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시사분석 및 양반전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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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3
1. 연구 목적 및 문제제기 ……………………………… 3
2. 연구사의 검토 ………………………………………… 4

Ⅱ. 본론 1 …………………………………… 6
1.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의 생애………………………… 6
2. 연암의 사의식(士意識) …………………………………… 8
3. 연암의 사의식(士意識)과「양반전」의 관계 …………… 9

Ⅲ. 본론 2 ……………………………………10
1.「양반전」의 구조와 의미-서사단락으로 본「양반전」… 10
2.「양반전」에 나타난 문권의 함축적인 의미 …………… 13
3.「양반전」의 특징 - 양반의 허세와, 참선비 …………… 17

Ⅳ. 결론 ………………………………… 19
1. 「양반전」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 …………………… 19

본문내용

술한 사기 화식편에 장인바치와 상가의 정황의 대략을 볼 수 있고, 한 나라 때 예문지에 실려 있는 9가 중의 144편은 즉, 농가의 농경술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 세가지의 업은 반드시 사의 학설을 기다린 뒤에 이룩된 것이니, 이른바 농학을 분명하게 하고, 상가를 통용하며 장인바치가 공을 이루게 하는 것이니, 이같이 농사를 밝히고 상고를 통용하고 장인바치가 공을 이루게 하는 것은 사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습니까? 최옹규 역주, 國譯 課農小抄, 아세아문화사, 1987, p. 40
연암은 사족의 일을 모두 중시하면서도, 농·공·상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선비의 역할을 특히 중요시 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가 조선후기 국가 경제가 궁핍해진 근본 원인을 선비들의 잘못에서 찾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백성을 사·농·공·상으로 나눈 것은 저마다의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이요, 선비의 역할은 학문을 통해 농·공·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이끌어 주는 것인데, 당시 선비들은 그러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비들이 관념적 학문에만 매달려 이용후생의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하니, 이론적 뒷받침이 없는 농·공·상이 발전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 해결의 주체로 연암이「허생전」을 창작했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허생의 삶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다. 그가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사적 목적을 위해서는 전혀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아내의 핀잔을 듣고, 계획했던 독서도 중단한 채 집을 나왔지만, 자기가 번 거금을 도적 교화와 빈민구제 등에 모두 써버리고 빈털터리로 귀가하여 본래의 가난한 선비로 되돌아 간다. 허생은 “재물 대문에 얼굴이 돋보이는 것은 임자네들 일일 것만 같소. 내가 부자가 되려고 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가지겠소?” 홍기문 옮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보리, 2004, p. 126~127
라는 대목을 통하여 재물을 재앙이라 보고, 재물에 집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재물은 최소한의 생계유지와 선비 역할 수행을 위한 수단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재물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그것을 목적적 가치로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효용적 가치로서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허생의 태도는 철저한 실학적 선비관에 기초한 것으로 연암이 이제 ‘선비의 모습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명한 해답을 찾았음을 보여준다. 선비는 국가경제 등 현실 문제를 경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 능력은 오직 선비의 본분과 관련된 공리적 목적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허생이 자기가 번 든을 당대의 사회문제 해결에 모두 써버리고,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는 단 한푼도 쓰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스스로 상행위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고, 또 훌륭한 장사꾼임을 자임하면서도, 자신이 장시치가 아님을 큰소리 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후기의 국가적 빈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상업을 활성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비도 일종의 장사꾼이 되어야 하지만, 국가 경륜을 위한 선비의 상행위와 개인적 돈벌이를 위한 일반장사꾼들의 상행위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농·공·상에 대한 지도자적 존재로서의 선비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처럼 앞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던 「양반전」과, 우리가 알고 있는「허생전」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선비의 인식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반전」이 선비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 속에서 선비상을 어렴풋이 모색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허생전」은 실학사상을 토대로 ‘현실적 선비상’을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20대에 ‘허생’과 관련된 소재를 얻었으면서도, 40대가 넘어서야 「허생전」을 지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암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20세 때 봉원사에서 윤영으로부터 허생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18년 뒤 평안도 여행 중 윤영을 다시 만나 몇 가지 모순되는 점을 물어 확인했으며, 44세 무렵의 『열하일기』에 와서 「허생전」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는 곧 연암이 「양반전」창작 당시부터 이미 허생 이야기를 작품화하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연암을 다시 만난 윤영이 “그대가 전에 허생을 위해 전을 짓고 싶다고 했는데 글은 당연히 완성되었겠지?”라고 묻고 있음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꾸준히 그 구상을 가다듬어 오다가, 연암이 18년 뒤에 다시 만난 윤영에게 ‘허생 이야기’의 모순되는 점을 물어 확인하고 있음이 이를 말해 준다.
실학사상을 확립한 이후에야 비로소 <허생전>을 완성할 수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허생전>의 창작 과정은 <양반전>을 창작할 당시까지는 선비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연암의 인식이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었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다른 의미로 보았을 때 작가는「양반전」을 통해 양반의 권위의식에 대한 풍자를 함으로써 문제제기를 하고 수십 년 뒤에 「허생전」을 지어 선비(士)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답을 제시해 준 「허생전」보다 문제제기를 하여 다시 한 번 양반의 권위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하는 「양반전」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물론 지금까지「양반전」은「허생전」을 짓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작품이었다는 평가가 더 많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의「양반전」이 창작되지 않았더라면, 「허생전」역시 창작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양반전」이 있었기 때문에 「허생전」이 완성도 있는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자연히 문학사적 의의가 더 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암이 가졌던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과 고찰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있어 굉장히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는 「허생전」에 대한 문학사적 의의보다, 「양반전」이 가지는 의의에 좀 더 고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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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12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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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7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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