발전시킨 것은 탁월하며 일본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키요에에 보이는 인물 중시, 디자인적 구성, 색채감각, 평면성 등이 일본미술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잘 말해 주고 있다. 채색미나 감각을 중시하는 일본미술은 미술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표현 주의적 측면을 잘 견지하고 있다.
Ⅷ. 결론 및 제언
우리 민족의 생활 습관과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고 정통회화와의 차이점을 지닌 독창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서민계층에 의한 그림으로서 고급미술로서의 정통회화가 채워주지 못하고 있던 면을 채워주었던 소박한 회화형태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정통회화를 서민계층이 오랜 세월 되풀이 묘사하는 과정에서 민화 특유의 성격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되풀이 그려져 내려온 과정에서 주제와 양식이 크게 성격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던 것이니. 그 과정에 서민 특유의 호흡이 진하게 스며들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민화의 주제가 정통회화와 같은 개인의 주관적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항상 통속적인 집단적 가치감정의 상징형으로 일반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제들은 대부분 실생활과 연결되어 그것들이 의미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고 그것을 기원하고 염원하였다. 그러므로 민화는 더욱 우리 민족과 친근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참고문헌
김영학 - 민화, 서울 : 대원사, 2000
윤열수 - 민화이야기, 디자인하우스, 2003
윤열수 - 민화2, 도서 출판 예경, 2000
이화진 - 에도시대의 우키요에에 관한 고찰, 동서대학교, 2002
이우환 - 구조로서의 민화, 서울 : 문학사상, 1977
조자용 - 민화란 무엇인가 : 《민화》, 온양민속박물관출판부(마당 엮음), 1981
Ⅶ. 민화와 우키요에
우리 동양화는 한국화, 일본 동양화는 \'니혼가\'(日本畵)이다. 근대 이후 도입된 서양화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지만 원형인 중국화와도 구별해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말이다. 수묵화건 채색화건 한국. 일본화가 실제로 이런 이름처럼 중국화와 분명한 차별성을 확보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우리 민화나 풍속화는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적 정서를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보편성이 우선 관심사인 상류층의 감각과 다른 서민, 대중적 정서를 담았기 때문이다. 우키요에가 실재하는 현실 세계, 당시 유행한 사회 풍속을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귀천승속(貴賤僧俗)을 가리지 않고 소재로 삼았던 초기 풍속화와 달리 에도시대에 번성한 우키요에는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유흥연예장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더욱이 노골적이고 과장된 성 묘사로 유명한 \'마쿠라에\'(枕繪)가 중요 장르였다는 점에서는 성묘사가 가벼운 해학에 그쳤던 우리 풍속화와는 많이 다르다.
우키요에는 이제 일본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예술품이다. 우키요에는 특히 서양의 그림 기법이 정점에 달한 19세기 말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수출용 일본 도자기의 포장지와, 리본도(칼)을 보호하기 위한 종이로 취급되던 우키요에를 보고 그 간결하면서 강렬한 색상, 자유로운 발상과 도안, 무늬 등의 표현 방법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종교적 재제에 얽매여 왔던 서양 화가들에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독특한 기법이었다. 특히 고흐는 우키요에에 감동받아 \'빗속의 다리\', \'기생\'등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으며, 그 영향으로 이때부터 초상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다. 일본중세까지의 귀족, 무사계급을 위한 미술이 아닌 민중, 서민을 위한 미술로서 나타났다. 16세기 후반부터의 포르투칼과의 무역이 성하고 상업, 공업이 융성하면서 상인이나 서민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되어 그들 나름의 문화적 자유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物見遊山, 가무음곡, 주안무정 등을 다룬 초기풍속화가 소위 우키요에의 전신으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작가나 감상계급은 여전히 귀족, 무사계급이 주류를 이루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열고 나서 세상은 비로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에도가 신개발지, 신천지였기 때문에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에도의 서민들은 직접 그리고 감상하는 미술의 주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서민예술로서의 우키요에의 발생을 볼 수 있다. 浮世의 의미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글자자체의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遊里와 가부키에 의해 형성된 현세의 향락적 세계를 그린 그림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에도말기의 풍경화는 반드시 향락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없고 또한 초기의 작품에서도 모든 주제가 그러하지 않음을 볼 때 ,중국의 산수인물이나 화조도, 원씨물언이나 평가물언등의 고전이야기만을 그린 작품에 대하여 현세의 생활을 그린 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우키요에라고 불렀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미술은 오랜 기간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중국이나 한국과 유사한 미술을 가진 때도 있었으며 매우 다르게 나타난 적도 있었다. 대개 새로운 조형성에 관심이 많았으며 채색미를 추구했고 회화의 경우 화면 전체의 구성에 치중하여 다소 디자인 적인 단계에까지도 이르렀다. 에도 시대에 고린파나 가노파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정교함과 감각이 중시되는 공예품, 예를 들면 도자기나 마키에, 기모노 디자인, 장식경(裝飾經) 등에서 그 예민한 감각이 특히 잘 드러난다. 또 외국에서 유입된 문화를 곧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점도 뛰어나다. 중국의 수묵화에서 가노파 회화나 남화를 만들어낸 것, 중국식 두루마리 그림에서 에마키 그림들이 나온 것이 그러하다. 특히 흑백 목판화에서 우키요에라는 다색판화를 발전시킨 것은 탁월하며 일본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키요에에 보이는 인물 중시, 디자인적 구성, 색채감각, 평면성 등이 일본미술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잘 말해 주고 있다. 채색미나 감각을 중시하는 일본미술은 미술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표현 주의적 측면을 잘 견지하고 있다.
Ⅷ. 결론 및 제언
우리 민족의 생활 습관과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고 정통회화와의 차이점을 지닌 독창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서민계층에 의한 그림으로서 고급미술로서의 정통회화가 채워주지 못하고 있던 면을 채워주었던 소박한 회화형태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정통회화를 서민계층이 오랜 세월 되풀이 묘사하는 과정에서 민화 특유의 성격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되풀이 그려져 내려온 과정에서 주제와 양식이 크게 성격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던 것이니. 그 과정에 서민 특유의 호흡이 진하게 스며들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민화의 주제가 정통회화와 같은 개인의 주관적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항상 통속적인 집단적 가치감정의 상징형으로 일반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제들은 대부분 실생활과 연결되어 그것들이 의미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고 그것을 기원하고 염원하였다. 그러므로 민화는 더욱 우리 민족과 친근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참고문헌
김영학 - 민화, 서울 : 대원사, 2000
윤열수 - 민화이야기, 디자인하우스, 2003
윤열수 - 민화2, 도서 출판 예경, 2000
이화진 - 에도시대의 우키요에에 관한 고찰, 동서대학교, 2002
이우환 - 구조로서의 민화, 서울 : 문학사상, 1977
조자용 - 민화란 무엇인가 : 《민화》, 온양민속박물관출판부(마당 엮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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