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교육제도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조선의 교육제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이 교육에 힘쓰게 된 이유

2. 조선의 학교제도와 학규
 1) 유학 교육
 2) 잡과 교육

3. 고려와 조선의 과거제도
 1) 과거제도의 시초
 2) 응시자격
 3) 과거의 시행
 4) 고려 과거제도
 5) 조선의 과거제의 특징
 6) 조선 과거제도

본문내용

그해 봄 복, 전시를 쳤다.
국가의 경사나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시행하기도 하였다. 비정규 시험으로 증광시, 별시, 정시, 알성시 등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매년 시험이 시행되거나 수년에 한번 시행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조선에 이르러선 시간이 갈수록 횟수와 비중이 증가되면서 조선 말에 이르러선 급제자가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4) 고려 과거제도
-제술업
시, 부, 송, 시무책, 논, 경학 등 문장을 시험하였다. 사흘간 초장, 중장, 종장으로 나누어 쳤으며(3장연권법) 시험들 중 가장 우대하였고 선발인원도 가장 많았다. 총 33인을 뽑았으며 합격자들을 갑, 을, 병, 동진과로 나누어 관직과 토지를 차등 배분했다. 갑과 20결 을, 병, 동진과 17결로 이후에 갑과는 폐지된다.
-명경업
상서, 주역, 모시, 춘추, 예경 등 경서를 시험하였으며 제술업과 동일하게 나흘에 나누어 시험을 보았다. 상대적으로 제술업이 비하여 대우나 뽑는 인원은 적었다.
-잡과
의업, 복업, 명법, 명산, 지리 등 전문기술직을 뽑았다.
-승과
-무과
5) 조선의 과거제의 특징
조선의 과거제는 고려의 것을 계승하였으면서도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조선에 이르러서 과거제는 추천제등을 제외하고서 현실적으로 관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려 때와 비교하면 훨씬 과거의 중요도가 높아진 것이다.
조선은 사회가 고려 때의 ‘귀족’이 아닌 ‘양반’을 중심으로 하는 신분사회를 이루고 있다. 어원적 측면에서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아울러 관직에 진출한 자를 이르는 뜻이다. 이미 지배계급을 이르는 말 속에 관리라는 뜻이 심어져 있다. 양반은 지배계급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보고 무반이나 문반이 되어야만 비로소 떳떳하게 양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과거는 전국에 유교를 전파하고 국가의 기틀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지배계급을 통해 성리학을 전파하고 일반 민중으로의 파급효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과거제는 단순한 관리 임용의 장치를 넘어 사회제도를 유지하는 대들보였다.
6) 조선 과거제도
-문과
<소과>
생원시와 진사시를 이르는 말로서 대과를 응시하기 전에 치러야 하는 시험이라 하여 소과라고 부르지만 원칙상으로는 문과의 하위분야가 아닌 별개의 시험으로 성균관 입학자격과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다. 각각 100명씩을 선발하며 같은 해에 두 곳 모두 응시할 수 있었으며 모두 합격한 자를 양시라고 불렀다. 생원시와 진사시 모두 초시와 복시, 두 번의 시험을 걸쳐 합격자를 선발했다.
생원시는 경학을 평가하는 시험으로서 고려의 승보시를 이어받은 시험이다. 초시에서 사서의, 오경의 각 1편을 시험하고 복시에서 소학과 가례를 시험하였다. 진사시는 문예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고려 때의 국자감시를 이어받은 시험이다. 진사시는 초시와 복시 모두 시부를 시험하였다.
더불어 소과에는 정액이라는 도별 균형 발탁제가 있었다. 정액은 초시에 적용되는 제도로서 복시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성시에서 생원시와 진사시를 통틀어 200명, 도별 향시에서 생원시와 진사시를 통틀어 각각 경기도 60명, 충청도 90명, 전라도 90명, 경상도 100명, 강원도 45명, 평안도 45명, 황해도 35명, 함경도 35명으로 총 1400명(정원의 7배수)을 선발하였다. 하지만 지역별로 실력의 격차가 컸기에 복시에 이르러서 한양, 경기권과 영남권 유생들이 대부분 합격하였다.
<대과>
대과는 문과를 이르는 말로서 생원시, 진사시 두 시험과 구분하기 위하여 이르는 말이다. 대과는 초시, 복시, 전시의 세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려 때의 3장연권법을 이어받아서 초시와 복시의 경우 초장, 중장, 종장으로 사흘간 시험을 쳤다. 초장에서 사서오경, 경학을 시험하였고 중장에서 부, 송, 명, 잠, 기 , 표, 전 등의 글짓기를 시험하였으며 종장에선 사회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게 하였다.
초시에서는 총 240명을 선발했다. 관시 생, 진사시를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온 자들 중 300일이 지난 자들을 대상으로 치는 시험
에서 50명, 한성시에서 40명, 도별 향시에서 경기도 20명, 충청도 25명, 전라도 25명, 경상도 30명, 강원도 15명, 평안도 15명, 황해도 10명, 함경도 10명을 뽑았다. 복시에서는 예조의 주관 하에 초시 합격자들을 한성에 모아서 시험하였으며 초시와 같은 방식으로 33인을 선발하였다. 전시는 오늘날 사법 연수원 시험과 같이 복시 합격자들의 서열을 가리고 품계를 차등 배분하기 위한 시험으로서 사실상 과거 합격자는 복시에서 발표가 난다. 전시는 왕이 직접 참관하였으며 시무책 1문을 짓게 하였는데 이들을 갑, 을, 병과로 갑과에 3인, 을과에 7인, 병과에 23인으로 나누고 장원에게 종6품, 갑과에 정7품, 을과에 정8품, 병과에 정9품의 관직을 하사하였다.
성삼문이 장원급제할 당시의 책문
법을 만들면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후한, 송태조, 한문제, 광무제 등의 제도와 일처리를 살펴보면 모두 다스림의 도(道)와 관련이 있는데 그 자세한 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조선에서는 고려의 사병(私兵)을 경계하여 혁파하였는데 사병의 이로움도 있다는 대신도 있고 그에 따른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는데 이것들 중 어떤 책(策)이 타당한가?
-무과
무과에선 초시, 복시, 전시를 통해 총 28명을 선발하였으며 초시에서는 훈련원 주관의 원시에서 70명, 도별 향시에서 경상 30명, 충청 25명, 전라 25명, 강원 10명, 황해 10명, 함경 10명, 평안 10명을 선발하였다. 복시에서는 28인을 선발하였으며 유교경전과 무경의 일부를 구두로 시험하였다. 각각의 시험 과목으로는 목전, 칠전, 활쏘기, 기마, 기창, 격구 등이 있었다.
-잡과
주무관에서 주관하는 시험으로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의 네 분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각각의 과에서 더욱 세분하여 필요한 인원을 선발하였다.
역과의 경우 한학 13명, 몽학 2명, 왜학 2명, 여진학 2명을 뽑았으며 의과에서는 9명, 음양과의 경우 천문학 5명, 지리학 2명, 명과학 2명을 선발하고 율과에서 9명을 선발하였다.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10.22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974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