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한옥의 의미
Ⅲ. 한옥의 구조적 분류
1. 안채
2. 사랑채
3. 사당채
4. 행랑채
5. 별당채
6. 곶간채
Ⅳ. 한옥의 특성
Ⅴ. 가옥의 기능
Ⅵ. 남도 가옥
Ⅶ. 사암1리 가옥
1. 이재영氏 가옥
2. 황윤식氏 가옥
참고문헌
Ⅱ. 한옥의 의미
Ⅲ. 한옥의 구조적 분류
1. 안채
2. 사랑채
3. 사당채
4. 행랑채
5. 별당채
6. 곶간채
Ⅳ. 한옥의 특성
Ⅴ. 가옥의 기능
Ⅵ. 남도 가옥
Ⅶ. 사암1리 가옥
1. 이재영氏 가옥
2. 황윤식氏 가옥
참고문헌
본문내용
아래로 내려와 남들의 눈에 띄게 있는 것은 건립 년대가 올라가지 않는다.
집 앞 솟을대문의 상량문을 보면 1904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집 앞에는 아담한 연못이 조성되어 못 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있고 버드나무가 있다. 그 뒤에 일반적인 것보다 다소 큰 솟을대문이 서남향하여 자리하며 중문간채는 사랑채보다 약간 앞으로 나오면서 사랑채 서쪽에 같은 향으로 앉았다. 중문간뒤가 안마당이며 안마당 뒤 안채가 중문간과 축을 맞춰 나란히 놓았다. 안마당 서쪽에는 광채가 세로로 안채와 직각방향으로 배치되고, 안채 동쪽에는 다시 1칸을 물러 아래채가 배치되었다. 이 앞이 뒤뜰공간이며 여기에는 사랑채 뒤쪽에 붙여서 벼 뒤주와 우물이 시설되었다.
장독대는 안채의 서쪽인 광채와의 모퉁이공간을 담장으로 막고 그 사이에 일각대문을 만들어서 따로 마련했다. 담장은 솟을대문까지를 막아서 사랑마당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으며 안마당과 사랑마당도 따로 건물을 구획해서 중문간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을 못하도록 계획했다. 그러나 사랑채는 앞으로는 사랑마당으로 변하지만 안마당으로 통하게 하였다.
안채는 전형적인 남부지방식의 5칸 전후좌우퇴집이다. 동쪽에는 부엌을 두고 다음이 큰방, 복판은 2칸 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다. 부엌의 앞퇴는 봉당이고 아랫퇴는 살강으로 이용된다. 부엌의 복판칸 상부는 다락이 시설되었다. 큰방으로부터 작은방 앞까지의 앞툇마루에는 툇마루가 깔리며 작은방의 죄측 머릿퇴에도 툇마루가 놓였는데 측면에 출입문시설을 해서 하나의 분리된 딴 공간으로 꾸몄다. 앞 모퇴는 특이하게 높은 마루로 만들어졌으며 뒤 모퇴에는 볏광이 마련되었다. 작은방의 부뚜막은 뒷퇴에 구축되며 뒷벽을 터서 굴묵으로 쓴다.
Ⅶ. 사암1리 가옥
1. 이재영氏 가옥
이재역 할아버지(83세)께서 사시는 집인데 이북에 사시다가 전란 중 피난을 오셔서 시암1리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따라서 건축한 지는 약47년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집을 지시기 전에 지관이 와서 풍수를 보고 터를 잡았다고 하셨다. 이재영 할아버지 댁은 지붕이 슬레이트인데, 최초로 지은 지 20년이 지난 후 지붕을 현재와 같이 개량하셨다고 한다. 평면도를 보면 잘 알 수 없으나, 지붕이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다 붙어 있어 마당 한 가운데서 하늘을 보면 둥글게 혹은 네모로 보였다. 또한 그 크기도 약 지름1.5M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건축학자들은 이러한 형태를 ‘똬리집 지붕’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안의 공간들을 살표보면 우선 ‘새떼문’이라는 것이 눈에 뛴다. 시암1리의 대부분의 전통형 가옥들에서 새떼문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정식 대문이외에 작은 대문이 하나씩 더 있었다. 할아버지께 새떼문의 용도를 여쭈어 보니 “그냥 쓰기 편하라고 있는 거지, 뭐”라는 식으로 특별한 용도나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하셨다. 또 ‘홑청’이라는 공간이 존재했는데 여기는 농사에 필요한 기구나 연장 등을 보관하는 창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엌 옆 ‘찬광’이라는 공간은 냉장고가 없던 옛날 반찬거리나 부식 등을 보관하던 곳으로 들어가 보니 그늘이 져서 시원했다.
