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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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이론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
2.1. 오리엔탈리즘의 정의와 속성
2.2. 허구의 현실화 : 이론과 실천의 상호작용

3. 오리엔탈리즘의 텍스트성
3.1. 초기 오리엔탈리즘의 텍스트성
3.2.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텍스트성
3.3. ‘신화’의 창조

4. 실천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
4.1.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역할 : 제국의 요청
4.2. 제 3세계의 부상에 직면한 오리엔탈리즘의 행보 : 변화인가, 반복인가?

5. 비서구 지역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와 재생산

6. 나가며

본문내용

과 관찰은 다른 곳에도 … 존재했다. 그러나 … 최초로 그리스인들로부터 수용된 수학적 기초를 결여하고 있었다. 인도의 기하학은 아무런 합리적 증명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 특히 근동에서의 광범한 성문화 작업도, 또 인도와 다른 곳의 법률서들도 엄격한 체계적 형식의 사고를 갖지 못했다. … 우리 건축의 기술적 토대는 동양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르네상스가 우리에게 제공했던 모든 예술의 고전적 합리화 유형과 돔 문제의 해결 등을 결여하고 있었다. 왜 그곳(중국이나 인도)에서의 과학적, 예술적, 정치적, 혹은 경제적 발전은 서양에 독특한 합리화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까?
이는 베버가 서구적 합리성의 독특한 발달 과정을 배태한 서구 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논하기 위해 자신의 문제제기를 던지는 맥락으로 쓰인 글이지만, 이 짧은 단락 속에서도 오리엔탈리즘적 시각과 관련하여 상당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이드 자신도 서론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아무리 탈정치적이고 객관적이어 보이는 학문이라고 해도 그것이 특정한 정치적 이해관계 및 이데올로기와 전혀 무관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허용되지 않는다. 베버의 논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베버의 논의에 등장하는 ‘합리성을 결여한’ 존재로서의 동양은 사이드가 인용한 샤토브리앙의 표현대로 “다시 야만에 빠진 문명인” 《오리엔탈리즘》, p.301
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동양은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된 곳이기는 하였으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발전이 정체하여 이제는 서양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그 후진성을 극복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 존재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고전적인 주제이다.
또한 많은 오리엔탈리즘 텍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베버의 논의에서도 역시 서양과 동양은 이분법적 구도 속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전자는 본인이 강조했듯 ‘보편성’을 띤 합리성의 담지자로서, 후자는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 존재로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 베버가 보편성의 근거로서 제시하는 것은, 서구에서 발전한 합리성의 형태만이 “오늘날 우리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발전단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헌데 베버가 말하는 ‘우리’란 서양인인가, 동양인인가, 아니면 모든 인류를 말하는 것인가? 혹여 첫 번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타당함’에 대한 보편적인 동의의 근거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동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추출하여, 동양 일반의 속성으로 상승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서구 문명의 특정 일면을 서구 보편의 것으로, 나아가 인류 보편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도 같은 것으로 은연중에 승격시키는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이드가 제시한 오리엔탈리즘 개념은 한편으로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는 어떤 텍스트나 현상을 너무 일면적인 논의로 가두어 버리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는 비판을 자주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인도 실제로 그러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자주 접해 왔다. 그러나 오히려 오리엔탈리즘이 어떠한 형식으로 저 다양한 영역에서 존재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지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요소들이 발견된다는 것이 단순히 비판의 과잉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오리엔탈리즘은 기본적으로 누적적이고 집합적인 하나의 담론이며, 무엇보다도 사고체계이다. 모든 사람들을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을 통해 분류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한 오리엔탈리즘은 넓게 보아 전인류적 현상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지식과 이론, 그리고 실천의 사이가 밀접할뿐더러 상당 부분 중첩되어 있기도 한 구성물이기 때문에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무엇보다도 진리를 자의적으로 생산해 내고, 이를 통해 동양을 조작 및 관리해 온 경험을 계속해서 누적시켜 나가고 있는 진행형의 상태에 있다. 이는 특정한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음모론적인 프로젝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에, 지극히 탈이데올로기적이고 탈정치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저술가들의 작품에서도 등장하고, 몇 세기 전 플로베르가 여행했던 곳을 여행하는 현대의 이름 모를 유럽인 여행객이 자기 전에 쓰는 여행 일지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그것이 내포되어 있는 영약의 광범함과 그것의 오랜 역사로 인해 점점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잡아 왔고,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의 위상을 넘어서서 수많은 서구인은 물론 비서구인들에게까지 자연스러운 인식의 틀로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인식론적 장 속에서 동양과 서양 간의 일련의 관계들은 오리엔탈리스트들이 구축해 놓은 박물관과 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코드로 부호화되고, 이를 통해 서구의 독백이자 상상으로서의 동양이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공된 표상으로서의 동양은 현실에서의 서양과 동양의 권력관계를 통해 강화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 일련의 재생산 과정을 가치면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원적인 범주 하에 자기도 모르게 속해 있는, 실로 많은 수의 개인들을 규정짓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는, 또는 가장 궁극적으로는, 이 한 사람의 개인을 재단하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규정하는 이 일차원적면서도 복잡한 틀, 숱한 왜곡과 폭력의 역사로 점철되어 온 이 틀을 깨어내기 위해서라도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의미를 갖는 것이다.
■ 참고문헌 ■
에드워드 W. 사이드, 박홍규 옮김,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07
조셉 폰타나, 김원중 옮김, 《거울에 비친 유럽》, 새물결
마리타 스터르큰 리사 카트라이트, 윤태진 허현주 문경원 옮김, 《영상문화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막스 베버, 박성수 옮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예출판사, 1996
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3
피터 홉커크, 김영종 옮김, 《실크로드의 악마들》, 사계절,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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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16
  • 저작시기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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