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사회복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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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의 사회복지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진대사업 (賑貸事業)
1) 흑창
2) 의창
3) 상평창
4) 유비창
2. 고려의 진휼사업
1) 은면지제
2) 재면지제
3) 환과고독 - 4궁구휼
4) 수한질여진대지제
5) 납속보관지제
3. 고려시대의 의료복지시설
4. 구제기관
5. 어린이 수양제도
6. 민간의 구제활동
1) 사원의 구제활동
2) 민간의 구제활동

본문내용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4. 구제기관
앞의 의료복지시설에서도 말했듯이 고려시대의 의료기관들은 단순히 의료기관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회복지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려시대 구제기관의 역할도 의료기관인 제위보, 구제도감, 구급도감에서 담당을 하고 있었다. 고려 4대 군주인 광종 14년(963년)에 빈민의 구호 및 질병치료를 위해 제위보가 설치되었다. 제위보는 의료사업뿐만이 아니라 한때 굶주린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는 점에서 빈민구제사업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11대 군주인 문종시기부터는 제위보에 7품 이상의 책임자를 두어서 구휼사업을 관장케 하였으며, 이 제도는 고려 말까지 존속되었다.
고려 예종 4년(1109년)에는 중앙에 구제도감(救濟都監)을 두어서 처음으로 구제행정을 총괄(總括)하였다. 이 구제도감의 설치로 구제사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는 진제도감(賑濟都監)을 더 설치하였으며, 고려 32대 군주인 우왕 7년(1381년)에는 구제색(救濟色)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고려 23대 군주인 고조 45년(1258년)에는 구급도감(救急都監)을 설치하여 몽고의 침략에 의한 병란에 대비하였다.
고려의 의료복지시설과 구제기관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고려의 제도들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고려라는 나라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조선은 개국 초기 나라의 안정을 위하여서 고려시대에 행해지던 이런 제도들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고려의 이런 제도들이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져서 운영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구제사업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른 나라의 구제제도를 모방하여 사용을 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구제사업은 당, 송, 원나라의 그 제도들을 모방하여 그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모방은 임시적인 방편으로서의 구제사업이 아닌 빈민구제의 제도를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5. 어린이 수양제도
고려 시대의 어린이 수양제도는 굉장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도이다. 조선시대,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로 엄격한 신분사회 고려의 신분제도는 귀족, 중류층, 양민, 천민의 4가지 신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였다. 주로 이 시대에 이루어졌던 고아의 수양은 귀족의 집안에서 고아를 거둔 뒤에 키운 다음에 그 집의 종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고아의 민가수양을 빙자하여 인신매매, 유괴, 약탕 등의 범죄도 없지 않았던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불교사원에서 고아를 수양하여 승려로 육성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고려시대에 단순한 정치사상으로서가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에 스며들어 그 책임을 다하는 모습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사원이 아닌 민가에서 고아를 수양할 경우에는 나라에서 10세까지 양육을 하다가 아이를 원하는 가정에 이를 내어주는 일도 있었다. 이 제도를 통해서 아동을 천민으로 하나의 종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6. 민간의 구제활동
1) 사원의 구제활동
고려 시대에는 불교사원에서 많은 구제활동이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사원은 단순한 종교사원으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토지와 노비를 소유함으로써 경제적인 부문에서도 큰 역할을 가졌다. 사원의 이런 경제적 기능은 순기능뿐만이 아니라 불교의 부패를 비롯한 많은 역기능을 불러왔고, 특히 고려 말기에 극심해졌다. 불교사원의 이런 부패는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많은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불교를 배척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원에서는 그들이 소요한 풍부한 토지와 자원을 이용하여 불교의 복전사상(福田思想) 자선을 행하는 것이 자비심과 복을 행한다는 불교의 기본적인 사상
을 기반으로 하여 빈곤한 백성이나 행려자들에게 시식 및 구료 등의 구휼을 행했다. 의료를 행하는 의승들은 자선과 포교의 두 가지 목적으로 민간인을 상대로 구료행위를 하였고, 의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원의 구제활동은 상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긴급한 상황에서만 이루어졌고, 또한 전국의 모든 사원에서 이러한 활동들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기가 힘들다.
2) 민간의 구제활동
고려시대에도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한 계나 두레 등의 자발적인 형태의 활동을 통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백성 상호간에 구제를 한 경우가 있다. 특히 비상시나 재해 때에 백성들에게 국가가 제대로 진휼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민간에서 자선사업을 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고려 후기에 나타났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왕면 고려시대의 왕족.이름 면. 문종의 아들인 조선후 도의 증손. 공화후 영의 아들. 의종의 딸 화순공주의 남편.
, 채홍철 고려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무민(無悶), 호는 중암거사(中菴居士).
, 승려 혹선, 허종 고려 말기의 외척이다. 어릴 적 궁중에서 자랐으며 충선왕의 외동딸인 수춘옹주와 결혼하였다. 의술과 약재로 많은 사람을 살렸고, 예를 중시하였으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등이 있다.
< 참 고 문 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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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2001. “불교복지의 정체성 연구 -초기불전의 복지모형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학위논문.
김은수. 2008. “자선구제시대의 성격에 관한 연구”. 국제신학 Vol.10 No.-, pp.297-323.
노득용. 2005. “한국 민간사회복지 체계속에서의 종교사회복지의 과제”. 명지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논문.
문선화, 구차순, 박미정, 김현옥. 2005. 『한국사회와 아동복지』. 양서원.
박병현. 2010. 『사회복지의 역사』.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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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길. 1988. “고려시대 불교의 사회복지사업”. 대구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산업복지전공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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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1.08
  • 저작시기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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