2. 황윤식氏 가옥
황윤식氏의 가옥은 황氏 대종가댁이라서 그런지 그런대로 규모도 있고 역사도 깊어 보였다.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약100여 년 전쯤에 지어 졌으나, 60여 년 전에 새로 지었다고 들으셨다고 한다. 20여 년 전까지는 옛날 그대로 초가였으나 지붕을 기와로 올렸고, 부엌에 가스와 싱크대 시설은 약 3년 전쯤에 설치했다고 한다. 이 가옥 역시 새떼문이 존재하고 있었고, 홑청과 찬광도 역시 설치되어 있었다. 이 가옥은 또한 위의 이재영씨 댁과 같이 지붕이 □자 형으로 이어져 있는 형태였다. 여기서는 부엌내부에 ‘나무광’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과거 나무로 난방과 요리를 하던 시절에 땔감을 쌓아 놓던 시설이라고 하였다. 현재는 빈 박스 같은 것을 쌓아두고 있었다. 또한 사랑채가 있었는데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바깥 출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랑 마루와 방문이 외부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랑채의 독립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참고문헌
강영환, 한국 주거문화의 역사, 기문당, 1991
박광수, 한옥을 말한다(4*6배판), 일진사, 2010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 저, 한옥에 살어리랏다(아름답게 되살린 한옥 이야기), 돌베개, 2007
신영훈, 한옥의 조형, 대원사, 1994
윤원태, 한국의 전통 초가, 재원출판사, 1998
정미진, 전통가옥에서 나타나는 한국미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1997
집 앞 솟을대문의 상량문을 보면 1904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집 앞에는 아담한 연못이 조성되어 못 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있고 버드나무가 있다. 그 뒤에 일반적인 것보다 다소 큰 솟을대문이 서남향하여 자리하며 중문간채는 사랑채보다 약간 앞으로 나오면서 사랑채 서쪽에 같은 향으로 앉았다. 중문간뒤가 안마당이며 안마당 뒤 안채가 중문간과 축을 맞춰 나란히 놓았다. 안마당 서쪽에는 광채가 세로로 안채와 직각방향으로 배치되고, 안채 동쪽에는 다시 1칸을 물러 아래채가 배치되었다. 이 앞이 뒤뜰공간이며 여기에는 사랑채 뒤쪽에 붙여서 벼 뒤주와 우물이 시설되었다.
장독대는 안채의 서쪽인 광채와의 모퉁이공간을 담장으로 막고 그 사이에 일각대문을 만들어서 따로 마련했다. 담장은 솟을대문까지를 막아서 사랑마당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으며 안마당과 사랑마당도 따로 건물을 구획해서 중문간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을 못하도록 계획했다. 그러나 사랑채는 앞으로는 사랑마당으로 변하지만 안마당으로 통하게 하였다.
안채는 전형적인 남부지방식의 5칸 전후좌우퇴집이다. 동쪽에는 부엌을 두고 다음이 큰방, 복판은 2칸 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다. 부엌의 앞퇴는 봉당이고 아랫퇴는 살강으로 이용된다. 부엌의 복판칸 상부는 다락이 시설되었다. 큰방으로부터 작은방 앞까지의 앞툇마루에는 툇마루가 깔리며 작은방의 죄측 머릿퇴에도 툇마루가 놓였는데 측면에 출입문시설을 해서 하나의 분리된 딴 공간으로 꾸몄다. 앞 모퇴는 특이하게 높은 마루로 만들어졌으며 뒤 모퇴에는 볏광이 마련되었다. 작은방의 부뚜막은 뒷퇴에 구축되며 뒷벽을 터서 굴묵으로 쓴다.
Ⅶ. 사암1리 가옥
1. 이재영氏 가옥
이재역 할아버지(83세)께서 사시는 집인데 이북에 사시다가 전란 중 피난을 오셔서 시암1리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따라서 건축한 지는 약47년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집을 지시기 전에 지관이 와서 풍수를 보고 터를 잡았다고 하셨다. 이재영 할아버지 댁은 지붕이 슬레이트인데, 최초로 지은 지 20년이 지난 후 지붕을 현재와 같이 개량하셨다고 한다. 평면도를 보면 잘 알 수 없으나, 지붕이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다 붙어 있어 마당 한 가운데서 하늘을 보면 둥글게 혹은 네모로 보였다. 또한 그 크기도 약 지름1.5M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건축학자들은 이러한 형태를 ‘똬리집 지붕’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안의 공간들을 살표보면 우선 ‘새떼문’이라는 것이 눈에 뛴다. 시암1리의 대부분의 전통형 가옥들에서 새떼문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정식 대문이외에 작은 대문이 하나씩 더 있었다. 할아버지께 새떼문의 용도를 여쭈어 보니 “그냥 쓰기 편하라고 있는 거지, 뭐”라는 식으로 특별한 용도나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하셨다. 또 ‘홑청’이라는 공간이 존재했는데 여기는 농사에 필요한 기구나 연장 등을 보관하는 창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엌 옆 ‘찬광’이라는 공간은 냉장고가 없던 옛날 반찬거리나 부식 등을 보관하던 곳으로 들어가 보니 그늘이 져서 시원했다.
2. 황윤식氏 가옥
황윤식氏의 가옥은 황氏 대종가댁이라서 그런지 그런대로 규모도 있고 역사도 깊어 보였다.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약100여 년 전쯤에 지어 졌으나, 60여 년 전에 새로 지었다고 들으셨다고 한다. 20여 년 전까지는 옛날 그대로 초가였으나 지붕을 기와로 올렸고, 부엌에 가스와 싱크대 시설은 약 3년 전쯤에 설치했다고 한다. 이 가옥 역시 새떼문이 존재하고 있었고, 홑청과 찬광도 역시 설치되어 있었다. 이 가옥은 또한 위의 이재영씨 댁과 같이 지붕이 □자 형으로 이어져 있는 형태였다. 여기서는 부엌내부에 ‘나무광’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과거 나무로 난방과 요리를 하던 시절에 땔감을 쌓아 놓던 시설이라고 하였다. 현재는 빈 박스 같은 것을 쌓아두고 있었다. 또한 사랑채가 있었는데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바깥 출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랑 마루와 방문이 외부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랑채의 독립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참고문헌
강영환, 한국 주거문화의 역사, 기문당, 1991
박광수, 한옥을 말한다(4*6배판), 일진사, 2010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 저, 한옥에 살어리랏다(아름답게 되살린 한옥 이야기), 돌베개, 2007
신영훈, 한옥의 조형, 대원사, 1994
윤원태, 한국의 전통 초가, 재원출판사, 1998
정미진, 전통가옥에서 나타나는 한국미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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